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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업 곳곳 '다운사이징' 은행 "돈 싸들고 찾아가도 외면"

[움츠러든 투자...기업 대출도 안받는다]

돈 필요한 곳도 대출보다 회사채·ABS 시장으로 눈돌려

불확실한 경기로 대기업 투자 3조 이상 줄고 현금만 쌓여

시중銀 영업 '비상'...국민銀은 올 기업여신 목표치 낮춰







시중은행의 기업여신 증가세가 크게 둔화된 것은 삼성 등 국내 주요 그룹의 지난해 투자가 줄어든 탓이다. 실제 삼성 등 60개 대기업집단의 투자 지출액은 1년 전보다 3조원 이상 줄어들었다. 국내 경제를 견인해온 해운·조선은 물론 반도체·자동차까지 실적악화에 몰리자 너도 나도 감량경영(다운사이징)에 나서면서 산업 전반에서 투자 여력을 찾기 힘들어진 것이다.

7일 금융권과 재계에 따르면 삼성전자가 반도체 투자를 지난 2017년 마무리하면서 사실상 국내 대기업 가운데서는 대규모 투자를 견인할 기관차가 사라졌다. 여기에 미중 무역전쟁에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 Brexit)에 따른 유럽경제의 불확실성 증대 등 글로벌 경기 전망도 가늠하기 어려워지자 기업들이 잇따라 몸을 낮추면서 자금수요는 점점 줄어들 것으로 예상된다.

금융감독원이 공개한 매출 기준 상위 20대 기업의 지난해 보유현금(현금 및 현금성자산+만기 1년 이내 단기금융상품 잔액)은 169조8,167억원으로 전년 말(157조7,624억원)보다 12조543억원(7.6%) 늘었다. 1년 새 현금이 10조원 이상 늘어난 것이다. 영업을 잘해 이익을 많이 본 측면도 있지만 기업들이 경영 불확실성 때문에 투자에 쓰지 못하고 현금으로 묵혀두고 있는 것이다. 이 가운데 삼성전자의 보유현금은 지난해 말 104조원을 넘어 전체의 59%를 차지했다.

지난해까지 실적호조를 이뤘지만 메모리(D램) 가격이 꺾이며 실적 불안이 가중될 것으로 전망되면서 시설투자나 대형 인수합병(M&A) 등의 일정을 조정한 영향이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삼성전자의 경우 메모리 반도체에 크게 의존하는 사업구조를 개선하기 위해서라도 대형 M&A가 필요한 상황”이라며 “하지만 반도체 경기 등 불확실성이 높아지면서 조정에 들어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LG전자도 지난해 말 연결기준 현금성자산이 4조2,704억원으로 전년 말 대비 9,198억원가량 늘었다. 지난해 로봇개발기업 로보티스 지분 인수에 이어 인공지능(AI) 스타트업 아크릴, 산업용 로봇기업 로보스타 지분을 매입하는 등 투자에 나서고 있지만 경기 불확실성으로 대형 설비투자는 미루고 있다.



삼성전자는 경기도 평택에 내년 완공을 목표로 반도체 공장 제2기 생산 라인을 건설하고 있다. 글로벌 경기 전망이 어두워지면서 국내 기업들이 대규모 투자를 꺼리며 은행들의 기업대출 수요도 줄어들고 있다. /연합뉴스


국내 20대 기업 중 지난해 보유현금 규모가 증가한 데는 15개다. 이마트가 가장 많이 늘어 2018년 말 4,642억원이었다. 전년 말(3,214억원)보다 44.4% 증가했다. 이는 출점 규제의 영향 등으로 신규 투자가 사실상 중단됐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이마트는 대형할인점 트레이더스의 서울 입점을 수년 전부터 추진해왔지만 각종 규제와 정책 리스크로 지난해 겨우 성공했다. 이 같은 트라우마 때문에 이마트는 신규 출점을 사실상 포기한 것으로 알려졌다. 유통업 특성상 외형성장을 위해 추가 출점을 위한 토지매입 등에 투자를 해야 하는데 내부적으로는 정부의 눈치에 현금만 쌓아놓고 있는 것이다. 대규모 설비투자에 자금을 쓰지 않더라도 기업의 영업활동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할인점 등이 들어설 토지매입이나 상표권, 특허권 등의 유·무형 자산을 취득해야 하는데 이 같은 원초적인 투자 흐름마저 막혀버렸다는 것이다. 금융권의 한 관계자는 “내부 현금보유가 늘어난 15개 기업 중 삼성전자나 LG전자·삼성SDI를 제외한 12개는 유·무형 자산 취득 등 영업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투자용 현금을 줄인 영향이 크다”고 말했다. 2월 산업활동동향을 봐도 설비투자는 동행지수와 선행지수 모두 하락세를 보였다. 특히 선행지수는 7개월째 악화되고 있고 반도체 업황 부진 우려와 미중 무역갈등, 브렉시트 혼선에 따른 글로벌 불확실성의 증대 등으로 국내 기업들이 선뜻 투자에 나서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투자냉각 상태가 당분간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일부에서는 기업들의 자금조달 형태가 전통적인 은행 대출보다는 회사채나 자산유동화증권(ABS) 등의 시장성 차입으로 옮겨가면서 은행의 자금수요가 줄고 있다는 분석도 있다. 시장금리 인상 전에 자금을 확보하기 위해 지난해 하반기 미리 대출을 일으키는 바람에 올 1·4분기 대출 실적 증가세가 상대적으로 둔화됐다. 실제로 지난 1월에는 일반 회사채 발행액이 6년여 만에 최대를 기록했다. 하지만 회사채 수요는 신용등급이 좋은 대기업에 국한된 얘기다. 대기업의 실적 부진이 우려되면서 중소기업은 투자 다운 투자를 할 수 없는 상황이고 각종 규제의 여파로 대표적인 내수업체인 유통업체의 투자도 사실상 냉각된 상태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은행들의 영업에도 비상이 걸렸다. 가계대출 총량규제로 이미 대출 한도가 묶여 있는데 기업의 자금수요마저 줄면서 차질이 불가피해졌다. 시중은행의 한 관계자는 “(경기 전망이 불확실하다 보니) 기업들이 투자를 줄이면서 대출 수요마저 침체되고 있다”며 “그나마 자금수요가 있는 우량 기업들은 회사채 시장으로 눈을 돌리고 있어 영업에 비상이 걸렸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대기업 하청 중소기업들도 (대출을 해가라고) 줄을 서도 쳐다보지도 않는다”고 토로했다. 투자심리가 위축되다 보니 그만큼 자금수요가 없어진 것이다. 이 때문에 일부 은행들은 올해 영업전략을 다시 짜야 하는 게 아니냐는 심각한 고민에 놓여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기업대출 규모를 10.5% 늘리며 공격적인 영업에 나섰던 국민은행은 올해 기업대출 목표치를 낮춰 잡았다. 국민은행 관계자는 “국내외 주요 경제기관들이 올해 한국의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잇따라 낮추는 등 경기 하락의 전조가 두드러지고 있는 만큼 리스크 관리 차원에서 기업여신을 예년처럼 공격적으로 늘릴 수 없다”며 “기존 대출 연체율도 예의주시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재무제표에 대한 회계감사인의 책임이 강화되면서 은행들이 대손충당금 부담 증가로 기업여신을 적극적으로 늘리지 않은 것도 대출 증가세 감소로 이어졌다는 관측도 나온다. 시중은행 리스크 담당 부행장은 “경기 하강 압력으로 기업들의 어닝쇼크가 이어지고 있는데다 외감법 개정으로 비적정 의견을 받는 기업들이 늘고 있는 추세”라며 “은행 입장에서는 (기업의 신용등급에 변화에 따라) 대손충당금 부담이 늘어나기 때문에 여신 규모를 늘리는 데 부담이 크다”고 귀띔했다. /서은영·박효정기자 supia927@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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