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이 사모 방식으로 발행하는 은행채를 적격담보증권 대상에 포함하지 않기로 최종 결론을 내렸다. 이에 따라 일부 시중은행들이 추진하던 ‘은행 간 은행채 거래’도 무산됐다.
12일 금융권에 따르면 한은은 최근 이 같은 의견을 금융감독원 등 금융 당국에 전달했다. 앞서 금감원은 은행 간 은행채 인수를 유동성 확보의 대안으로 보고 사모 방식으로 발행한 은행채가 적격담보증권 대상에 포함될 수 있는지 여부를 판단해줄 것을 한은에 요청한 바 있다.
당국은 지난해 레고랜드발(發) 채권시장의 불안이 커지자 시중은행에 은행채 발행 자제를 권고했는데 은행들이 한 달여간 은행채를 발행하지 못해 유동성 확보에 어려움을 겪자 ‘은행 간 은행채 인수’ 방안이 대안으로 거론됐다. 당시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은행이 타 은행 발행 채권을 인수할 수 있느냐는 이슈와 관련해 공정거래법상 문제점을 제거하면서 자금을 유통할 수 있는 방법 등을 모색하고 있다”며 적극적인 의지를 보였다.
금융권에서는 타 은행이 발행한 은행채를 또 다른 은행이 인수하는 품앗이 형태의 자금 조달 방식은 공정거래법상 ‘담합’ 이슈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점이 한은의 이번 판단에 결정적으로 작용한 것으로 보고 있다. 한은이 단기 금융시장 안정화 조치 시행 기간을 4월 말까지 연장한 점도 영향을 미쳤다는 해석이다. 당초 한은은 올 1월 말까지 적격담보증권 대상을 은행채와 9개 공공기관이 발행한 채권까지 확대하기로 정했다.
이에 지난해 12월 내규를 개정해 사모 방식으로 은행채 발행을 준비했던 KB국민은행과 유력 사모 은행채 인수 후보로 거론됐던 신한은행 간 거래도 불발됐다. 한은이 공모채만 적격담보증권으로 인정하기로 한 만큼 은행 간 은행채 거래 방식은 유동성 확보에 도움을 주지 않아 굳이 추진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업계에서는 은행채 공모가 재개된 데다 6월 말까지 유동성커버리지비율(LCR)이 한시적으로 완화돼 유동성 확보에 숨통이 트였기 때문에 한은의 이번 결정이 시장에 큰 영향은 미치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특히 금리 상승으로 이자 부담이 커져 개인 가계대출의 수요가 줄고 당국이 과도한 수신 경쟁을 자제할 것을 당부하면서 은행채 발행 유인이 축소됐다는 게 업계의 분위기다. 지난달 말 5대 은행(KB국민·신한·우리·하나·농협)의 가계대출 잔액은 685조 4506억 원으로 1월(688조 6478억 원)보다 3조 1972억 원 감소했다. 지난달 5대 은행의 은행채 발행 규모는 1월(2조 원)보다 1조 5900억 원 늘어난 3조 5900억 원이었다.
다만 일각에서는 아쉬움의 목소리도 나온다. 한 시중은행의 관계자는 “지난해 하반기 레고랜드 사태로 은행들이 유동성 위기를 겪었다”면서 “현재 채권시장 분위기가 나아지기는 했지만 만약의 경우에 대비해 한은이 사모 방식의 은행채 인수를 허용해놓는 것도 필요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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