①연 5% 안팎의 수익률을 꾸준히 지킨다. ②수익률이 낮더라도 리스크가 낮아야 한다. ③손실은 최대한 피해야 한다. 프라이빗뱅커(PB)들이 꼽는 고액자산가들의 공통점이다. 이들은 갓 금융투자를 시작한 초보들처럼 연 10%, 20%를 꿈꾸지 않는다. 이미 일궈놓은 자산을 잘 지켜 자녀들에게 물려주는 데 초점을 맞춘다.
투자의 목적이 다른 만큼 즐겨 찾는 투자처도 일반 투자자들과는 다소 다르다. 고액자산가들은 일반적인 국내 공모펀드보다는 대체투자 상품, 주식·채권 등 여러 자산의 장점만 합친 컨버전스 상품에 눈독을 들인다. 이 같은 고액자산가들의 ‘취향’은 최근 국내 금융투자 시장에서 일부 상품으로만 돈이 몰리고 일반 주식형·채권형 펀드 등에서는 돈이 빠져나가는 현상으로 나타난다.
대표적인 사례가 최근 완판 행진을 이어가는 해외부동산 펀드다. 최근 한국투자증권이 판매한 ‘나사(NASA·미국항공우주국) 펀드’는 900억원어치가 1시간 만에 ‘완판’됐다. 최소 투자금액이 1,000만원으로 적지 않았지만 일찌감치 목표금액을 채웠다. 미국 워싱턴DC의 NASA 본사 빌딩에 투자하는 이 펀드는 기대수익률 연 6.7%의 상품이다. 지난 6일 미래에셋자산운용이 출시한 ‘미래에셋맵스호주부동산’, 지난달 이지스자산운용이 선보인 ‘바른빌딩 펀드’ 등의 완판도 최근 부동산 펀드의 인기를 보여주는 사례다. 부동산뿐 아니라 항공기·인프라·미술품·민자고속도로 등 대체투자 분야는 최근 업계가 가장 주목하는 시장이다. 이 같은 자산에 투자하는 ‘특별자산펀드’는 순자산 총액이 50조9,035억원(23일 기준, 공·사모 포함) 규모로 성장했다. 2012년 말 22조원에도 못 미쳤던 시장 규모가 4년여 만에 두 배 이상 커진 것이다.
대체투자 상품은 위험도가 높은 편이지만 고액자산가들은 리스크가 낮은 알짜 상품을 고른다. 상가 건물의 공실률이 높아지더라도 약속한 임대료를 받을 수 있는 최소보장임대료(MRG) 계약을 맺어두거나 10~20년씩 장기 임대차 계약을 맺은 부동산 펀드만 골라 가입하는 식이다. 한 부동산 전문 자산운용사 관계자는 “부동산 펀드에 가입하기 전에 직접 해당 건물을 수차례 방문해 둘러보는 자산가들도 많다”고 귀띔했다.
이와 함께 자산가들이 즐겨 찾는 상품은 컨버전스 상품이다. 예를 들어 2012년 600억원이 채 안 됐지만 지난해 1조원을 넘어선 메자닌 펀드는 신주인수권부사채(BW)·전환사채(CB)에 투자해 이자수익을 올리고 나중에 주식으로 바꿔 추가 수익을 내는 상품이다. 채권과 주식의 장점을 합친 셈이다. 주식의 배당수익과 채권의 이자수익을 노리는 인컴 펀드 역시 꾸준히 인기를 누리는 컨버전스 상품이다. 국내 주식형 펀드 시장은 최근 6개월 동안에만 4조6,417억원(24일 기준)이 빠져나갔지만 인컴 펀드만은 6,538억원이 유입되는 등 시장의 흐름을 거스르는 모습이다.
다만 대체투자 상품, 메자닌 펀드 등은 사모펀드 시장에서 더 활발히 출시되고 있다. 일반 투자자들은 아직까지 자산가들이 먼저 알아보고 투자하는 상품에 손쉽게 투자하기 어렵다는 이야기다. 국내 대형 자산운용사 최고경영자(CEO)는 “세계적으로 저금리 추세인데다 한국 경제가 성숙기에 접어들면서 높은 투자수익률을 기대하긴 어렵게 됐다”며 “주식·채권 등 개별 자산으로 승부를 보기 힘든 만큼 중위험·중수익의 대체투자 상품, 자산배분형 상품 등을 다양하게 선보일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유주희기자 ginger@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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