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지금 사용하는 휴대폰의 무선통신 기술은 제임스 맥스웰의 전자기파 방정식에서 나온 것이다. 과학기술로 새로운 세상을 연 대표적인 사례다. 하지만 전류가 흐를 때 자석이 움직이는 것이 덴마크 물리학자 한스 크리스티안 외르스테드에 의해 발견되지 않았다면, 마이클 패러데이가 전자기 현상을 증명해 보이지 않았다면 맥스웰 방정식도 등장하지 않았을지 모른다.
이처럼 세상을 바꾼 큰 과학기술은 자칫 놓치기 쉬운 작은 현상의 관찰에서 시작된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 같다.
혁신확산이론으로 유명한 에버렛 로저스 전 뉴멕시코대 교수는 기술의 수명주기를 예측함에 있어 얼리 어답터의 중요성을 피력했는데 시장에 나온 새로운 제품의 가치는 얼리 어답터의 구매력과 평가를 보면 알 수 있다는 것이다. 혁신기술 제품이 시장에서 확산할 수 있는지 가늠하기 위해 기업들은 얼리 어답터를 일종의 베타테스트(IT용 제품을 상용화하기 전 사용자에게 제품평가를 의뢰하는 과정)에 활용하기도 한다고 한다.
기존의 기술 또는 제품을 시장에서 사라지게 하는 새로운 기술을 와해기술이라고 하는데 비디오테이프가 우리 주위에서 사라진 것은 값싸면서도 더 많은 데이터 저장 능력을 가진 새로운 기술이 등장했기 때문이다. 와해기술의 등장은 기존 기술의 개선이 절실히 필요했기 때문이다. 흔히 기존 기술의 개선을 이노베이션(혁신)이라고 한다.
그러나 점진적 개선으로는 와해기술을 만들기에 충분하지 않아 보인다. 기존 기술과 차별되면서 완전히 새로운 기술을 개발해야만 시장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 기존 기술의 문제점을 사용자 입장에서 정확하게 파악하는 것이 기술혁신의 첫걸음이라고 생각한다.
가장 앞에서 새로운 분야를 개척하는 선도자를 퍼스트무버라고 한다. 과학기술에 종사하는 연구자나 기업에서 제품 개발을 담당하는 부서는 최신 기술을 빠르게 쫓아가는 패스트팔로어가 되기보다 퍼스트무버가 되라고 요청받는다. 어떻게 하면 퍼스트무버가 될 수 있을까.
첫째, 미래기술의 메가트렌드를 읽을 줄 아는 것이 중요하다. 와해기술이 가능한 기술혁신에는 징후가 있다. 화학반응에서 반응물이 생성물로 변하기 위해서는 전이상태(transition state)를 거쳐야 한다. 전이상태에서는 바뀌는 원소와 바꾸는 원소가 공존하게 된다. 기술에도 마찬가지로 전이상태가 존재하는 것 같다. 언제부터인가 우리에게 친숙한 하이브리드 자동차는 가솔린과 전기를 함께 사용하는 기술이다. 하이브리드 자동차를 보면서 자동차 시장은 전기자동차로 변해갈 것이라는 점을 짐작하게 된다. 가솔린 자동차는 기존 기술이며 전기자동차는 새로운 기술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유럽에서는 오는 2030년 또는 2040년부터 가솔린 자동차의 판매를 금지한다고 한다. 에너지에서도 비슷한 현상이 보인다. 화석연료를 사용하는 발전기술이 신재생에너지를 사용하는 기술로 전이될 것이라는 점을 하이브리드 전력 시스템으로부터 예측할 수 있다.
둘째, 퍼스트무버가 되기 위해서는 다양한 기술 경험이 필요하다. 스티브 잡스는 스탠퍼드대 연설에서 미래는 과거와 현재의 모든 경험이 연결돼 나타난다는 것을 의심하지 말라고 했다. 기술도 마찬가지이다. 우리나라가 선도하고 있는 페로브스카이트 태양전지는 염료감응 태양전지, 양자점 태양전지라는 점들이 연결돼 탄생한 혁신적인 기술이다. 지난 2017년 클래리베이트 애널리틱스는 페로브스카이트 태양전지 기술을 노벨상 수상이 가능한 분야라고 발표했다. 에너지의 맥스웰 방정식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시사하고 있다. 이제 그동안 쌓은 기술 경험들을 연결해 퍼스트무버로 나아가는 노력이 필요한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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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성균관대학교 화학공학/고분자공학부 교수, 한국과학기술한림원 정회원, 영국왕립화학회 Substantiable Energy and Fuel 학술지 편집위원, 수상: 호암공학상(2018년)·나노코리아 국무총리상(2018년)·노벨화학상 수상가능자 선정(2017년)·덕명한림공학상(2016년)·듀폰과학기술상(2010년)·이달의 과학기술자상(200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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