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 서울고등법원 민사38부(부장 박영재)는 중국 상하이아빈식품이 국내 업체 설빙을 상대로 낸 부당이득금 반환 소송 항소심에서 원고 일부 승소 판결을 내렸다. 중국 현지 회사들이 미리 설빙과 유사한 상표를 출원해 가짜 설빙 매장을 운영하고 있다는 걸 미리 알았음에도 설빙이 2015년 상해아빈식품과 계약을 맺어 현지 가맹 사업 운영권을 10억 원에 판매했다는 이유에서다.
상해아빈식품이 “설빙의 상표권을 제대로 사용할 수 없다”고 반발하자 설빙은 뒤늦게 중국에 등록돼 있던 ‘설빙’ 한글 상표를 사와 등록공고를 냈다. 그러나 중국 당국은 현지 다른 업체들이 미리 등록한 상표를 보호하기 위해 설빙의 요청을 기각했다. 설빙 입장에선 현지에 먼저 등록된 ‘가짜 상표’ 때문에 중국에서 상표권 행사도 못하고 파트너 업체에게 부당이득금 명목으로 9억5,650만원을 반환해야 하는 상황을 맞았다.
24일 특허청과 업계에 따르면 국내 업체의 해외 진출이 빈번해지면서 현지에서 지식재산(IP)권을 확보하고 보호할 필요성이 커지고 있다. 한국의 해외특허 출원이 수출 규모에 비해 부족하기 때문이다. 한국의 국내출원 1건당 해외출원 건수는 0.42건으로 미국(0.75건), 일본(0.77건), 독일(2.1건)에 비해 낮다. 수출액 1억 달러당 해외출원 건수는 11.7건으로 미국(14.2건), 일본(28.5건)보다 떨어진다. 더구나 해외 기업이 현지에서 한국 IP를 도용하는 일이 늘어나고 있다. 중국의 경우 상표브로커가 한국 기업의 상표를 무단으로 선점하는 건수가 2016년 406건에서 지난해 1,142건으로 늘었다.
정부도 대책을 마련하고 있다. 중국 등 6개국에 ‘IP-데스크’를 설치해 지식재산권 침해에 대응하고 있다. 다른 한편으론 ‘글로벌 IP스타기업’을 선정해 3년간 종합서비스를 지원해주고 ‘IP출원지원 펀드’를 통해 중소벤처기업의 해외특허 창출·보호에도 투자하고 있다.
그러나 단순한 단속이나 국내 기업 지원만으론 역부족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국내 화장품 업계가 베트남에서 ‘일라휘(Ilahui)’라는 현지 업체의 카피 제품 때문에 애로를 겪은 게 대표적이다. 특허청은 베트남 시장관리국·지식산권국과 국장급 회담을 진행하고 모방제품 대다수를 적발했지만 여전히 일부 모방 제품은 유통되고 있다. 화장품 업계 관계자는 “당국이나 업계의 지속적인 모니터링만으론 카피제품 제재가 어려운 게 현실”이라고 말했다.
원활한 해외 IP 진출을 위해선 현지 당국과의 적극적인 외교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조언이 나온다. 특허청이 지난달 아랍에미리트(UAE) 특허심사 전 과정에 참여하는 협약을 맺기도 했다. 특허청 관계자는 “이와 같은 선례를 다른 국가에도 적용하면 짝퉁 한국 제품을 판매하는 외국 기업에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을 것”이라며 “현지 행정에 참여한다는 점에서 한국 기업의 해외 진출에도 큰 도움이 될 수 있을 걸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심우일기자 vita@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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