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마 왐슬리가 글락소스미스클라인 GlaxoSmithKline(GSK)의 CEO로 취임한 지 6주 만에 ‘글랙시트 Glaxit’가 터졌다.
2017년 5월 12일, 닐 우드퍼드 Neil Woodford가 투자 종료를 발표한 것이었다. 글랙시트는 브렉시트처럼 세계적 파장을 가져온 지정학적 지진은 아니었지만, GSK에 미친 파장만큼은 브렉시트에 못지 않았다. 영국의 유명 펀드매니저 우드퍼드는 GSK의 최대주주 중 한 명이었으며, 닷컴 열풍과 세계 금융위기에서 무사히 빠져 나온 것으로 유명한 인물이었다. 그는 가차없는 비판을 담은 958단어 짜리 성명을 통해 왜 15년간 보유한 GSK 지분을 전량 매각하는지 설명했다. 로이터부터 영국의 텔레그래프 Telegraph까지 많은 언론이 이 사건을 보도했다.
그는 지난 15년 동안 “실망스러운” 감정을 가져왔다고 지적했다. GSK가 이 기간 내내 “경영 전략에 문제가 있는 대형 제약업체였다”는 것이었다.
우드퍼드는 오랜 동안 GSK에 대해 가장 활발한 비판을 쏟아낸 사람 중 한 명이었다. 그는 “GSK가 대형 제약업체 트렌드를 따라 핵심 사업부문 별 분사를 단행해야 한다”고 수 년 간 주장했다(회사는 현재 제약, 백신, 소비자건강 사업부를 운영 중이다). 분사로 각 부문이 좀 더 집중력을 가지면, 주주가치가 제고될 것이라는 주장이었다. 하지만 GSK 경영진(가장 최근에는 전 CEO 앤드루 위티 Andrew Witty 경이 있었다)은 계속 이를 거부했다. 현재의 대기업 구조가 안정성과 시너지 효과를 가져온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그러나 우드퍼드의 결심을 촉발한 ‘최후의 결정타’는 신임 CEO 왐슬리인 듯했다. 그는 ‘왐슬리가 CEO 선임 전부터 자신을 “지속지향적 후보(continuity candidate)”라 묘사했다’고 지적했다. 다른 말로 하면 기존과 별반 다를 바 없다는 것이었다. 왐슬리에겐 GSK의 대기업 구조를 버릴 의향이 없어 보인다. 하지만 이 부분을 제외하면, 우드퍼드의 표현과 완전히 정반대에 가깝다.
우선 왐슬리 개인부터 살펴보자. 그녀는 제약업계의 주류인 남자도 과학자도 아닌 ‘아웃사이더’다. 그녀는 대형 혁신 제약사 CEO 중 유일하게 여성이고, 커리어도 전형적이지 않다. 마케팅 전문가인 왐슬리는 로레알에서 17년간 일한 후, 2010년 GSK로 자리를 옮겼다. 이듬해인 2011년부터 소비자건강 부문을 총괄하기 시작했다.
그 동안의 업적도 평범하지 않다. 포춘이 올해 선정한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여성 리더 50인(The International Power 50)’에서 1위를 차지한 왐슬리는 2017년 4월 GSK CEO로 취임한 후, 신속하고 급진적인 변화를 일으켰다. 취임 후 단 몇 달 만에 최고위 경영진 40%를 교체했고, 신약개발 프로그램 30개와 130개 브랜드를 종료시켰다. 불과 3년 전에 미 식품의약국(FDA) 인가를 얻은 당뇨병 치료제 탠지엄 Tanzeum의 판매 종료 계획을 발표하기도 했다.
왐슬리의 재임 첫 1년간 GSK는 희귀병 사업부를 매각했고, 세팔로스포린계 항생제 사업에 대한 전략적 검토를 시작했다. 쟁쟁한 인재들로 새 경영진을 구성했고, 지난 7월에는 가정용 유전자 검사 키트 판매업체로 풍부한 데이터를 강점으로 하는 23앤드미 23andMe에 3억 달러를 투자하기도 했다. 왐슬리는 새로운 (GSK에선 일찍이 없던) 수준의 조직 쇄신도 단행했다. 회사의 3대 사업부문에 적용되는 주요 성과지표·직원평가 기준·전략을 하나로 통합해 시행에 들어간 것이었다. 지난 6월 포춘과의 인터뷰에서 왐슬리는 “나는 CEO직을 이렇게 정의한다. 먼저, 회사의 전략을 짠다. 그리고 이 전략에 따른 자본 배분을 지휘한다. 전략이 있는 곳에 돈이 들어갔을 때 그 전략은 비로소 자신의 것이 되는 법”이라고 말했다. 그건 R&D에 집중하겠다는 뜻이었다.
조직문화 개편도 시작됐다. 우선 회의의 허례허식을 없앴다. “오늘 이 자리에 모인 이유는 무엇입니까?”라는 말로 시작하는 회의가 많아졌다. 파이낸셜 타임스와 가진 CEO 취임 후 첫 인터뷰에서 왐슬리는 GSK 과학자들이 더 이상 “취미의 꿈나라에서 잠들 수 없을 것”이라는 다소 거친 표현을 쓰기도 했다.
GSK에서 왐슬리는 엄격한 규칙 준수의 상징이 되었다. 최근 퇴사한 한 고위 임원은 그녀의 소통 방식을 전임자 위티와 비교해 달라는 질문을 받자, 잠시 웃음을 터뜨린 후 “극과 극”이라고 답했다.
앤드루 위티 경은 ‘성인(Saint)’이라고 불릴 만한 인물이었다. 9년 간의 GSK CEO 임기를 마칠 무렵, 그는 비정통적 경영전략으로 대형 제약사의 나쁜 경향에 정면으로 맞서 많은 이들의 존경을 받기도 했다. 위티는 초고가 약값을 지불할 능력이 있는 소수 선진국 시장에만 약을 출시하는 대신, 가격을 낮춰 전 세계 시장에 대량 판매하는 ‘규모의 경제’를 추구하겠다고 선언했다.
덕분에 GSK는 ’약물접근성 지수(Access to Medicines Index)‘의 단골 1위가 됐다. 2016년에는 사회적 선행을 통해 사업 성공을 이룬 기업을 다루는 포춘의 ’세상을 바꾸는 기업들‘ 리스트에서 1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위티는 지저분하기로 악명 높았던 제약 영업사원들의 판매모델도 바꿨다. 약 판매량보단 약에 대한 지식에 따라 사원들을 평가하기 시작했다. GSK는 공공보건의 필수 요소지만 이익률이 극단적으로 낮은 필수 백신 개발에도 집중했다. 30년 간의 노력 끝에 2015년 인가를 받은 사상 첫 말라리아 백신이 그 대표적 사례이다.
그러나 사실 이 전략은 순전히 이타적 의도에서 나온 건 아니었다. GSK의 핵심 치료제는 호흡기 질환과 AIDS 치료제다. 혁명적인 암 치료제나 천문학적 약값을 자랑하는 희귀병 치료제는 많지 않았다(흥미롭게도 왐슬리는 집중 전략의 일환으로 지난 4월 몇 종 되지 않는 GSK의 고가 유전자치료 약품들을 매각했다. 가격이 70만 달러가 넘는 아데노신탈아미노효소결핍증(ADASCID)이라는 면역질환 치료제 등이다).
그러나 투자자들은 수십만 달러짜리 처방전이 발행되는 시대에 위티가 추구하는 느리고 착한 양산 전략을 더 이상 참고 기다릴 수 없었다. 300년 역사의 GSK가 혁신적 신약을 내놓지 못하는 듯하
자, 많은 투자자이 실망을 했다. 이런 단점은 연구보단 마케팅이 미비했던 탓일 것이다. 실제로 최근 몇 년간 GSK는 동종업계 중 신약 개발 건수 기준 최상위권에 들었다. 그러나 대부분이 상업적 성공으로 이어지진 못했다. 이 문제를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통계가 있다. 2016년 GSK 약품부문은 특허 만료 등으로 인해 2004년과 엇비슷한 수준의 매출에 머물렀다.
2016년 3월, GSK 이사회는 위티가 다음해 퇴진한다고 발표했다. 이사회는 전 세계를 대상으로 후임자를 찾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9월 이사회는 회사 안에서 적임자를 발견했다. 위티가 몇 년 전 상하이에서 열린 교류 행사에서 영입했던 당시 나이 47세의 왐슬리였다.
전현직 동료들은 왐슬리가 이상적인 선택이었다고 말하고 있다. 면역학자이자 데이나-파버 암연구소 Dana-Farber Cancer Institute의 CEO인 로리 글림처 Laurie Glimcher GSK 이사는 왐슬리에 대해 “거스를 수 없는 자연의 힘” 같은 사람이며, “평생 그보다 빨리 배우는 사람을 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GSK의 R&D를 총괄했던 몬세프 슬라위 Moncef Slaoui는 왐슬리를 “용기 있고, 협조적이고, 쉽게 만족하지 않는 리더”라 평가했다. 듣는 데 뛰어나고 언제나 배우려 하지만, 결정을 내릴 땐 빠르고 흔들림이 없다는 게 주변의 평가이다. 왐슬리는 ‘혁신-실적-신뢰!’ 같은 표어를 반복하고, 구호를 만드는 등(“빠르게 움직이는 소비자 헬스케어”라는 말을 즐겨 쓴다) ‘컨설턴트 같은’ 언어 구사에도 소질을 보이고 있다.
왐슬리는 기업 이사회에도 여러번 참여한 경력이 있는 영국 해군 준장 출신 로버트 왐슬리 Robert Walmsley 경의 딸이다. 어린 시절을 영국 컴브리아 Cumbria에서 보낸 후, 그녀는 상류층 기숙 여학교인 세인트 스위던 St. Swithun’s 연설부와 성가대에서 활동했다(오페라에서 백마 탄 왕자 역을 맡기도 했다). 이후 옥스퍼드대에 진학해 고전과 언어를 배웠다. 대학 졸업 후에는 코바 그룹 Coba Group에 입사했다(코바는 이후 회계감사법인인 PwC에 인수됐다). 세인트 스위던 시절 왐슬리의 몇 년 후배였으며, 훗날 프랑스 화장품 기업 로레알에서 그녀와 함께 일한 소피 메이슨 Sophie Masson은 왐슬리가 학창 시절부터 “놀라운 카리스마를 보인 리더”였다고 회고했다. 왐슬리는 1994년 로레알에 입사한 후 승진 사다리를 타고 올라갔다. 영국과 프랑스에서 로레알 파리와 가니에르/메이블린 Garnier/Maybelline 브랜드 관련 업무를 담당했다.
이 시절 왐슬리와 함께 일한 파트리크 쿨렌베르 Patrick Kullenberg(현재는 로레알 럭스 노르딕스 L’Or?al Luxe Nordics 총괄 관리자다)는 당시 회의나 발표 자리에서 그녀의 전달력이 얼마나 좋았던지 연기를 공부해 본 사람 같았다고 회고했다. 왐슬리의 말에는 “효과가 있었다”는 것이었다. 쿨렌베르는 대부분 프랑스인이고 남자였던 로레알 임원들 사이에서 왐슬리가 눈에 띄는 존재였다고 말했다.
이후 메이블린의 고위 관리직으로 임명된 그녀는 유럽을 떠나 미국으로 이사했다. 2007년에는 로레알 중국 소비자 제품 사업 총괄을 맡아 상하이로 옮겨갔다. 왐슬리 밑에서 일했고 잠시 같은 사무실을 쓴 적이 있는 쿨렌베르에 따르면, 당시 왐슬리는 사내에서 “존경 받는 임원”이었고, 군인처럼 절도 있게 일을 처리했다. “‘집중해야 하니까 12시까지는 말을 걸지 말아주세요’ 같은 말을 하곤 했다”고 설명했다.
왐슬리는 자신에게만 엄격한 기준을 적용하지 않았다. 메이슨은 “왐슬리는 팀 전체에도 아주 높은 목표를 요구했다”고 말했다. 립스틱 신상품 출시 직전, 마지막 순간에 변화를 지시했던 적도 있었다. 그녀의 리더십은 효과적이었다. “우리는 왐슬리의 비전에 굉장히 감명을 받았기 때문에 리더가 원하는 결과를 만들어 내고 싶었다.” 메이슨의 말이다.
계속 담당 브랜드와 주재국이 바뀌는 왐슬리의 경력은 로레알의 최고위 임원을 향한 전형적인 승진 가도였다. 따라서 그녀의 GSK행은 충격으로 다가왔다. 왐슬리 본인도 자신의 결정에 대해 놀랐던 듯하다.
2010년 당시 40세였던 왐슬리는 기업가인 남편 데이비드와 네 아이(모두 당시 10세 이하였다)와 함께 중국에서 ‘엄청난 가족 모험(왐슬리가 LeanIn.org에 기고한 글에서 발췌)’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위티와 만나 영국에서 GSK의 소비자 상품 부문 총괄로 일해 달라는 제안을 받은 후 모든 것이 바뀌기 시작했다.
왐슬리는 훗날 ‘이 제안을 받아들이는 건 미친 짓이라고 1주일 동안 스스로를 설득하려 했다’고 적었다. 로레알에 대한 ‘배신’이자 가족에게는 ‘불공평’한 결정이 되지 않을까 걱정했다. 그녀가 또 다른 중요한 문제라 지적했듯 ‘그건 아주 어려운 결정’이었다. GSK의 제안은 ‘사람, 포트폴리오, 성과, 문화 같은 엄청난 변화’를 포함하고 있었다. ‘변화는 좋지만, 변화를 이끄는 외부인은 보통 큰 인기를 누리지 못한다.’ 그러나 왐슬리는 결국 고민을 떨쳐내고, ‘미지의 세계’를 향한 ‘번지점프’에 뛰어들었다.
왐슬리는 마케팅 감각과 타고난 야망으로 새 업무에 임했다. 의치 접착 크림 폴리그립 Poligrip 부터 제산제 텀스 Tums까지, GSK 브랜드들은 소비자의 삶을 개선했지만 새로운 영감의 원천이 되지는 못했다. 비처방 의약품 브랜드의 경우, 세계에서 가장 인기 없는 브랜드 순위에 오를 정도였다. 하지만 왐슬리는 이 브랜드들이 애플, 나이키, 코카콜라만큼 사랑 받지 못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고객의 사랑을 받기 위한 캠페인에 돌입했다.
그러나 그 여정은 쉬운 길이 아니었다. 브랜드 이미지 제고는 과학적 사고에 더 익숙한 GSK 직원들에게 다소 낯설었다. 그러나 미디어 커뮤니케이션 기업 WPP의 임원 앨리나 케슬 Alina Kessel은 “캠페인과 왐슬리의 노력 덕분에 비처방 의약품 업계의 마케팅이 활성화됐다”고 평가했다. 이 기간 동안 사업 성과도 뛰어났다. 다른 대형 제약사 노바티스 Novartis와의 합작벤처 설립에 일부 힘입어, GSK의 소비자 상품 매출이 왐슬리가 이끈 5년 동안 68억 달러에서 94억 달러로 38%나 상승했다.
GSK의 한 전직 고위 임원은 “과거 소비자 부문은 조직 내의 작고 지루한 일부 사업부였고, 매출도 소소했다”며 “그런데 갑자기 왐슬리가 등장하면서 이 부문이 전면에 떠올랐다. 뉴스가 나오고, 변화가 보이고, 마케팅 담당들이 주목을 받더니, 아주 재미 있어졌다”고 말했다. 2014년 GSK가 노바티스와 거래를 추진하면서 왐슬리의 역할은 훨씬 더 복잡해졌다. GSK가 노바티스의 백신 사업부를 넘겨받는 대가로 항암 사업을 넘겨주는 교환 계약, 그리고 세계 최대 규모의 비처방 약품 기업을 만들기 위한 합작 벤처가 시작됐다. 합작벤처의 지분은 GSK가 좀 더 많았고, 신임 CEO도 왐슬리가 맡았다.
당시 노바티스에서 M&A를 담당했고 합작벤처 이사회에도 참여했던 마벨 설리번 버치톨드 Marvelle Sullivan Berchtold는 “합작벤처는 어렵기로 악명 높고, 실패로 평가될 때도 많다”고 말했다(JP모건체이스의 매니징 디렉터 버치톨드는 큰 관심을 모았던 JP모건·아마존·버크셔 해서웨이 Berkshire Hathaway의 의료산업 합작진출에도 참여한 바 있다). 통합이라는 당면 과제 외에도, 노바티스(실적 위주의 스위스 기업)와 GSK(이해관계자 경영이 최우선인 영국 기업)의 기업문화가 거의 극과 극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많았다.
왐슬리는 모두를 놀라게 했다. 버치톨드는 “통합이 얼마나 완벽했는지 아무리 강조해도 부족하다”고 말했다. “(이런 합작벤처에선) 문제 해결에 몇 년씩 시간이 걸리는 경우가 흔하다는 걸 잊게 만들 정도였다.” 왐슬리는 노바티스 최고위 임원들이 회사를 떠나지 않는 것도 이뤄냈다. 버치톨드는 “그녀에 대한 임원들의 평가가 아주 좋다. 무척 존중을 받으면서도, 리더는 왐슬리라는 게 아주 명확했다”고 말했다.
GSK의 디지털 및 기술 최고책임자 캐러넌 테럴 Karenann Terrell(왐슬리가 CEO 취임 후 처음 영입한 주요 인사 중 한 명이다)은 당시 월마트의 최고정보책임자(CIO)로서, 두 사업부의 합병을 지켜봤다. 완벽한 합병 과정은 업계 전체의 주목을 받았다. “에마(왐슬리)를 모르는 사람은 없었다. 단 한 사람도.” 테럴의 말이다.
합병이 성공적으로 마무리되면서, 왐슬리는 예전보다 더 많이 CEO 후보로 주목을 받았다. 하지만 실제로 자리에 오른 후 그녀는 조심스런 접근법을 선택했다. 공식 취임 전 6개월 동안, 왐슬리는 회사에 대한 안팎의 의견을 듣기 위해 ’GSK 경청 투어‘에 나섰다.
왐슬리는 이 과정에서 ’내부자이자 외부자‘인 자신의 위치가 장점이라고 판단했다. 그녀는 양 쪽 관점을 모두 볼 수 있었다. 그럴 수 없는 사람들에게 이를 전달하는 능력이 있다는 것도 중요했다.
취임 직후 왐슬리가 주최한 솔직한 대화가 그 좋은 사례다. 신임 CEO는 런던의 한 사무실에 R&D 고위 임원들을 모아 놓고, GSK의 R&D 실적에 대한 전문가 평가를 담은 영상을 틀었다. 당시 그 자리에 있었던 한 전직 임원은 “영상 속 거의 모든 전문가가 ‘나라면 이런 기업에 투자하지 않을 것’이라며 상당히 가혹한 평가를 내렸다”고 회상했다.
그렇다면 방 안의 반응은? 침묵이었다.
이 전직 임원은 회사에 대한 자부심이 상당하고 세상도 자신들을 인정한다고 믿고 있는 R&D 조직 입장에선 “정통으로 한 방 맞은 느낌”이었다고 설명했다.
이 방법은 아프긴 했지만 효과적이었다. 왐슬리가 추구하는 틀을 제시했기 때문이었다. 전직 임원은 영상이 끝난 후 “그녀가 ’이제 금기는 없다. 세상은 우리가 고장 났다고 한다. 이제 한번 고쳐 보자‘는 메시지를 전했다”고 당시를 회고했다.
왐슬리는 즉시 고난도 균형잡기에 나섰다. 내부에서 극찬을 받은 전임자 위티의 유산을 인정하면서도, GSK의 단점을 해결해야 했다.
지난 6월 포춘과의 인터뷰에서(이번 기사를 위한 인터뷰 요청은 거절했다) 왐슬리는 “GSK는 그동안 선행을 통해 좋은 성과를 올리는 데 뛰어났다. 그런데 선행을 더 많이 하려면 일을 더 잘 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그녀는 위티가 GSK의 백신 및 소비자 상품 부문에서 “아주 훌륭하게 일을 했다”고 평가했다. 왐슬리의 GSK 부활 전략에서 핵심은 나머지 한 부문(의약품)이었다. “제약의 핵심은 R&D다. 과학, 발견, 개발 분야에서 우리의 마법적 능력을 되찾고 싶다.”
위티와 함께 GSK에서 은퇴한 전임 R&D 책임자 슬라위는 최근 GSK 본사를 방문했다. 그리고 그의 눈에 금방 몇 가지 차이점이 발견됐다. 임원 사무실은 위티의 배치대로 여전히 1층에 있었지만, 어쩐지 전보다 눈에 잘 띄었다. 사방을 흰색으로 칠해 깔끔하고 날카로운 분위기를 풍겼다. 그는 “숨을 데가 없다”고 평가했다.
슬라위는 왐슬리의 솔직하고 긴급한 전략이 일부 직원들에게 에너지와 활기를 불어넣었음을 발견했다. 반면 다른 직원들은 겁을 먹은 채 앞날에 대해 두려움을 느끼고 있었다. 그는 “GSK가 예전과 달라졌다”며 “회사가 변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왐슬리가 물갈이 한 경영진이 그 증거이다. 의약품 사업부를 이끌고 있는 핼 배런 Hal Barron은 제넨테크 Genentech와 구글의 ‘비밀 영생 연구소’라 할 수 있는 바이오벤처 캘리코 Calico에서 임원을 역임한 인물이다. 배런은 과거 대형 제약업체의 제의를 수 차례 거절했지만, 작년 11월 GSK의 R&D 수장 자리는 수락했다. ‘옆 동네 라이벌’ 애스트라제네카 AstraZeneca/*역주: 두 회사 모두 영국에 본사가 있다/에서 잔뼈가 굵은 루크 밀스 Luke Miels의 영입이 격렬한 법정 다툼을 일으키기도 했다. 그 외에도 화이자, 노바티스, HSBC에서 촉망 받는 인재들이 합류했다.
왐슬리의 새 경영진은 타운홀 미팅과 투자자 발표에 모두 참석하고 있다. 대개 이런 행사에 CEO 혼자 참석했던 위티 시절과는 극명한 차이가 있다. 왐슬리는 포춘과의 인터뷰에서 “우리 회사가 가져야 할 야망과 도전에 궤를 함께할 인재를 모으는 일이야말로 나의 가장 중요한 역할이다(…)어려운 결정을 내릴 때 자신의 경험을 활용할 수 있도록, 그들에게 자유와 권한을 부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왐슬리는 대부분의 다른 CEO에 비해 ‘자유’를 훨씬 넓은 의미로 사용하는 듯하다. 수많은 페이스타임/*역주: 애플의 영상통화 프로그램/ 대화 끝에 GSK에 합류한 배런은 회사 주요 연구단지와 멀리 떨어진 샌프란시스코에 살고 있다. 왐슬리는 “그가 혁신(실리콘밸리)과 가까이 있다는 점을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다”고 말했다.
혁신은 현재 왐슬리의 최우선 과제다. 배런은 경영진에 합류한 지 아직 1년도 안 됐지만, 이미 과감한 결정을 여러 건 내렸다. 실리콘밸리의 유전자검사 업체 23앤드미와의 3억 달러 규모 협력관계 체결도 그 중 하나이다. GSK는 이제 신약 후보의 생물학적 목표(target) 확인에 23앤드미의 익명 유전 데이터(anonymized genetic data)를 활용할 수 있다. 수백만 명의 유전 정보가 가득찬 이 데이터 풀은 신약 개발 성공 확률을 높여 줄 수 있다. 신약후보 10종 중 1종 정도만이 실제 시장 출시에 성공하는 업계 특성상 꼭 필요한 요소다. 23앤드미의 데이터는 또한 상당한 비용과 시간이 소모되는 임상시험에 참여할 환자를 모집할 때에도 도움이 될 수 있다. 현재 이 가능성에 대해 두 회사가 세부 조율을 하고 있다.
왐슬리가 집권한 지 약 17개월이 된 현재, 투자자들은 관망을 선택한 듯하다. GSK의 올해 주가는 거의 변동이 없었다.
한편, 우드퍼드는 글랙시트가 너무 빨랐다고 생각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는 주식을 전량 매각한지 6개월이 지난 후인 작년 11월 “왐슬리의 결정 중 몇 가지는 인상적이었다”고 인정했다. 급기야 펀드평가사 모닝스타 Morningstar와의 인터뷰에선 “나중에 다시 GSK 지분을 살지도 모르겠다”고 말했다.
▲균형을 맞춘 GSK의 사업부
월 스트리트는 GSK의 재벌식 기업구조를 좋아하지 않았다. 그러나 왐슬리가 의약품 사업부에 활기를 불어넣자, 나머지 사업부가 완충 작용을 해주고 있다. GSK의 각 사업부를 간단히 살펴본다.
-의약품: 왐슬리의 현재 최대 목표는 GSK 매출의 57%를 차지하는 의약품 사업부의 부활이다. 그 동안 경쟁사 대비 신약 출시가 부진했던 만큼, 그녀는 개발 속도와 마케팅을 개선하려 하고 있다. 다행히 2017년 신약 2건(약물 3종을 혼합한 흡입형 만성 폐쇄성 폐질환(COPD) 치료제와 에이즈 환자용 복합 치료제)의 승인을 획득했다. GSK는 이 두 신약과 함께 그 동안 미진했던 종양학과 면역학에 R&D 역량을 집중할 전망이다.
-백신: 사업규모 68억 달러의 GSK 백신사업부는 매일 200만개의 백신을 생산하고 있다. 지난해 인가를 받은 대상포진 예방 효과가 뛰어난 신약 싱그릭스 SHINGRIX의 기세를 이어 나가려 한다. 미 질병예방통제센터(CDC)는 50세 이상 중장년층에게 싱그릭스 접종을 추천하고 있다. 수막염 백신인 벡세로 BEXSERO의 매출도 호조세다. 올해 벡세로는 백신 중에선 처음으로 FDA ‘혁신 치료제(Breakthrough Therapy)’로 지정됐다.
-소비자 사업부: 왐슬리는 전체 매출의 25%를 차지하는 소비자 사업부를 이미 개혁했다. 합작벤처 형태였던 이 사업부(2014년 설립)의 노바티스 지분 36%를 매입했다. 이제는 이익률 개선이 더 중요한 핵심 과제가 될 것이다. 이 사업부의 브랜드 포트폴리오에는 엑세드린 EXCEDRIN, 플로네이스 FLONASE, 텀스 TUMS 같은 해당 분야 1위 품목들이 즐비하다.
번역 김화윤 whayoon.kim@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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