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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있는 선물이야기] 무지와 죄악

금융산업은 반도체 산업 못지않은 정교한 산업이다. 모든 국제 금융거래는 수백쪽의 정교한 계약서에 따라 이뤄진다. 환란 당시 국내 A은행이 계약서 한줄을 잘못 읽었다가 낭패를 본 경우를 소개한다.국제금융시장에서 파생금융상품의 비중이 날로 커지면서 다양한 상품 거래를 통일할 필요성이 제기됐다. 그래서 등장한 것이 ISDA(INTERNATIONAL SWAPS AND DERIVATIVES ASSOCIATION:국제파생상품협회) 규약이다. ISDA가 주체가 돼 각종 파생금융상품의 통일 규약을 만든 것이다. 세계 굴지의 은행들이 이 규약에 가입했고 우리나라 은행들도 이 규약에 따라 외국 은행과 스왑, 옵션등 파생상품 계약을 맺는다. 환란직전 A은행의 미국 지점 하나가 현지의 B은행과 스왑거래를 하면서 ISDA규약에 따라 계약을 체결했다. ISDA규약중에는 멀티브랜치(MULTI-BRANCH) 조항이라는 것이 있다. 문제는 A은행 담당자가 멀티브랜치 조항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계약서에 서명을 한 것이다. 멀티브랜치 조항은 특정 지점이 맺은 스왑거래 조건이 A은행의 모든 본지점과 맺은 계약에서 같은 효과를 낸다는 조항이다. 특정 부서가 맺은 특정계약이 은행 전체에 똑같이 적용되는 것이다. A은행이 환란위기에 몰리자 크레딧라인(CREDIT LINE)이 떨어지기 시작했다.미국의 B은행은 A은행 전체와 맺은 다른 스왑계약에 멀티브랜치 조항을 적용, 계약을 파기하겠다고 통보해왔다. A은행은 그때서야 멀티브랜치 조항이라는 것이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계약 파기에 따른 손실은 전적으로 A은행이 책임지도록 돼 있었다. 일개 지점의 실무자가 무심코 체결한 계약이 은행 전체에 막대한 피해를 준 셈이다. 금융산업, 특히 파생금융상품 분야에서 무지는 죄악과 같다. 복잡한 파생상품 계약서의 한귀퉁이에 도사리고 있는 조항 하나가 수억달러짜리 국제소송으로 비화되거나 멀쩡한 금융기관을 파산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 정명수기자ILIGHT3@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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