올해 1월 소비자물가가 5개월 만에 2%대 상승률을 나타냈다. 경기 침체 그림자가 한국 경제에 드리운 데다, 국제유가와 환율 급등 여파로 새해 물가까지 뛰면서 스테그플레이션 우려가 커지고 있다.
통계청이 5일 발표한 ‘2025년 1월 소비자물가 동향’에 따르면 지난달 소비자물가는 1년 전보다 2.2% 상승했다. 소비자물가는 지난해 10월 1.3%까지 떨어졌다가 11월(1.5%)부터 다시 오르기 시작해 3개월 연속 상승했다.
품목별로 보면 1월 석유류 가격이 전년 대비 7.3% 올라 지난해 7월 이후 가장 높은 상승률을 기록하며 전체 물가 상승 폭을 0.27%포인트 끌어올렸다. 국제유가 상승과 함께 국내 유류세 조정 영향이 맞물리면서 국내 휘발유(8.2%)와 경유(10.5%) 가격이 전반적으로 오른 것이다. 이두원 통계청 경제동향통계심의관은 “환율이나 국제유가는 시차 없이 물가에 바로 반영돼 물가에 가장 큰 영향을 미쳤다”고 말했다.
한국은행도 최근 1400원 후반대의 고환율이 1월 소비자물가를 0.1%포인트가량 높인 것으로 추정했다. 김웅 한은 부총재보는 “1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환율이 높은 수준을 지속하는 가운데 국제유가도 상승하면서 당초 예상대로 전월보다 상승 폭이 확대됐다”고 평가했다.
석유류에 더해 채소 가격도 가파르게 상승했다. 배추는 겨울철 작황 부진과 저장 물량 감소로 전년 대비 가격이 66.8% 급등하며 2022년 10월 이후 2년 3개월 만에 상승률이 가장 높았고 당근 가격도 전년보다 76.4% 올라 2017년 2월(103.7%) 이후 7년 11개월 만에 최대 상승 폭을 기록했다.
특히 김 가격이 국내외 수요 증가와 기저 효과 등의 영향으로 전년 대비 32.5% 급등했다. 이는 냉해 현상이 심각해 김 작황이 많이 부진했던 1987년 11월(42%) 이후 37년 2개월 만에 가장 높은 상승률이다. 마른 김의 원재료인 물김 가격은 많이 떨어졌지만 소비자가 구매하는 마른 김 가격은 좀처럼 떨어지지 않고 있는 것이다. 이에 해양수산부는 유통 과정상의 문제가 없는지를 확인하기 위해 이날부터 관계기관 합동으로 국내 김 유통·가공업체에 대해 현장 점검을 실시했다.
이와 함께 외식 제외 서비스 물가도 3.5% 오르며 전체 물가를 끌어올렸다. 실손 보험료가 오른 데다 해외 단체 여행비(5.7%)와 콘도 이용료(18.0%) 가격이 급등하면서 여행 관련 소비자 부담이 늘어났다.
일각에서는 내수 부진이 심각한 상황에서 새해부터 물가까지 들썩일 조짐을 보이면서 경기 침체와 물가 상승이 함께 오는 전형적인 스테그플레이션 징후가 나타나고 있다는 해석도 나온다. 경기 침체는 현재 진행형이다. 글로벌 투자은행(IB) 8곳이 제시한 올해 한국의 경제성장률 전망치는 지난해 12월 말 평균 1.7%에서 올해 1월 말 1.6%로 0.1%포인트(p) 하락했다. 한국은행이 1월 중순 기준 전망치로 거론한 1.6~1.7%와 비슷한 수준이다. 가뜩이나 올해 저조한 경제성장률이 예상되는 상황에서 물가마저 크게 뛰게 되는 이른바 ‘스테그플레이션’ 공포가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가장 큰 변수는 미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 정책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캐나다, 멕시코에 이어 중국에 대해 보편관세 부과 정책을 고수한다면 수입 물가 상승 압력이 클 수밖에 없고 이 경우 국내 물가에도 상당히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게 된다. 특히 트럼프발 리스크로 국제유가와 환율 변동성이 커지게 되는 점도 물가 상승 압력을 키우는 요인이란 지적이 나온다. 기재부도 올해 상반기 물가 상승 압력이 높다는 점을 인정했다. 다만 근원 물가가 1% 후반이고 추후 국제유가도 하락할 가능성도 높다고 보고 있다. 기재부 관계자는 “(당분간) 2% 수준에서 등락은 좀 있겠지만 2%대 상승률이 계속 유지된다고 보지는 않는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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