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용자 3,700만 명에 연간 시장규모 16조원’ 바로 한국 이동통신산업의 현 주소다. 지난 88년 서울올림픽을 계기로 지금과 같은 형태의 이동전화가 첫 선을 보인 이래 국내 이동통신시장은 그야말로 폭발적인 성장을 거듭하며 ‘모바일 코리아’의 주역으로 떠올랐다. 국내 이통기술은 지난 96년 코드분할다중접속방식(CDMAㆍCode Division Multiple Access) 기술을 세계에서 처음으로 상용화함으로써 ‘통신 강국’의 초석을 마련한 후 비약적인 발전을 거듭해 왔다. 이통기술은 이제는 통신과 방송, 통신과 금융이 서로 결합되는 ‘컨버전스’와 언제 어디서나 디지털기기가 연결되는 ‘유비쿼터스’ 시대를 여는 첨병 역할을 하고 있다. SK텔레콤, KTF, LG텔레콤 등 3개 이통사업자들은 치열한 기술ㆍ서비스 경쟁을 펼치며 국내 이통시장의 인프라와 서비스를 세계 일류 수준으로 끌어올렸다. 국내 이통시장은 이처럼 세계 최고의 인프라를 갖추고 있기 때문에 첨단 휴대폰의 ‘테스트 베드(시험무대)’ 노릇을 하고 있다. 국내 시장에서 품질을 인정받으면 곧 해외에서도 큰 인기를 얻을 수 있기 때문에 글로벌 IT기업들이 앞 다투어 모바일 연구소를 국내에 설립할 정도다. ◇이동전화의 등장(1960~1995년)=우리나라 이동전화의 효시는 지난 60년 체신부(현 정보통신부)에서 정부기관을 대상으로 서울과 수도권 일부 지역에 제공한 수동교환 방식의 무선공중전화서비스. 그 뒤를 이어 73년에는 교환원 없이 통화할 수 있는 기계식 차량전화(카폰)가 등장했다. 하지만 그 당시에도 차량용 이동전화는 주로 국가기관 등을 대상으로 한 통신수단 이었기 때문에 일반인이 사용하기에는 ‘너무 먼 당신’이었다. 그러나 체신부가 84년 SK텔레콤의 모태가 된 국내 최초의 무선통신서비스기업인 ‘한국이동통신서비스’를 설립한 후 미국의 AT&T사가 개발한 AMPS방식의 아날로그 셀룰러 서비스를 제공하면서부터 일반인들에게도 카폰서비스가 선보이게 된다. 당시 카폰 서비스는 통화 품질과 서비스가 지금과는 비교가 안될 정도로 열악했고, 서비스 를 받으려면 단말기 가격을 포함해 400만원 이상을 지출해야 했다. 하지만 무선통신 서비스에 대한 수요로 신청자가 쇄도하는 이변(?)을 낳기도 했다. 또한 82년 말부터 ‘삐삐’로 불리던 무선호출 서비스가 시작돼 지난 95년 휴대전화가 득세를 하기 전까지 500만명 이상의 가입자를 확보할 정도로 대중화되기도 했다. 88년 7월 1일은 국내 통신시장이 새로운 분수령을 마련한 날로 기억된다. 바로 휴대전화서비스가 처음으로 도입된 것이다. 그해 9월로 예정된 서울 올림픽 대회의 원활한 진행과 차세대 이동전화 대중화를 위해 휴대전화 서비스가 시작됐다. 휴대전화 가입자는 87년(카폰 기준)에는 1만 명에 불과했지만 91년 10만명을 넘어서고 95년에는 100만명을 돌파하면서 수직 성장을 거듭한다. 또한 94년에는 선경그룹(현 SK)이 정부로부터 한국이동통신을 사들여 민간 기업의 이동전화 서비스가 시작됐고, 같은 해 코오롱그룹 등이 합작 설립한 신세기통신(017)이 등장하면서 바야흐로 국내 이통시장도 경쟁시대를 맞이하게 된다. ◇CDMA로 모바일 강국 단초 마련(1996~1999년)=88년 서울올림픽 때 이동전화가 등장해 사람들을 놀라게 한 후 8년이 지나 역사적인 사건이 다시 벌어진다. 96년 1월 1일은 국내 이동통신 역사에 한 획을 긋는 중요한 시점이다. 바로 오늘날 ‘모바일 코리아’를 가능하게 한 2세대 통신기술인 CDMA 서비시스가 세계에서 처음으로 상용화된 것이다. 우리나라가 CDMA 서비스를 차세대 이통 표준으로 결정한 것은 그보다 4년 전인 92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체신부는 CDMA의 원천기술 보유회사인 미국의 퀄컴과 공동개발 계약을 맺고 실험실 수준이었던 CDMA를 과감히 도입, 96년에 상용화에 성공했다. 이에 따라 전세계 주류였던 TDMA(GSM)보다 데이터 송신 기술이 뛰어나고 기술을 주도할 수 있는 위치를 확보하게 된 것이다. 우리나라는 CDMA 상용화를 계기로 IT수입국에서 일약 IT수출국으로 일어서게 된다. 96년 CDMA 상용화에 성공하면서 국내 이동전화 시장은 본격적인 질적ㆍ양적 발전시기를 맞는다. 96년 말 SK텔레콤과 신세기통신이 사용하던 800MHz의 셀룰러 주파수가 아닌 한국통신프리텔(현 KTF), 한솔PCS, LG텔레콤 등 1.8GHz를 통신주파수로 한 PCS사업자들이 잇따라 등장했다. PCS사업자들이 97년부터 서비스를 시작하면서 이동전화시장도 본격적인 경쟁에 들어갔다. 적극적인 판촉 전쟁에 힘입어 이동전화 가입자는 폭발적으로 증가해 98년에는 마침내 1,000만명을 돌파한다. 이통서비스 업체들은 99년 방대한 가입자 기반을 바탕으로 무선데이터 등 새로운 서비스를 선보이는 동시에 한 치의 양보도 없는 무한경쟁체제로 돌입했다. SK텔레콤은 신세기통신을 인수하고, 한국통신프리텔은 한솔PCS를 합병해 KTF로 상호를 변경하면서 현재와 같은 SK텔레콤-KTF- LG텔레콤의 3강 구도가 정착됐다. ◇컨버전스 시대를 향하여(2000년~)=국내 이통시장은 21세기로 접어들면서 기존의 음성위주에서 벗어나 데이터의 전송 속도 및 전송량을 획기적으로 늘려나간다. SK텔레콤은 2000년 1월 세계 최초로 서울과 수도권에 CDMA2000 1x망을 구축하고 2.5세대 서비스를 제공한다. 2002년에는 VOD, MOD 등의 멀티미디어 서비스를 2세대에 비해 16배 가량 빠른 2.4Mbps로 다운로드할 수 있는 EVDO 서비스를 시작하며 본격적인 무선 데이터 시대를 열었다. 대량의 데이터를 고속으로 전송할 수 잇는 시스템을 확보한 국내 이통시장은 컨버전스를 향해 급속히 달려가기 시작했다. 통신위주로 매출을 올렸던 이통사들이 동영상을 제공하고 MP3음악을 다운로드해 볼 수 있는 기능을 앞 다퉈 출시했다. 특히 모바일 뱅킹이나 DMB 등 금융과 방송분야까지 통신의 영역과 결합하면서 컨버전스를 바탕으로 한 유비쿼터스 사회로 급속히 전환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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