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 명성 그대로다. 2007년 한국 시장에 직진출한 게스는 국내시장에서 청바지 1등 브랜드로 굳건히 자리를 잡고 있다. 게스코리아는 게스 본사의 전폭적인 신뢰도 받고 있다. 게스코리아를 이끌고 있는 제임스 박 대표의 능력을 인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제임스 박 대표는 게스의 일본 법인까지 책임지고 있다. 청바지에 푹 빠져 살고 있는 제임스 박 대표를 만나 비즈니스 이야기를 들어봤다.
“게스 청바지가 처음 시장에 나왔을 때 정말 최고였죠. 기존에 나와 있던 청바지와는 완전히 달랐으니까요. 멋쟁이들이 입는 진짜 세련된 옷이었어요.” 서울시 강남구 삼성동 게스코리아 본사에서 만난 제임스 박 대표는 게스 청바지 얘기를 하며 활짝 웃었다.
게스는 폴과 모리스 마르시아노 형제가 1981년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론칭한 브랜드다. 게스는 출시되자마자 전 세계 청바지 시장을 뒤흔들었다. 빨간색 테두리를 두른 흰색 역삼각형 바탕에 물음표가 박혀있는 게스 로고는 전 세계 젊은이들의 열광적인 지지를 받았다. 청바지가 상징하는 ‘젊음’과 ‘반항’을 새로운 이미지로 바꿔놓은 것도 게스였다. 게스는 청바지를 순식간에 ‘섹시’ 아이콘으로 둔갑시켰다. 브랜드 출시 직후 아름다운 여자모델을 내세워 강렬한 이미지의 광고를 내보냈고, 곧 여성의 몸매를 가장 아름답게 표현할 수 있는 섹시한 청바지 이미지를 굳힐 수 있었다.
게스는 1989년 일경물산과 라이선스를 체결해 국내에 진출했다. 이후 두산그룹이 라이선스 사업권을 넘겨받아 2006년 말까지 국내에서 영업을 했다. 제임스 박 대표가 게스와 인연을 맺은 건 2005년의 일이었다. 당시 이탈리아 여성복 브랜드 ‘미스식스티’의 아시아지역 총괄 머천다이저(MD)를 맡고 있던 그에게 게스 창업자 중 한 명이자 전 회장인 모리스 마르시아노(현재 게스 회장은 동생인 폴 마르시아노가 맡고 있다)가 전화를 걸어왔다. 제임스 박대표는 당시 상황을 이렇게 설명했다. “이탈리아 피렌체에 있는 미스식스티 본사에 제품을 구매하러 갔을 때 모리스 마르시아노와 통화했어요. 친하게 지내던 미국인 친구가 마르시아노 회장에게 저를 소개했더군요. 게스가 아시아 지역에 직접 진출하고 싶은데 함께 일해보자는 거였어요. 7개월을 고민하다가 결국 회사에 합류했습니다.”
제임스 박 대표는 게스아시아 총괄 세일즈·머천다이징 디렉터 직함을 달고 홍콩에서 게스 쇼룸을 열었다. 그동안 한국과 중국 직진출 작업도 동시에 진행했다. 게스는 2006년 12월 두산그룹과 라이선스 계약이 끝나자마자 2007년 1월 1일 한국시장에 직진출을 했다(중국도 같은 해 직진출이 이뤄졌다). 제임스 박 대표는 한국 사업을 자신이 맡겠다고 모리스 마르시아노에게 직접 요청했다.
“두산그룹이 라이선스를 받아 영업을 하던 2006년에 게스는 한국 청바지 시장 꼴등 브랜드였습니다. 리바이스가 1위였고, 캘빈클라인, 버커루, 게스가 그 뒤였죠. 당시 리바이스 매출액은 1,500억 원 정도였는데, 게스는 (그에 20%에도 못 미치는) 280억 원에 불과했습니다. 두산에서 브랜드 운영을 잘못한 탓이 컸어요. 좋은 브랜드를 가지고도 장사를 못했으니까요. 제가 하면 잘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습니다.”
제임스 박 대표의 목표는 단순하고 명확했다. 게스를 시장 1등 브랜드로 되돌려 놓는 것이었다. 2007년에 게스코리아 직원은 제임스 박 대표를 포함해 8명뿐이었다. 그들은 전국 백화점에 매장 32개를 열고 다시 신발 끈을 조이기 시작했다. 그 결과 게스코리아는 직진출 첫해인 2007년 매출액 580억 원을 내며 바로 흑자를 기록했다. 그리고 설립 2년 만에 청바지 시장 1등 브랜드로 올라섰다. 현재 국내 청바지 시장은 게스가 1위, 캘빈클라인과 리바이스가 각각 2. 3위를 차지하고 있다.
게스코리아는 매 시즌마다 소비자들이 이전에 접해보지 못한 스타일과 소재로 만든 청바지를 100가지 이상 개발하고 있다. 최근 히트를 치고 있는 일명 ‘수지 데님(아이돌 스타 수지가 모델로 입고 나온 청바지 제품)’도 그 중 하나다. 이 제품은 나오는 즉시 완판을 기록하며 큰 인기를 끌고 있다.
게스의 핵심 해외법인 ‘게스코리아’
게스코리아는 2013년 매출 1,820억 원을 올려 정점을 찍었다. 제임스 박 대표는 그 해 게스아시아 총괄 수석 부사장으로 승진했다. 게스아시아는 한국과 일본을 포함해 14개 아시아 국가(중국 제외)의 영업과 판매를 책임지고 있
다. 현재도 게스아시아 총괄 수석 부사장직을 유지하고 있는 제임스 박 대표는 게스코리아 외에도 게스재팬의 대표직을 겸하고 있다.
한국에 온 제임스 박 대표는 게스코리아를 더 키우기 위한 방법을 찾기 위해 일본 시장을 연구했다. 그는 게스코리아 매출이 1,800억 원대를 찍으면서 성장이 정체되고 있다는 걸 감지했다. 국내에서 단일 패션 브랜드가 매출액 1,500억 원 이상을 올리면 최고 성장점에 달한 것으로 봐야 한다고 제임스 박 대표는 설명했다. 그에게 일본은 재미있는 시장이었다. 그는 일본 시장에도 직진출 해보자고 게스 본사에 제안했다. 제임스 박 대표의 의견을 수용한 게스는 2014년 게스재팬을 설립했다. 제임스 박 대표는 그렇게 일본 사업까지 책임지게 됐다.
제임스 박 대표는 말한다. “일본 패션업계는 백화점보단 로드샵이나 편집샵을 중심으로 영업을 진행합니다. 게스재팬은 백화점에 매장이 없어요. 그 대신 도쿄 시부야 같은 핵심 지역에 대형 직영 매장을 만들어 게스를 알리고 있죠. 일본에서 인기 있는 편집매장과 협업해 한정판 제품을 만들어 파는 작업도 꾸준히 진행하고 있습니다.”
제임스 박 대표는 한 달 중 절반을 일본에서 보내고 있다. 게스재팬 직원은 현재 18명이다. 146명이 일하고 있는 게스코리아와 큰 차이가 난다. 게스코리아는 게스 그룹 내의 ‘미니 컴퍼니’라 불리기도 한다. 디자인과 생산을 자체적으로 진행하는 유일한 해외법인이기 때문이다. 게스코리아가 디자인하고 생산한 청바지는 중국, 일본, 미국, 유럽 등 다른 게스 해외법인에도 수출되고 있다. 게스재팬의 제품 기획과 디자인도 게스코리아 소속 MD 5명이 전담하고 있다.
게스코리아는 3~4년 전부터 매장을 독립화하고 제품군을 늘리는 작업을 하고 있다. 이는 일본 시장에서 얻은 통찰을 현실화 한 것이다. 현재 게스코리아는 송도 트리플 스트리트, 잠실 롯데월드몰, 서울 명동, 서울 가로수길, 여의도 IFC, 스타필드 하남, 부산 센텀시티에 직영 플래그십 매장을 운영하고 있다. 올해 하반기 경기도 고양시에 문을 여는 ‘스타필드 삼송’에도 새로운 매장을 오픈한다. 특히 지난 4월 29일 인천광역시 송도국제도시 내 거리형 복합 쇼핑몰 ‘트리플 스트리트’에 개점한 ‘게스 송도 트리플 스트리트점’은 게스의 아시아 매장 중 최대 규모를 자랑하고 있다. 게스코리아의 모든 상품이 연면적 2,644㎡(250평) 규모인 2층 단독건물 매장에서 판매되고 있다. 제임스 박 대표는 말한다. “게스코리아의 올해 매출액 목표는 1,850억 원입니다. 우리는 한 번 매장을 찾은 손님에게 가능하면 많은 제품을 팔아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어요. 그렇게 하려면 매장에 제품군을 다양하게 갖춰놓아야 하죠. 현재 게스코리아는 청바지를 중심으로 한 어패럴 제품군 외에도 신발, 핸드백, 백팩, 언더웨어 등으로 제품군을 확대하고 있습니다.”
게스는 올해 10월 새로운 제품 라인을 만들어 글로벌 론칭할 계획이다. 이는 제임스 박 대표가 5년 전부터 고민하다가 본사에 제안해 게스코리아가 주도적으로 이끌고 있는 프로젝트다. 게스코리아가 디자인과 생산을 맡아 글로벌 시장에 론칭한다. 제임스 박 대표는 이 라인업이 5년 안에 3,000억 원 매출을 올릴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하고 있다.
이는 제임스 박 대표에 대한 게스 본사의 신뢰도가 높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제임스 박 대표는 전 세계 게스 해외법인 중 게스코리아가 가장 안정적으로 운영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게스코리아는 설립 이후 지금까지 적자를 낸 적이 한 번도 없어요. 현재 게스코리아는 게스의 전체 세계시장 매출의 13% 가량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한 개 브랜드 론칭에 보통 150억 원 정도가 필요한데, 게스 본사는 게스코리아를 설립할 때 70억 원을 투자했어요. 적게 투자해 엄청난 이익을 보고 있다고 할 수 있죠.”
매장 대형화·제품군 다양화 꾀한다
“제가 한국으로 오게 된 건 순전히 청바지 때문이었습니다. 어릴 때부터 청바지에 빠져 살았거든요.” 제임스 박 대표는 16세 때인 1980년 부모님을 따라 미국으로 이민을 갔다. 그는 일리노이주립대학교에서 경제학을 전공했다. 어릴 때부터 패션에 관심이 많았던 터라 패션디자인을 부전공으로 선택했다. 그는 미국으로 이민 간 뒤 청바지에 큰 매력을 느꼈다고 말했다. 여름방학을 이용해 청바지 워싱공장에서 아르바이트를 할 정도였다. 그는 대학교 졸업 후 미국 10대 증권회사 중 한 곳에 취업해 시카고 증권거래소에서 10년 동안 주식 트레이더로 일했다. 연봉 20만 달러를 받으며 부사장까지 승진했다. 문자 그대로 잘 나가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극심한 스트레스 속에서 몸이 조금씩 지쳐가고 있었다. “근무가 끝나면 늘 술을 마셨어요. 불나방처럼 매일 일이 끝나면 술집을 찾았습니다. 당시 함께 근무하던 트레이더들 모두가 그랬죠. 스트레스 때문에 마약에 손을 대는 친구들도 있었고요. 그 때 이건 내가 오랫동안 계속 하고 싶은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는 결국 회사에 사표를 던졌다. “어느 날 차를 타고가다 건널목에 멈춰 섰는데, 거지 행색을 한 부부가 아이 손을 잡고 길을 건너가고 있는 거에요. 그들 표정이 매우 행복해 보였습니다. 머리를 한대 얻어맞는 기분이었다고 할까요. 저는 그들보다 물질적으로 훨씬 나았지만 행복하진 않았거든요. 바로 그 다음날 사표를 내고 직장을 박차고 나왔어요.”
결혼한 지 1년이 지났을 때였다. 아버지로부터 많은 꾸지람도 들었다. 정신을 차린 그는 미국 현지에서 한국 교민과 함께 청바지를 생산하는 일을 시작했다. 제임스 박 대표가 웃으며 말했다. “의욕적으로 일했는데 그 사람이 사기를 쳤어요. 그 사람을 잡으러 한국으로 들어왔죠. 1998년의 일이었습니다. 1년 정도 사기꾼 잡으러 돌아다니다가 포기하고 미국으로 돌아가려고 했을 때였어요. 이탈리아 여성복 브랜드 미스식스티에서 함께 일해보자는 제안이 들어왔습니다. 제가 미국에서 증권회사 다닐 때 패션회사 M&A 작업을 많이 했었거든요. 그때 인연이 있었던 사람이 연결해준 거였습니다. 그게 제가 홍콩에서 미스식스티 아시아지역 총괄 머천다이저로 일하게 된 계기였습니다.”
제임스 박 대표는 회사를 운영하면서 적어도 3년에서 5년 뒤를 미리 생각한다고 말했다. 한해 사업 규모를 조금 줄이더라도 3~5년 뒤를 미리 준비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게스코리아는 사업 의사결정권을 팀장들이 가지고 있다. 제임스 박 대표는 자신의 역할에 대해 현장에서 뛰는 전문가들이 제대로 역량을 발휘할 수 있도록 여건과 분위기를 만들어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게스코리아에선 팀장들이 가장 큰 힘을 가지고 있어요. 보통 회사는 오너나 대표가 하자는 대로 움직이지만 게스코리아는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는 말단 직원들이 사업을 제안해요. 자신이 뭔가를 결정할 수 있다는 것에 자신감을 얻으면, 회사에 애착을 갖게 됩니다. 자기 사업처럼 회사 일을 끌고 갈 수 있으니까요.”
그는 직원들에게 사업 결과에 대한 책임을 묻지 않는다. 새로운 사업을 시도하지 않을 경우에만 문제를 삼는다. “저는 틀에서 벗어나는 걸 좋아해요. 패션은 하이테크 업종이라고 생각합니다. 계속 새로운 변화를 시도하지 않으면 금방 도태되거든요. 우리의 이런 운영 방식은 본사도 지지하고 있습니다.”
게스코리아는 직원들에게 역량 강화를 위한 교육 프로그램도 제공하고 있다. 리더십 교육, 영어 강습은 물론 세미나 참석도 독려하고 있다. 1달에 1번 ‘해피런치’ 시간도 갖고 있다. 전 직원이 회사 3층에 모여 도시락을 먹으면서 초빙 강사의 강연을 듣고 있다.
제임스 박 대표는 요즘 골프와 술을 하지 않고 있다. 그는 3년 전 갑상샘암 수술을 받았다. “수술 후부턴 하루 8시간을 자야 몸 컨디션을 유지할 수 있게 됐어요. 한국과 일본 두 회사에서 하루 동안 제게 보내는 이메일이 300~400개입니다. 대한항공 마일리지도 220만 마일 쌓여 있죠. 시간을 효율적으로 쓰면서 일해야 하는데, 필드에 나가 조그만 공을 따라 다니는 시간이 너무나 아까웠습니다. 저는 오후 6시에 칼퇴근을 해요. 식구들과도 시간을 함께 보내야 하니까요. 그래야 마음의 여유도 얻을 수 있습니다.”
제임스 박 대표는 직원들에게 늘 ‘즐겁게, 행복하게 일하라’고 얘기한다. 행복하게 일한 결과 지금의 게스코리아를 만들 수 있었다는 그의 말에 진심이 묻어났다. 기자가 만난 제임스 박 대표는 진정 행복한 ‘청바지 사나이’였다.
■ 데님과 진은 무엇이 다를까
데님(denim)은 감색 실과 흰색 실로 짠 면직물을 말한다. 소재가 매우 질기기 때문에 내구성이 우수하다. 진(jean)은 데님을 지칭하는 또 다른 말이다. 데님은 이탈리아 제노아(Genoa)에서 처음 만들어졌다. 영국에선 데님을 제노아의 발음에서 따온 ‘진’이라 불렀다. 이후 진은 복수 형태로 청바지를 통칭하게 됐다. 색이 청색이었기 때문에 블루진(blue jeans)이라는 별칭도 생겨났다.
블루진은 처음엔 골드러시(Gold Rush) 열풍을 타고 미국 캘리포니아로 몰려든 미국 뜨내기 노동자들을 위해 만들어졌다. 청바지를 최초로 만든 사람은 독일 바바리아(Bavaria) 출신 유대인인 리바이 스트라우스(Levi Strauss, 1829~1902)다.
하제헌 기자 azzuru@hmgp.co.kr, 사진 차병선 기자 acha@hmg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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