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 ‘폭리’로 바뀐 집단대출 금리
섣부른 부양과 규제를 오가는 부동산 정책 실패 -> 널뛰는 집단대출 금리 -> 정부 은행은 “내 책임 아니다” -> 피해보는 건 소비자 뿐
지난 2006년 판교 신도시 분양이 한창일 때 집단대출 협약은행으로 선정됐던 우리은행과 외환은행은 중도금 대출자에게 ‘양도성예금증서(CD)+0.3%포인트’ 금리를 적용했다. 은행의 비용과 수익이라고 볼 수 있는 가산금리가 0.3%포인트에 불과했던 것이다. 은행들은 이처럼 2006~2007년 부동산 활황기에 경쟁적으로 아파트 집단대출을 늘리면서 출혈경쟁을 벌였다.
은행 간 자산 경쟁이 치열했던 당시 모 시중은행의 행장은 CD금리에 0.1%포인트의 가산금리만 붙여서라도 집단대출을 따오라고 지시하기도 했다. 은행원들 사이에서도 집단대출 시장이 과열이라는 말이 나왔다. 일부 은행들이 고객 수를 한꺼번에 늘리기 위해 사실상 ‘역마진’을 감수하고 이 시장에 뛰어들었다가 후유증을 겪었다.
하지만 금융당국의 가계부채 규제로 집단대출 시장에 찬바람이 휘몰아치는 현재 은행들은 기준금리에 최대 2.5%포인트까지 가산금리를 붙여 집단대출을 취급하고 있다. 상품 구조는 완전히 똑같은데 가산금리가 무려 8~9배는 높아진 셈이다. 역마진 금리가 일순간에 ‘폭리’로 바뀌었다는 말까지 나온다.
시중은행의 한 집단대출 취급 담당자는 “500가구짜리 아파트 하나만 취급해도 수십억원의 순이익이 은행에 떨어지는 시장으로 바뀌었다”면서도 “당국 규제로 은행 본점에서 집단대출 취급 자체를 자제하라는 지침을 내리고 있다”고 말했다
집단대출 가산금리가 이처럼 널뛰기를 하는 것은 일차적으로 정부의 부동산 정책 실패에 기인한 바가 크다. 2014년 6월 최경환 전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부동산 규제 완화를 취임 일성으로 내건 후 그해 8월 주택담보인정비율(LTV)과 총부채상환비율(DTI)을 지역과 관계없이 각각 70%와 60%로 전격 완화했다. 이에 따라 경기 침체 속에서도 부동산 시장은 ‘나 홀로 활황’을 맞았고 저금리 속에 가계부채는 급속히 늘어났다.
문제는 정부가 아파트 분양 물량과 주택 수요를 한껏 부풀려놓고는 이제 와서 가계부채가 우려된다며 은행권 자금 공급을 차단하면서 집단대출 금리가 비정상적으로 오르고 있다는 점이다. 수요는 많은데 공급(자금)이 막혀 있으니 자연스럽게 가격(금리)이 오를 수밖에 없다. 그 사이에 낀 수분양자(금융소비자)들의 시름이 깊어지는 반면 정부와 은행은 모두 ‘금리 인상은 내 책임은 아니다’라는 입장이다.
정부의 정책 실패가 근본 원인이라는 점을 감안해도 현재 은행들의 집단대출 금리 수준이 지나친 폭리가 아닌지 되짚어볼 필요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집단대출은 계약자가 주택도시보증공사(HUG)나 주택금융공사 등에 보증료를 내고 ‘보증서’를 발급받아 대출을 받는다. 대출 사고가 나면 보증서를 발급한 공사가 대신 은행에 돈을 갚아주기 때문에 은행 입장에서는 리스크가 거의 없다. 이런 상황에서도 은행들은 집단대출 금리를 담보도 없는 신용대출 수준까지 올리고 있는 것이다. 당국 규제를 핑계 삼아 ‘한몫’을 잡고 있다는 비판이 나올 수밖에 없다.
은행들은 크게 두 가지 측면에서 집단대출 금리를 올릴 수밖에 없는 현실이라고 해명한다. 첫째는 자기자본 규제가 점점 강화되는 부분이다. 시중은행의 한 임원은 “각 은행들이 이제 대출이 나갈 때 바젤3의 눈높이에 맞춰 수익을 확보해야 한다”며 “특히 은행 전체적으로 대출 규모를 조이는 상황이기 때문에 집단대출이 나갈 때도 금리를 확실히 높여야만 내부를 설득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집단대출=주거래 고객’의 공식이 깨진 것도 은행들이 집단대출 과정에서 ‘배짱 금리’를 내세우는 이유다. 예전에는 집단대출을 취급하면 한꺼번에 신규 고객이 대폭 늘어나는 효과가 있었고 그만큼 부수 거래도 늘어났지만 최근에는 집단대출을 받았다고 해서 주거래 은행을 옮기는 고객들을 찾아보기 힘들어졌다는 것이 은행권의 설명이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집단대출을 받은 고객에게 카드 하나 발급하기도 어려운 현실”이라며 “예전에는 신규 고객 확보라는 매력이 있던 시장이라 수익을 일부 포기하고 들어갔지만 더 이상 그럴 유인이 없다”고 말했다.
이처럼 정부와 은행이 서로의 명분을 내세우는 동안 널뛰는 집단대출 금리에 피해가 커지는 것은 수분양자들뿐이다. 집을 분양받아 놓고도 중도금을 구하지 못하고 중도금을 어렵게 구해도 고금리에 시달려야 한다. 분양자들 사이에서는 “2년 전에는 집을 사라고 독려해놓고 집을 사 놓으니까 돈은 못 빌려주겠다는 식”이라며 정부와 은행권을 향해 불만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금융연구원 관계자는 “정부가 전 세계에서 유례없는 선분양제를 채택해놓고 이를 유지시키는 근간인 집단대출 금리를 원칙도 기준도 없이 시장 상황에 따라 돌변하도록 방치하는 것이 과연 적절한 것인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윤홍우·조권형기자 seoulbird@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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