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일 이낙연 국무총리의 ‘금리’ 발언을 두고 시장에서는 부동산 값을 잡기 위한 ‘의도된 발언’이라는 해석과 평소 신중하기로 유명한 이 총리 답지 않은 ‘실수’라는 분석이 엇갈리고 있다. 하지만 어느 쪽이든 정부 고위 관료가 한은의 ‘금리’를 언급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의도인가 실수인가=이낙연 총리는 4선 국회의원을 지낸 정치 베테랑이다. 19대 국회에서는 한국은행 등 경제부처를 담당하는 상임위원회인 기획재정위원회 위원으로도 활동했다. 이 총리가 금리발언의 파급효과를 모를 리 없다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더욱이 지난해 8월 김현철 청와대 경제보좌관과 지난달 청와대 고위 관계자가 ‘금리’ 발언을 했다가 한은 독립성 침해 논란이 불거진 사실을 이 총리가 모를 리 없다.
채권 시장의 한 관계자는 “이 총리가 한은 독립성 논란과 채권시장 혼란을 감수하고더라도 부동산 시장을 잡겠다는 의지를 보여주기 위해 금리를 언급한 것처럼 보인다”고 말했다.
“이 총리가 인상 불가론을 외치는 일부 금통위원에게 경고장을 날렸다”는 분석도 나온다. 이 총리의 금리 발언이 박근혜 정부의 금리정책 실패를 지적하는 박영선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질의에 답변하는 과정에서 나왔기 때문이다. 실제 인상에 부정적인 것으로 알려진 금통위원은 대부분 박근혜 정부 당시 임명됐다.
하지만 부주의한 실수라는 분석도 만만치 않다. 금리 등락에 따라 수조원의 돈이 왔다갔다 하는 채권 시장의 상황을 아는 이 총리가 의도적으로 금리 발언을 했다는 것은 과잉해석이라는 것이다.
◇한은 운신 폭 좁아져=한은 안팎에서는 이 총리의 발언으로 금리올리기가 오히려 더 어려워졌다는 반응이 나오고 있다. 자칫 금리를 올릴 경우“정부 압박에 굴복했다”는 비판을 받을 수 있어서다.
현재 한은 금통위에서는 ‘인상론’과 ‘동결론’이 팽팽하게 맞서고 있다. 한은 집행부는 10월 내지 11월 금리 인상을 유력하게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7·8월 금통위에서 총재 추천 몫인 이일형 금통위원이 ‘인상’을 주장하는 소수의견을 내며 깜빡이를 켰고, 이주열 총재도 8월 금통위 직후 기자간담회에서 “경제성장세가 잠재성장경로에 있고 물가도 오름세에 있다”며 인상 신호를 보냈다. 이달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기준금리 인상이 유력하다는 점도 금리 인상에 힘을 실어주는 요인이다.
하지만 여전히 일부 금통위원은 ▲경제침체 국면 진입 ▲고용참사 ▲저물가 등을 이유로 ‘동결’ 의견을 굽히지 않는 것으로 전해졌다. 한은 관계자는 “최소 2명의 금통위원이 인상을 반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더욱이 10월 금통위는 경제전망 수정치 발표까지 겹쳐 있어 한은의 운신 폭은 더욱 좁은 상황이다. 한은 관계자는 “최근 고용사정 악화 등을 반영해 2.9%인 올해 성장률 전망치를 하향할지 여부를 검토해야 하는 상황”이라며 “성장률 전망치를 내리고 금리를 올린 경우는 한은 역사상 한 번도 없다”고 말했다. 또 다른 한은 관계자는 “그렇지 않아도 금리 올리기 어려운 상황인데 이 총리의 발언으로 더 곤란한 처지에 놓이게 됐다”고 토로했다.
◇정권 초만 되면 금리 개입...전문가들 ‘부적절’=역대 정부의 경제관료나 정치인들은 새 정권 출범 첫해면 어김없이 한은의 금리정책을 언급해 ‘한은 독립성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정부의 재정정책 기조에 맞게 한은이 금리를 조정하도록 압박한 것이다. 이명박 정부의 강만수 전 기재부 장관, 박근혜 정부의 현오석, 최경환 전 장관이 대표적이다.
채권시장의 한 관계자는 “문재인 정부는 역사상 처음으로 총재 ‘연임’을 허용하며 한은의 독립성을 보장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줬다”며 “하지만 이 총리의 발언은 이를 한순간에 뒤집었다”고 꼬집었다. 익명을 요구한 민간 경제연구소 관계자는 “의도된 것이든 아니든 금리 발언은 부적절하다”며 “자칫 통화정책의 신뢰를 떨어뜨려 더 큰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다”고 말했다.
/김능현·임진혁기자 nhkimchn@sedaily.com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