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이버·카카오가 개발 중인 초거대 인공지능(AI) 모델을 공개하기도 전에 오픈AI와 구글이 앞다퉈 국내 시장 공략에 나서면서 안방 수성에 적신호가 켜졌다. AI 기술을 비롯한 정보기술(IT) 산업이 글로벌 빅테크에 종속되면 ‘디지털 기술 주권’을 잃게 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12일 업계에 따르면 네이버는 이르면 다음 달 초 거대 AI 모델 ‘하이퍼클로바’의 차세대 버전인 ‘하이퍼클로바X’를 공개할 예정이고 카카오 역시 초거대 ‘코(KO)-GPT’를 향상한 ‘코GPT-2.0’을 연내 선보인다.
네이버와 카카오 등 국내 토종 IT 업체들이 초거대 AI 개발을 위해 총력전에 나서고는 있지만 업계 안팎에서는 비관론이 우세하다. 자본력을 앞세워 국내 시장 공략에 나선 글로벌 빅테크를 상대하기에는 힘이 모자라다는 판단이다.
오픈AI와 마이크로소프트(MS)·구글 등은 이미 성능을 크게 향상시킨 초거대 AI 모델을 선보인 데 이어 국내 AI 스타트업과의 협업을 강화하며 ‘입도선매’에 돌입한 상태다. 최근 방한한 샘 올트먼 오픈AI 최고경영자(CEO)는 “한국과 협력할 준비가 돼 있다”며 국내 스타트업에 러브콜을 보냈다. 업스테이지와 뤼튼테크놀로지스 같은 국내 대표 AI 스타트업은 오픈AI와의 협업을 강화하고 있다.
지난달 AI 챗봇 ‘바드’를 공개하면서 영어 외 첫 지원 외국어로 한국어와 일본어를 선택한 구글도 다음 달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대한민국 AI 위크’ 행사를 공동 주최한다. 구글은 이 자리에서 자사의 첨단 AI 기술을 소개하고 시연할 예정이다. 국내 AI 생태계 확장의 계기가 될 것이라는 기대와 함께 구글이 국내에서 영향력을 더 키울 수 있다는 관측이 동시에 나온다.
오픈AI와 구글의 거칠 것 없는 행보로 자체 초거대 AI를 개발 중인 네이버와 카카오에는 ‘비상등’이 켜졌다. 네이버·카카오는 빅테크에 비해 초거대 AI 모델 출시가 늦었어도 한국어 특화 및 버티컬 서비스로 차별화한다는 전략이지만 기술 경쟁력에서 우위를 점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오픈AI 챗GPT의 한국어 실력이 날로 능숙해지고 있는 점 또한 토종 업체들이 넘어야 할 산이다. GPT-4는 자체 실시한 인문학, 사회과학, 수학 문제 풀이에서 한국어 정확도가 77.0%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전 모델인 GPT-3.5의 영어 정확도(70.1%)보다 높은 수치다.
전문가들은 AI 패권 경쟁에서 밀리지 않고 ‘디지털 주권’을 지키기 위해서는 국내 기업들이 국내뿐 아니라 글로벌 시장에서도 통할 수 있는 기술을 선보이는 한편 관련 생태계 조성에도 속도를 내야 한다고 지적한다. 이경전 경희대 경영학과 교수는 “국내 시장을 지키겠다는 전략으로는 필패”라며 “세계시장을 목표로 기술 고도화에 사활을 걸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부의 토종 플랫폼과 국내 스타트업에 대한 보다 적극적인 지원 필요성도 제기됐다. 김정호 한국과학기술원(KAIST) 전기전자공학부 교수는 “지금 AI는 1980년대의 반도체”라면서 “개별 기업이 아니라 국가의 미래가 걸려 있는 문제”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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