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같이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 심려를 끼쳐서 진심으로 죄송합니다.”
법조계 안팎에서는 김건희 여사가 지난 6일 김건희 특별검사팀(특별검사 민중기)의 첫 소환 조사에 앞선 발언에 구속 전 피의자 신문(영장실질심사)에 대한 전략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고 분석한다. 공천 개입 등 의혹에 연루될 위치에 있지 않다는 주장으로 방어 논리를 펼 수 있다는 것이다. 반면 특검팀은 김 여사가 혐의를 전면 부인하고 있는 데다, 증거를 인멸할 우려가 크다는 등 반드시 구속 수사가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할 수 있어 양측 사이 치열한 법리 공방이 예상된다.
10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중앙지법 정재욱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12일 오전 10시 10분 김 여사에 대한 영장실질심사를 연다. 이는 특검팀이 자본시장법 위반, 정치자금법 위반, 특정범죄 가종처벌법상 알선수재 혐의로 지난 7일 김 여사에 대해 구속영장을 청구한 데 따른 것이다. 김 여사는 2009~2012년 발생한 도이치모터스 주가 조작 사건에 돈을 대는 ‘전주(錢主)’로 가담한 혐의를 받는다. 또 2022년 재·보궐선거와 작년 국회의원 선거 등에서 국민의힘 공천에 개입하고, 2022년 4~8월 건진법사 전성배씨를 통해 통일교 측으로부터 교단 현안을 부정하게 청탁 받은 혐의도 있다.
김 여사에 대한 첫 조사 이후 구속영장이 청구되는 과정에서 이목이 집중되고 있는 건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라는 말이다. 김 여사는 첫 공개 소환에 앞선 발언은 스스로를 낮추는 모양새이자 액면 그대로 분노한 민심에 본인의 불찰을 사과하는 형식을 띠고 있다. 하지만 수사 대응 전략까지 염두에 두고 고심해서 내놓은 발언일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영부인의 지위를 이용해 이권에 개입하고, 사적 이익을 누렸다는 의혹과 관련해 자신에게는 그럴만한 힘이 없다는 점을 강조하며 수사와 법망을 빠져나가려는 전략적 의중이 담겼을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김 여사는 지난 6일 11시간 가까이 진행된 조사에서 진술을 거부하지는 않았으나, 본인에게 제기된 각종 의혹에 대해선 일관되게 부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검사 출신의 한 변호사는 “특정 혐의를 받는 고위직에 대해 조사하는 경우 본인이 구체적으로 지시하지 않았다고 부인하는 사례가 많다”며 “스스로 무엇을 하라고 요구한 사실이 없다는 식의 진술”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해당 발언도 본인이 그만한 위치에 있지 않다는 것으로 해석된다”며 “영부인으로서 권한을 행사했다는 특검 주장에 대해 다툴려는 기본 전략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주가 조작 등 수사에 정통한 한 관계자는 “이른바 전주로 수사를 받는 피의자들은 혐의를 부인할 때 ‘주가 조작을 몰랐다’는 식의 답변을 많이 한다”며 “본인이 주가 조작이 있는지 알 수 있는 위치가 아니라는 식으로 방어 전략을 꾸린다”고 말했다. 김 여사가 구속 여부를 가릴 영장실질심사에서 각종 혐의에 있어 본인이 권한을 행사하거나 과정을 알 수 있는 위치에 있지 않다는 점을 앞세울 수 있다는 얘기다. 이에 반해 특검팀이 각종 증거·증언을 앞세워 ‘반드시 구속 수사가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할 수 있다. 특검팀은 앞서 청구한 구속영장에 부당이익액을 8억1000만원으로 특정한 것으로 전해졌다. 특히 김 여사가 3700여 차례 매매 주문으로 주가 조작에 가담했다고 보고, 단순 방조자가 아닌 시세조종 공모자로 판단했다. 또 구속 영장에는 김 여사가 신분이 전씨와 공모해 통일교 측으로부터 고가 물품을 받았다는 내용도 담긴 것으로 알려졌다. 여기에 특검팀은 김 여사가 혐의 일체를 부인하고 있는 데다, 증거 인멸 우려가 높다는 점도 강조할 전망이다. 구속영장에도 지난 4월 윤석열 전 대통령 탄핵소추안 인용으로 영부인 자리에서 내려오게 되자 휴대전화를 바꾼 점도 증거 인멸 정황으로 적시했다. 이후 새 기기의 비밀번호를 알려주지 않는 등 수사에 비협조적인 태도도 구속이 필요한 사유로 언급했다. 또 잦은 입원으로 김 여사가 수사에 불응할 가능성이 크다며 구속의 필요성을 강조한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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