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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1년 11월 구자균 LS산전 부회장은 방탄복을 입은채 이라크 바그다드 공항에 내렸다. 구 부회장이 직접 온다는 말을 반신반의하던 이라크전력청(MOE·Ministry of Energy) 관계자들은 탄성을 연발했다. 폭탄 테러가 난무하는 극히 위험한 이라크에 대기업 오너가 직접 온 것을 믿기 힘들다는 표정이었다.
구 부회장의 '방탄복 뚝심' 경영은 결국 이라크 정부의 마음을 움직여 대규모 수주로 이어졌다. LS산전이 이라크전력청과 5,224만 달러(약 536억원) 규모의 AMI(지능형원격검침인프라·Advanced Metering Infrastructure) 사업을 수주한 것.
LS산전은 지난 13일(현지시간) 레바논 베이루트 소재 피니시아 호텔에서 이라크전력청(MOE·Ministry of Energy)의 와피 무하메드 알마야히 전력처장 등 관계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MOE가 발주한 AMI(지능형원격검침인프라·Advanced Metering Infrastructure) 사업에 대한 최종 계약을 체결했다고 14일 밝혔다. AMI는 전력 소비자와 전력 공급자간 전력 사용 및 요금 정보, 실시간 요금 정산과 원격 전력 차단 등을 해주는 시스템이다. 전력수요 변동에 따른 가전 및 전력기기 제어 등을 가능하게 하는 스마트그리드의 핵심 기술로 꼽힌다. AMI 국제 입찰 프로젝트로는 세계 최대 규모인 동시에 저가 입찰이 판치는 입찰 경쟁 속에서 기술 평가 1위를 받아 달성한 뜻깊은 결실이다.
이같은 성과는 3년전 구 부회장이 이라크행 비행기에 몸을 실으면서 잉태됐다. 구 부회장은 LS산전이 이라크 정부가 추진하는 100개 변전소 프로젝트 중 35개소에 대한 입찰에서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 계약식에 참석했다. 당시 이라크는 정국 불안으로 대부분의 글로벌 기업들이 사업 계약을 인근의 다른 나라에서 진행하던 시기였다. 하지만 이라크전력청은 첫번째 대규모 수주인 만큼 이를 기념할 만한 계약식을 바그다드에서 갖자는 제안을 해왔다.
LS산전 실무진에서는 안전상의 이유로 난색을 표했지만 구 부회장은 오히려 흔쾌히 MOE의 제안을 수락하며 직접 이라크로 향하겠다는 뜻을 굽히지 않았다. 60년 만에 비(非)유럽권 기업로는 처음으로 전력 인프라 사업을 수주한 만큼 해당 기업 대표로서 앞으로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사업을 성공적으로 완수하겠다는 굳은 의지를 보여주기 위해서였다. 이라크전력청의 핵심 관계자는 "글로벌 기업들도 가능하면 이라크 본토에 발을 들이지 않으려 하고, 일부 바이어들은 공항에서 회의만 갖고 돌아가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며 "기업 오너 경영인이 직접 악수를 나누고, 사업을 설명하는 모습에서 강한 신뢰감을 얻었다"고 회상했다.
이번 계약에 따라 LS산전은 계량정보 운영(MDM·Meter Data Management)과 전기요금 과금(Billing), 고객관리(CRM·Customer Relation Management) 등 선진 스마트그리드 기술이 적용된 AMI센터 19개를 이라크 전역에 걸쳐 구축하게 된다. 또 바그다드 및 주요 지역의 변전소 등지에 스마트미터 11만대를 보급해 전력 운영에 필요한 각종 정보를 DCC(배전제어센터·Distribution Control Center)와 공유하며 CCC(중앙제어센터·Central Control Center)를 통해 통합 관리할 예정이다. 회사 관계자는 "전력수요 관리 및 전기요금 정산 등 스마트그리드 기반의 첨단 솔루션을 제공하게 된다"며 "특히 이번에 스마트미터 11만대 공급에 이어 향후 400만대 규모까지 늘려가기로 이라크전력청과 합의한 상태"라고 설명했다.
LS산전은 이라크 현지 업체는 물론 글로벌 기업들과 경쟁한 이번 입찰에서 가격 평가에서는 낮은 평가를 받았지만 통합적인 사업 수행역량과 제안 기술의 진보성, 적합성 등을 포함한 기술평가에서 당당히 1위를 차지하며 수주에 성공했다. 저가 낙찰에 만족하던 기존 해외 수주 관행에서 벗어나 기술이나 사업수행 등의 항목에서 월등히 높은 평가를 받았다는 얘기다.
LS산전은 그동안 수주한 변전소 및 DCC 사업을 통해 송변전과 배전 사업을 성공적으로 수행하는 한편 이번 AMI 사업 진출을 계기로 사업 영역을 최종 수용처로 넓혀 발전기를 제외한 전력 인프라 전 분야에 대한 통합 솔루션을 공급하게 됐다. LS산전이 이라크 전역의 상위 운영 시스템과 전체 프로젝트를 총괄하는 가운데 중계기 등 일부 기기를 중소기업이 공급하는 하도급 계약을 체결, 중소기업과의 해외 스마트그리드 시장 동반 진출이라는 의미도 더했다.
LS산전은 지난 2011년부터 지난해까지 이라크 전력 인프라 사업에서만 총 4억 4,400만 달러가 넘는 수주액을 기록했다. 이번 사업을 통해 3년간 누적 수주액은 5억 달러에 육박하게 됐다. 김종한 LS산전 스마트그리드사업부장은 "구 부회장의 방탄복 뚝심에 강한 인상을 받은 이라크 정부는 장기적으로는 전력 인프라 재건 사업에 스마트그리드를 도입해야 한다는 인식이 강하다"며 "향후 스마트미터 400만대 추가 보급이 계획되고 있는 만큼 이번 사업을 성공적으로 수행해 후속 스마트그리드 사업에도 진출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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