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깜짝 인하죠?”
지난해 11월 한국은행의 핵심 간부인 A 씨가 금융통화위원회의 금리 인하 결정 뒤 기자에게 이렇게 반응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과 한국 경제 성장률 하향 조정 등을 고려하면 인하가 당연하다는 논리였다. A 씨의 주장을 올해 첫 금통위에 대입하게 되면 어떨까. 쏟아지는 성장률 줄하향 전망에 답은 ‘인하’에 가까워 보인다. 그러나 16일 금통위에서는 동결을 결정했다. 탄핵 정국과 미국의 수출 규제 등 국내외 불안 요소가 크다는 점을 인정하면서도 금통위는 환율 불안을 근거로 금리를 묶어 놓은 것이다. 한은의 이 같은 이해 못 할 결정은 차고 넘친다. 한은은 2019년 11월 경제전망에서 그해 성장률을 하향 조정했지만 당시 금통위는 동결로 마무리됐다. 2014년 7월에도, 2013년 1월에도 비슷한 일은 벌어졌다.
A 씨의 언급대로 지난해 3분기 국내총생산(GDP)은 ‘충격(쇼크)’에 가까웠다. 하지만 ‘트럼프 트레이드’의 폭풍이 거셌다. 무섭게 치솟은 환율에 11월 금리를 내리기는 어렵다는 게 중론이었다. 거시경제 전문가와 채권 담당 애널리스트 절대다수도 금리 동결을 전망했다. 하지만 뚜껑을 열어보니 한은은 환율보다 성장률 우려에 방점을 뒀다.
이창용 총재 이후 한은이 대외 접점 강화에 나서고 있지만 충분하지 않다는 지적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지난해 한은 금통위원들은 총 29회의 대외 소통 행보에 나섰다. 반면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에서는 제롬 파월 의장과 필립 제퍼슨 부의장, 존 윌리엄스 뉴욕연방준비은행 총재 등 3인방의 대외 일정은 42회로 한은의 2배가 넘는다. 지역 연은 총재의 일정으로 이를 확대하면 105회에 이를 정도다.
이 총재가 입이 닳도록 언급하는 ‘조건부 통화정책’이 힘을 얻으려면 한은의 소통 방식이 더 촘촘해야 한다. 매달 열리던 금통위가 연 8회로 축소된 것도 벌써 9년째다. 통화정책을 바라보는 한은과 시장 간 온도 차를 줄이려면 빈틈을 더 메워야 한다는 얘기다.
시시각각 변하는 글로벌 경제의 파고 속에서 금리 풍향계가 흔들리면 가계·기업은 시장 변화에 적절하게 대비하기 어려워질 수 있다. 한은이 적기에, 적확한 목소리를 내지 못했던 건 아닌지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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