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안전기준만 충족하면 수입을 허용하는 쿼터(수입 할당량)가 업체당 2만5,000대에서 5만대로 늘어나는 것은 단기적으로 국내 자동차 시장에 미치는 영향이 크지 않을 것으로 관측된다. 지난해 포드 8,107대, GM 6,762대, 크라이슬러가 4,843대를 한국 시장에 수출하는 등 이미 기존 쿼터에도 못 미치고 있기 때문이다. 일각에서 제기되는 우회 수출 우려도 당장은 크지 않다는 분석이 많다. 메르세데스벤츠가 GLE 등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모델을 미국에서 들여오지만 지난해 판매량은 5,000대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 수입차 업계 관계자는 “유럽이나 일본 완성차 업체들이 국내 안전기준을 회피하기 위해 미국 공장의 물량을 늘릴 유인은 크지 않다”고 말했다. 다만 중장기적으로는 국내 완성차 업체들의 내수 시장 점유율이 떨어질 것으로 우려된다. 대표적인 부분이 전기차로 대표되는 친환경 차량이다. 지난해 GM이 미국에서 들여 온 순수 전기차 볼트EV는 사전계약 3시간 만에 판매 물량 5,000대가 매진됐다. 포드 역시 전기차 부문을 확대하고 있는 만큼 미래 차 시장에서 이들 수입 브랜드의 영향력이 커질 수 있다.
한 완성차 업체 관계자는 “아직 자유무역협정(FTA) 개정안이 시행 전이라 구체적 피해를 추산하기는 이르다”면서도 “가뜩이나 판매 부진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국내 완성차 업체들의 부담은 늘어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자동차산업협회는 이날 공식 입장을 내고 국내 완성차 업체에 대한 환경 및 안전 기준을 미국 수준으로 낮춰야 한다고 요청했다.
철강업계는 미국의 철강 232조 관세부과에서 한국이 면제됨에 따라 일단 최악의 상황은 피한 것으로 보고 있다. 특히 지난해 대비 111%의 수출 쿼터를 확보한 판재류의 경우 25% 추가 관세 부담 없이 기존 수출 물량을 확보할 수 있게 됐다. 전체 매출의 27%를 차지하는 석도강판(식료품 캔에 주로 사용)을 주로 미국에 수출하는 동부제철의 경우 “판재류는 기존과 비슷한 수준으로 팔 수 있기 때문에 추가로 예외 품목 요청을 할 필요가 없어졌다”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4월부터 미국 수출을 잠정 중단한다고 밝힌 동국제강도 “고객사에서 수출 상담 요청이 들어오면 곧바로 미국 수출을 재개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미국으로 수출하는 한국 판재류의 90% 정도를 생산하는 포스코·현대제철(004020)의 경우 이미 미국 정부의 반덤핑관세로 60% 수준의 고율의 관세를 물고 있어 이번 협상 결과에 크게 의미를 두기 어렵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포스코 관계자는 “정부와 공조해 미국 현지 대표법인과 워싱턴 사무소를 중심으로 현지 고객사의 품목 제외를 체계적으로 지원할 예정”이라며 반덤핑관세 완화를 위해 계속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강관업체들은 이번 협상 결과를 보다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다. 수출 물량이 지난해 절반 수준으로 줄어들게 됐기 때문이다. 미국 상무부는 해마다 개별 철강재에 대한 반덤핑·상계관세율을 재산정하는데 당장 다음달 한국산 유정용강관에 대한 최종 판정이 예고돼 있다. 미국이 예비 판정에서 최대 46%의 관세를 책정하면서 파이프 제조업체들은 코너에 몰린 상황이다. 중견 파이프 제조업체 고위관계자는 “무역확장법 232조에서 비켜나기는 했지만 사실 더 우려스러운 것은 개별 품목에 대한 관세”라며 “미국이 또다시 고율의 관세를 매길 경우 현지 수요가 대폭 늘기를 바라는 것 외에는 답이 없다”고 토로했다.
/고병기·조민규·김우보기자 cmk25@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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