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에 심각한 재정 손실을 불러올 수 있는 양곡관리법 등 농업 관련 법안이 국회 상임위원회 문턱을 넘었다. 윤석열 대통령의 재의요구권(거부권) 행사로 두 차례 폐기됐던 법안 등이 충분한 숙의 과정 없이 야당 단독으로 처리된 것이다. 정부와 여당은 “거대 야당의 입법 폭주”라며 강하게 반발했다.
22일 국회에 따르면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는 21일 야당 단독으로 전체회의를 열고 밤 11시 50분께 양곡관리법, 농수산물 유통 및 가격안정에 관한 법률, 농어업재해대책법, 농어업재해보험법 개정안 등 4개 법안을 통과시켰다. 이날 오전 법안심사소위원회에서 이들 4개 법안이 통과되자 여당은 안건조정위원회를 꾸려 숙의를 거치자고 요구했으나 수적 우위를 앞세워 마무리한 것이다. 서천호 국민의힘 의원은 “여야 입장이 다르고 찬반 단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단 하루 만에 모든 절차가 강행된 점은 매우 유감스럽다”며 “농정 흑역사로 남을 것”이라고 비판했다.
농림축산식품부는 4개 법안이 통과될 경우 쌀을 비롯한 농산물 과잉생산, 재정 낭비, 시장 질서 훼손 등 부작용이 심각할 것이라고 반발했다. 양곡관리법 개정안은 농가가 쌀을 과잉생산해 쌀값이 떨어지면 남는 쌀을 나랏돈으로 의무 매입하는 것을 골자로 하기 때문이다. 농안법 개정안에는 각종 농산물의 시장가격이 기준 이하로 떨어질 경우 하락분을 정부가 보전하는 내용, 재해대책법 개정안에는 재해가 발생해 농가가 피해를 본 경우 비료·농기계값과 같은 생산 비용을 정부가 보전해주는 내용이 담겼다. 재해보험법 개정안은 불가피한 재해로 보험금 지급 규모가 늘어도 보험료율은 올릴 수 없도록 규정했다. 그러면서 민주당은 정작 보험상품을 통해 시장가격 하락 위험을 방지해주는 내년도 수입안정보험 운영 예산은 54%(1119억 원) 삭감한 상태다.
송미령 농식품부 장관은 “정부 이견에도 불구하고 4개 법안이 통과된 데 대해 유감을 표한다”며 “양곡관리법·농안법은 과잉생산, 가격 하락 등 시장 개입의 부작용을 우려해 정부가 일관되게 반대해온 법안”이라고 비판했다. 송 장관은 이어 “재해대책법·재해보험법도 충분한 논의 없이 의결됐다”며 “절차적으로도 내용적으로도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말했다. 정부는 4개 법안 통과 시 추가 재정 소요 규모가 추계조차 어려울 만큼 클 것으로 보고 거부권 행사를 건의할 계획이다.
한편 방산 업계에서도 민주당의 ‘입법 폭주’에 거센 유감을 표하고 나섰다. 앞서 민주당은 4일 무기와 같은 주요 방산 물자를 외국에 수출할 경우 국회 동의를 받도록 하는 내용을 담은 ‘방위사업법 개정안’을 당론으로 채택한 바 있다. 한국방위산업진흥회 측은 국회 승인 과정에서 민감 정보가 유출될 수 있고 이 법안이 이중 규제로 작동해 K방산 수출 경쟁력이 크게 약화할 수 있다는 등의 우려 사항을 방위사업청에 전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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