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액 자산가 며느리 A씨는 시아버지로부터 5억원을 증여받아 고금리 회사채를 샀다. 이후 A씨는 어린 자녀 이름으로 계좌를 개설한 뒤 회사채를 넘기는 방법으로 증여세를 탈루했다.
20대 후반인 B씨는 아버지가 대표이사로 있는 회사에 다니면서 서울 성동구에 있는 아파트를 17억원에 구매했다. 돈은 아버지 회사에서 나온 것으로 전형적인 편법 증여다.
국세청이 24일 수억원대 고액 예금이나 주식을 보유한 미성년자와 돈벌이가 없음에도 고가 아파트를 취득한 268명에 대해 세무조사에 착수했다.
지난해부터 4차례에 걸쳐 부동산 세무조사를 벌여 지금까지 6,231억원을 추징한 국세청은 이번에 금융자산에 집중했다. 개인병원 원장인 C씨는 병원 수입금액을 탈루해 마련한 10억원을 미성년 자녀의 증권계좌로 이체하고 이 돈으로 고가의 상장주식을 사게 했다. 자녀에게 10억원어치의 주식을 증여하면서 세금을 안 낸 것이다. D씨도 수년에 걸쳐 미성년 자녀에게 9억원의 예금을 물려줬다가 세무당국으로부터 증여세 3억원을 추징당했다. 이런 식으로 소득이 없는 미성년자가 세금 납부 없이 고액의 예금과 주식을 보유해 조사대상에 오른 이들만 151명에 달한다. 국세청의 한 관계자는 “고액예금의 기준은 수억원대로 5살 아이도 증여를 받은 경우가 있다”고 설명했다.
고가아파트를 몰래 물려준 사례도 여전했다. 대학에서 강의하는 30대 초반의 E씨는 9억5,000만원짜리 서울 용산구 아파트에 살면서 건설업을 운영하는 아버지로부터 전세자금을 편법으로 증여받고 증여세를 탈루했다가 덜미를 잡혔다. 치과의사 F씨도 송파구 재건축 아파트 및 오피스텔을 사들이면서 처가에서 증여를 받고 병원 수입을 누락했다. 국세청은 F씨에게 5억원을 추징했다.
대기업 관련 편법증여도 조사대상에 올랐다. 국세청은 이번에 차명주식을 이용하거나 신주인수권부사채(BW) 및 전환사채(CB) 우회인수 등의 방법으로 경영권을 편법으로 승계한 40개 법인에 대한 세무조사를 벌인다. 구체적으로 G씨는 법인 주식 명의수탁자인 임직원들이 퇴직한 후 명의신탁주식을 실명전환하지 않고 자녀들이 100% 주주로 있는 법인에 저가로 양도해 양도세 및 증여세를 탈루했다. H씨는 수조원 규모의 계약이 있다는 점을 안 뒤 미성년 손주에게 주식을 사전 증여했다. 세금은 냈지만 내부정보를 활용해 향후 주식가치가 급등할 것이라는 점을 알고 저지른 일이었다. 손주들은 막대한 시세차익을 거뒀고 국세청은 실질적으로 증여세를 탈루했다고 보고 세무조사를 하고 있다. 신주인수권을 주식으로 전환해 이익을 얻고도 증여세를 신고하지 않거나 자녀가 주주로 있는 법인에 통행세를 물게 한 사례도 적발됐다. 자녀 법인에 일감을 몰아줬으면서도 증여세를 무신고한 경우도 있었다.
국세청은 향후 고액 금융자산의 세무조사 범위를 확대하고 필요 시 직계존비속의 자금흐름과 기업자금 유출, 비자금 조성행위까지 면밀히 검증할 계획이다. 법인을 이용한 변칙거래와 경영권 편법승계도 꼼꼼히 들여다본다. 특히 차명계좌로 밝혀지면 탈세 여부와 함께 금융소득 차등과세를 통해 90%의 세율을 적용한다. 이동신 국세청 자산과세국장은 “대기업과 대재산가의 변칙 상속·증여 및 불공정 탈세는 더 이상 국민들로부터 용납되지 않는다”며 “증여세 신고기한 이후라고 신고 시 가산세를 감면받을 수 있다”며 성실 신고를 강조했다.
/세종=김영필기자 susopa@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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