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그리스의 철학자인 트라시마코스(기원전 459~400년)는 정의에 대해 “지배자나 권력자 등 강자의 이익을 강화시키는 것”이라고 규정했다. 트라시마코스는 고대 그리스의 해상 식민도시인 칼케돈(현 튀르키예 이스탄불) 지역에서 태어났으나 주로 아테네에서 소피스트로 활동하면서 정의와 권력에 관한 논리를 많이 펼쳤다. 법과 질서도 권력을 가진 자의 이익을 합리화하는 도구라는 게 그의 인식이었다. 지극히 현실주의적 시각에서 세상을 바라본 것이다.
트라시마코스는 정의를 ‘인류를 위한 선행’의 관점으로 바라본 소크라테스와 논쟁을 벌이기도 했다. 당시 소피스트들 사이에서 철학 논쟁이 활발했는데 두 사람의 논쟁은 주로 정의의 본질에 관한 탐구에서 비롯됐다. 트라시마코스는 “정말로 목동들이 그들의 양과 소들을 위해서 행동한다고 생각하는가”라며 지도자들도 마찬가지로 국민들을 바라볼 때 자신들에게 가장 큰 이익이 되는 일들을 생각한다고 날카롭게 꼬집었다. 반면 소크라테스는 정의를 권력의 도구가 아니라 공동체 구성원이 각자 역할을 다하며 전체 질서에 기여하는 것으로 봤다. 정의를 건강한 공동체를 구현하기 위한 필수조건으로 여긴 것이다. 두 사람의 유명한 ‘정의 논쟁’은 플라톤의 책 ‘국가론’에 잘 소개돼 있다.
현재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주도하는 관세전쟁은 트라시마코스의 정의관을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라고 할 수 있다. ‘미국 우선주의’ 기치를 내건 트럼프 대통령은 자국 이익 극대화에만 초점을 맞춰 적과 동맹국을 가리지 않고 압박한다. 그러나 소크라테스가 오늘날 다시 나타나 관세전쟁을 지켜본다면 ‘정의의 붕괴’를 지적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자유무역에 따른 글로벌 분업 체제를 무너뜨려 국제 질서의 안정을 위협한다고 트럼프를 질타할 게 분명하다. 동시에 궁극적으로 그 피해가 미국에도 부메랑으로 돌아올 수 있다며 자신과 트라시마코스의 관점 사이에서 균형을 잡으라고 조언할 것이다. 이재명 정부는 약육강식의 논리가 지배하는 냉혹한 국제 현실을 직시해 힘을 기르면서 소프트파워와 과학기술을 키워야 정의를 실천할 수 있다는 점을 유념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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