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5월 6일 경기도 시흥시 시화공단에 있는 A업체에서는 불산 용액 100여ℓ가 유출됐다. 다행히 인명피해는 없었지만 밸브를 잠글 때까지 용액이 흘러나와 공장 직원들에게 아찔한 상황이 연출됐다. 업체 측에서 재발방지를 위해 대책을 마련하던 중 생각하지도 못했던 디자인회사에서 아이디어를 냈다. 근로자들의 심리적, 행동적 특성을 감안한 서비스디자인 설계로 근로자들의 행동변화를 이끌어 내겠다는 구상이었다. 지난해 5월까지 작업장의 위험요소들을 환기시키는 표시를 직관적으로 인지할 수 있도록 디자인을 적용했고 현재까지 안전사고가 재발하지 않았다. 서비스디자인을 적용해 만들어진 경고 문구를 본 근로자들의 보호장구 착용 중요성 인식도가 31%에서 64%로 높아지기도 했다.
당시 아이디어를 냈었던 김현선 김현선디자인연구소 대표는 "현장에 직접 가보니 외국인 노동자들이 많은데 근무 기록지나 주의 표지판 등이 다 한글로 돼 있었고 사고는 굉장히 사소한 실수에서 시작된다는 것을 파악했다"며 "누구나 직관적으로 이해하기 쉽게 픽토그램으로 안내판을 바꿔 상당히 좋은 성과가 있었다"고 말했다.
6일 업계에 따르면 서비스디자인을 활용해 중소기업이 가지고 있는 각종 애로사항을 해결하려는 노력이 잇따르고 있다. 서비스디자인은 서비스를 설계하는 과정에서부터 사용자 입장에서 실제로 어떤 애로사항이 있는지 사전 경험을 통해 파악한 뒤 디자인을 통해 문제를 해결해보자는 개념이다. 국내에서는 표현명 KT렌탈 대표가 2008년 '서비스디자인 시대'라는 저서를 발간함으로써 처음으로 소개했다. 국내에 적용된 가장 유명한 사례로는 2012년 서울시가 재개발 예정지로 범죄 위험이 높은 염리동에 서비스디자인을 적용한 사례다. 주민들을 대상으로 범죄 위험을 느끼는 장소를 측정해 '범죄공포지도'를 만들어 산책로를 구상했고 산책로 곳곳에 운동을 유도하는 장치와 위치 지시, 전봇대에 비상벨 등을 설치했다. 허름한 외관도 밝은 이미지로 바꿨다. 서비스디자인으로 환경개선을 한 후 경찰 지구대 신고전화가 30% 가량 줄어들었고 주민들이 체감하는 범죄 가능성이 두 달 만에 9.1%가 감소했다.
도입 초기 공공 문제 해결과 병원 환경 개선 등 좁은 범위에서만 활용됐던 서비스디자인이 최근에는 한국디자인진흥원을 중심으로 중소기업들의 애로사항 해결과 경쟁력 향상을 위해 확대 적용되고 있다. 국내 디자인 산업 자체가 열악한데다 중소기업들이 디자인에 대한 인식이 생기고는 있지만 아직 적극적으로 활용할 여력이 되지 않아 한국디자인진흥원이 관련 부처들의 지원을 받아 서비스디자인 전파에 나서고 있다. 전문가들은 기존에 공학적 접근에서 벗어나 서비스디자인 등 새로운 접근법으로 국내 중소 제조업의 부가가치를 높여야 한다고 말한다. 윤성원 한국디자인진흥원 서비스디지털융합팀 팀장은 "우리나라 중소 제조업체들은 제품 기술 개발과 공정혁신 등 제조 기술력 분야에서는 큰 혁신을 이뤄 성장해왔고 이에 따라 앞으로 성장 잠재력은 많이 줄어든 게 사실"이라면서 "선진국들은 제조업을 서비스화해서 부가가치를 높이고 있는데 공학적인 접근보다는 제조업이 가지고 있는 여러 가지 문제들을 개선하는 다양한 접근법을 고려해야 하고 그것 중 하나가 서비스디자인이 해결책을 제시해 줄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국디자인진흥원은 최근 개관한 양산융합센터를 통해 창원산업단지에 서비스디자인을 적용할 계획이다. 서비스디자인을 적용해 산업단지의 환경을 개선해 안전사고를 줄이고 단지 방문객들이 쉽게 원하는 업체를 찾을 수 있도록 안내하는 표지판 설계 등을 통해 단지의 경쟁력을 높이겠다는 취지다. 한국디자인진흥원 관계자는 "실제로 산업단지를 가장 많이 이용하는 근로자와 방문객 등 사용자 중심의 공간으로 탈바꿈 시키겠다는 구상"이라며 "5억원 규모의 예산을 들여 지난해 12월부터 사업이 추진 중이고 올해 11월이면 서비스디자인 적용이 완료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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