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환갑(60세), 근속 40년을 맞은 조성진 LG전자 신임 부회장은 어린 시절 고교 진학을 포기할 뻔했다. 도자기 장인인 부친이 아들이 중학교만 졸업하고 가업을 잇기를 바랐기 때문이다. 그는 부모님을 겨우 설득해 용산공고에 진학했고 고교 졸업 후 견습과정을 거쳐 지난 1976년 금성사(현 LG전자)에 입사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는 금성사에서 세탁기와 처음 만났다.
젊은 엔지니어인 조성진은 당시 동료들에게 인기 있었던 선풍기가 아닌 세탁기 설계실을 선택했다. 당시 세탁기는 국내 보급률이 0.1%도 안 되는 ‘1970년대의 신사업’이었다. 하지만 조 부회장은 세탁기 대중화를 확신했다. 특히 그는 세탁기 선진국인 일본을 제치고 국산 세탁기를 세계 1등에 올려놓겠다는 열의를 불태웠다.
조 부회장은 1980년대 150번 넘게 일본을 드나들며 밑바닥부터 기술을 배웠고 회사에서 숙식을 해결하는 집념으로 기술 개발에 몰두했다. 1998년 그가 개발해 LG전자가 세계 최초로 상용화한 ‘다이렉트드라이브(DD) 모터’가 탄생했다. 업계에서 ‘세탁기 박사’로 불리기 시작한 그즈음이었다. 이어 2005년 이중 분사 드럼 세탁기, 지난해 트윈워시 세탁기에 이르기까지 LG전자의 혁신 세탁기는 모두 조 부회장의 손을 거쳤다. 세계 세탁기 시장 점유율 1위라는 LG전자의 명성을 그의 두 손으로 쌓아올린 것이다.
2013년 사장 승진과 함께 LG전자 홈어플라이언스(HA)사업본부장에 취임한 조 부회장은 세탁기 1등의 노하우를 정수기·냉장고·에어컨 같은 생활가전 전반으로 확산시켜왔다. 스마트홈과 빌트인 가전 같은 생활가전 분야의 미래 먹거리도 그가 주도한다. 프리미엄 위의 프리미엄을 꿈꾸며 LG전자가 출시한 고급 가전 브랜드인 ‘LG 시그니처’가 시장에 빠르게 안착할 수 있었던 것도 조 부회장의 힘이 컸다고 LG전자 사람들은 말한다.
LG전자는 이제 전형적 소비자가전 기업에서 자동차 부품, 태양광 에너지 같은 기업 간 거래(B2B) 기업으로 탈바꿈하는 중대한 전환기에 섰다. 고졸 출신으로 연매출액 56조5,000억원(지난해 기준)이 넘는 거대 기업을 이끌게 된 조 부회장은 자신과 닮은 후배들이 이러한 신사업을 빠르게 키워나가길 바라고 있다.
미국 제너럴모터스(GM)의 전기차(EV)인 ‘쉐보레 볼트EV’의 핵심 부품을 차질없이 개발하고 양산하는 데 큰 공을 세운 주역들이 대표적이다. 특히 GM에 대한 부품 개발·납품을 주도한 양웅필 LG전자 자동차부품(VC)사업본부 상무는 올해 전무로 승진했다.
조 부회장은 금성사에 갓 입사해 세탁기 대중화를 꿈꾸던 때를 기억하며 ‘자신만의 비전’과 ‘조직에 대한 믿음’을 LG전자 임직원과 공유하고 싶어한다. 사내 방송 프로그램인 ‘안녕하세요! 본부장입니다’를 통해 자신의 메시지를 전달하고 바쁜 일정에도 짬을 내 임직원과 간담회를 가진다. 젊은 직원들과 함께 사내 색소폰 동호회에서도 활동한다.
LG전자의 한 관계자는 “고졸 출신으로 부회장까지 오른 조 부회장을 보며 LG전자뿐 아니라 한국 사회 전반의 청년들이 희망을 갖고 각자 꿈을 이뤄나가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이종혁기자 2juzso@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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