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세먼지로 한반도가 몸살을 앓고 있습니다. 중국에서 미세먼지가 발생하고 서풍이 분 뒤에는 어김없이 한반도에 미세먼지가 가득하다는 점에서 미세먼지 상당수가 중국에서 넘어왔음을 의심하는 사람들은 찾아보기 어렵죠. 우리가 체감하는 대로 이 같은 미세먼지 발생 국외 기여율이 절반에서 최고 4분의 3에 이른다는 과학적 분석도 나왔고요.
이 때문에 우리 정부뿐만 아니라 민간에서도 미세먼지를 줄이기 위한 중국의 노력을 촉구하는 움직임이 계속됐습니다. 하지만 중국으로부터 이렇다 할 속 시원한 답을 듣지는 못했습니다. 중국으로서는 한국의 미세먼지 피해가 이만저만이 아닌데 이를 자신의 책임으로 인정하기 상당한 부담이 있는듯해 보입니다. 최근 미세먼지 이슈에 대한 중국의 대응은 크게 세 가지로 요약됩니다. 무시와 지연, 억측인데요 내용별로 살펴보겠습니다.
먼저 국내 민간에서 제기한 소송에 대해서는 철저히 무시하고 있습니다. 이달 초 중국정부는 한국 법원행정처가 보낸 국외 한·중 조약 관련 서류를 뜯어보지도 않은 채 그대로 한국으로 반송했습니다. 2017년 4월 최열 환경재단 대표와 안경재 변호사 등 미세먼지 소송단이 한국과 중국 양국 정부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제기하자 법원이 중국 정부를 법정에 세우기 위한 사전 조치에 나섰지만 외면당한 것인데요, 지난해 10월 첫 번째 재판에서는 피고인 중국과 한국 중 한국 정부만 참여한 반쪽짜리로 진행됐죠. 중국은 국제법상 정부가 타국 법원의 피고가 될 수 없으며 주권 침해에 해당한다는 논리를 내세우고 있습니다. 반면 지현영 환경재단 미세먼지센터 사무국장(변호사)은 “국제법에도 국민의 생명을 중대하고 긴급히 침해할 땐 예외(피고 요건)를 둔다”며 반박하고 있죠. 지난달 7일 열릴 계획이던 두 번째 변론기일은 잠정 연기됐지만, 법원은 중국의 무시 전략에 다음 변론기일을 잡지 못하고 있습니다. 원고측도 사실 이번 소송이 만만치 않고 오랜 시일이 걸릴 수 있다는 점을 알고 있습니다. 재단의 한 관계자는 “실제 손해배상을 받아내기보다는 양국 정부가 좀 더 미세먼지를 없애는 데 적극적으로 노력하라는 의미”라고 설명했습니다.
중국은 또 한국 미세먼지의 영향을 과학적으로 입증할 한·중·일 공동연구는 최대한 지연 전술을 쓰고 있습니다. 애초 지난해 6월 결과가 나올 예정이었지만 중국의 반대로 오는 9월로 연기됐는데요, 이번에는 최근 일본이 3국 환경장관회의 연기를 요청하며 11월로 미뤄졌습니다. 우리는 애가 탑니다. 한시라도 빨리 결과가 나온다면 중국에 미세먼지 감축을 위한 더욱 적극적인 노력을 요구할 수 있으니깐요. 문제는 11월도 장담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환경부의 한 관계자는 “각국 사정이 엮여 11월도 꼭 보장된 시점은 아니다”라고 말했습니다. 환경부와 서울시는 최근 세계보건기구(WHO) 환경보건센터를 서울에 유치했는데요, 중국의 지연 전술에 대응하기 위한 이유도 있습니다. 공동연구 결과가 언제 나올지 모르는 상황에서 국제기구의 분석 결과가 나오면 중국도 무시하지 못할 것이라는 계산이 깔린 것이죠.
아전인수를 동원한 억측도 중국의 수법입니다. 지난달 중국 생태환경부는 서울 내 자체 미세먼지 발생량이 많았던 지난해 11월 6~7일만 짚어 “서울의 미세먼지는 주로 서울에서 배출된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물론 국내 대기가 정체돼 자체 발생 오염물질이 빠져나가지 못할 때는 내부 요인이 더 클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다른 날짜들을 살펴보면 중국 영향이 큰 사례도 충분한데 유독 특정한 날만 제시해 입맛에 맞는 주장을 한 것이죠.
오는 23일 한중 외교당국이 만나 대기오염 문제 협력 방안을 논의할 예정입니다. 그러나 이 같은 중국의 태도를 볼 때 실효성 있는 조치가 나오기는 쉽지 않다는 분석이 나옵니다. 정부 관계자는 “배상 이슈 등까지 엮여 중국이 선뜻 미세먼지 책임을 인정할지는 미지수”라고 말했습니다.
/임진혁·백주연·정순구기자 liberal@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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