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일 정부와 업계에 따르면 미국 상무부는 최근 한국산 대구경강관에 대한 불공정 무역 혐의를 조사하면서 수요감축요청(DR)제도가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DR은 전력 수요가 높을 때 정부가 전력거래소와 계약을 맺은 기업들에 전기 사용 자제를 요청하고 그에 맞춰 금전을 보상해주는 제도다. 정부 산하기관인 한국전력공사가 전력거래소를 통해 기업에 지원금을 주는 만큼 상계관세(수출국 보조금으로 피해를 본다고 판단될 때 부과하는 관세)를 매겨야 한다는 게 미국의 논리다.
미국은 DR을 빌미로 한국산 제품에 대한 공격 반경을 넓혀가고 있다. 상무부는 지난 2017년 한국산 후판에 대한 연례재심 때도 DR을 걸고넘어지며 추가 관세를 부과한 바 있다. 지난해 11월 기준 DR에 참여하고 있는 사업장이 3,357개소에 달하는 만큼 또 다른 제품이 압박에 노출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정부는 “당장 DR을 이유로 매긴 상계관세율이 채 1%가 안 되는 수준”이라고 하지만 업계는 관세율이 추가로 오를 수 있다며 걱정하고 있다. 상무부는 특정 제품에 한 번 관세를 부과하면 매년 연례재심을 통해 관세율을 다시 검토하는데 이때마다 관세율을 끌어올릴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특정 제도에 한 번 보조금 혐의가 씌워지면 이를 번복하기 쉽지 않다는 점도 문제로 지적된다.
상계관세가 붙는 품목이 늘어나고 관세율이 높아질수록 정부가 DR을 활용하기 어려워지는 것 아니냐는 전망도 나온다.
문제는 탈원전으로 전력 수급체계의 변동성이 커지면서 DR 발동 가능성은 더 커지고 있다는 점이다. 정부는 2017년 발표한 8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 따라 오는 2030년까지 석탄(45.4%→36.1%)과 원자력(30.3%→23.9%) 비중을 줄일 계획이다. 신재생(6.2%→20.0%)과 액화천연가스(LNG·16.9%→18.8%)를 통해 보충하겠다는 계획이지만 기상변화에 취약하거나 발전단가가 비싸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이처럼 전력 공급이 흔들리는 가운데 급증하는 수요를 막아줄 DR마저 활용이 제한되면 전력체계를 둘러싼 혼란은 한층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 산업통상자원부 관계자는 “DR은 미국을 비롯해 각국에서 널리 사용되는 수요관리 정책”이라며 “향후 논의를 통해 판정을 바로잡을 것”이라고 했다.
/김우보기자 ubo@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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