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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가 없는 나라

그리고 「왜?」라는 의문부호로 하여 새로운 지식이 생겨나고 새로운 문명이 탄생된다. 그렇기 때문에 끊임없이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이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창조력이 높으며 또한 그러한 민족이 인류문명을 주도하는 것이다. 서구인들이 금세기의 문명을 주도하게 된 까닭도 그들은 어려서부터 「왜?」라고 하는 질의문화(質疑文化)에 길들여져 있기 때문이다.새로운 지식과 새로운 문화를 창출해야 살아남을 수 있다는 21세기가 내일 모레다. 그 어느때보다 「왜?」라는 질문가치가 높을 수밖에 없지만 유감스럽게도 우리나라 사람들은 질문에 너무 인색하다. 집에서나 직장에서나, 심지어 학문을 연마하는 학교에서도 「왜?」의 제기가 드물다. 학생은 질문을 계면쩍게 생각하고 선생님은 질문하는 학생을 귀찮은 존재로 치부하기 일쑤다. 이러한 사고방식은 웃어른의 말씀을 절대적으로 여기고 순종하는 것이 아랫사람의 도리라고 여겼던 봉건사상 탓이리라. 그러나 그 봉건시대가 종말을 고한 지 한 세기가 지났는데도 우리의 가정과 학교에서는 여전히 아이들의 질문이 봉쇄당하고 있다. 부모의 의견에 「왜?」를 제기하면 불경(不敬)이 되고 선생님의 지도에 「왜?」를 제기하면 문제아가 되고 만다. 그러니 질의문화가 기를 펼 수 없다. 필자는 한달에 두서너곳의 대학으로부터 특강요청을 받는다. 대개가 지식정보화 교육 또는 대학개혁의 방향에 대한 소견을 말해달라는 경우다. 변화의 시대를 헤쳐가야 할 오늘의 대학생들에게는 지대한 관심사일 것 같아서 강의말미에 질의시간을 특별히 마련하는데도 손을 드는 학생이 거의 없다. 그렇다고 해서 질문할 필요도 없는 전문가들이 된 것도 아니다. 단지 질의문화에 익숙지 못한 탓이고 그 때문에 수박겉핥기식 교육이 되고 만다. 그리고 이것이 결국 시대적 요청인 신지식인 창출에까지 큰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왜?」가 없는 민족은 살아남기 힘든 시대로 다가가고 있다. 그 절박성 때문에 오죽하면 인문학(人文學)을 의문학(疑問學)으로 바꿔야 한다는 우스갯소리까지 나돌겠는가. 어찌되었든 21세기를 앞서가려면 창의력을 길러야 하고 창의력을 길러주기 위해서는 질의문화를 정착시켜야 한다. 가정에서부터 자녀들이 자유롭게 「왜?」를 제기할 수 있는 풍토를 조성하는 것만이 우리 미래를 열 수 있으리란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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