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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숨보다 소중한 게 세상에 또 있을까. 그 어떤 절대 진리도 생명 앞에선 초라해진다. 99.99% 확신이 선 도박꾼이라 해도 목숨을 담보로 주사위를 던지라고 하면 주저할 수 밖에 없다. 하지만 독일 출신 걸출한 이야기꾼 지그프리트 피셔 파비안은 목숨보다 더 소중한 것이 있다고 말한다. 양심. 거리의 범부들에겐 종이 한 장보다 가벼울 수 있는 이 양심의 무게에 어떤 이는 의연하게 목숨을 내건다. “내 양심에 맡기는 것이 올바르며 정당한 일이다. 왜냐하면 나는 왕보다 양심에 더 큰 복종의 의무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영국의 대법관이었던 토마스 모어(1477~1535)는 양심의 소리에 귀를 기울인 대가로 영국왕 헨리 8세에게 참수형을 당한다. 한때는 친구처럼 토마스 모어를 편들었던 헨리 8세. 정략적 결혼으로 맺어졌던 스페인 여왕 캐서린과 이혼하고 앤 볼린과의 재혼하길 원했지만 토마스 모어의 입장은 단호했다. “성스러운 혼배 성사에 의거해 캐서린과 결합했으므로 그녀를 부정하는 것은 중죄에 해당하고 자신을 신과 떼어 놓는 일이라는 것이다.” 이 책은 수천년 인류의 역사에서 큰 획을 그은 8명의 양심가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민족의 양심을 일깨우기 위해 나치에 저항한 젊은 영혼 조피 숄, 자유를 향한 원초적 인간 투쟁의 상징이 된 검투사 스파르타쿠스, 밀고와 고문, 잔혹한 처형으로 얼룩진 마녀 사냥에 맞선 신부 프리드리히 폰 슈페, 드레퓌스 사건의 에밀 졸라, 말 두필로 시작된 작은 부당함에 맞서 죽음에도 굽히지 않고 싸웠던 상인 한스 콜하제, 독배를 마시고 쓰러진 소크라테스, “그래도 지구는 돈다”는 주장 때문에 종교 재판대에 올라서야 했던 갈릴레이. 역사서의 표지를 장식하는 이들부터 소설 속 주인공으로 겨우 이름을 내민 평범한 사람들까지 이 책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스펙트럼은 실도 다양하다. 스물한살의 여대생 조피 솔은 오빠 한스와 함께 궁색한 등사기 한 대 만을 가지고 맨손으로 나치 정권에 맞섰다. 꽃다운 나이의 여대생 조피는 사랑하는 조국을 악으로부터 구하기 위해 ‘대량 학살자 히틀러’란 문구가 새겨진 백장미단 전단을 유포하다 현장에서 체포된다. 역사학자 골로 만(Golo Mann)은 그녀를 두고 이렇게 말한다. “독일 저항의 역사에 그들만이 숄 남매와 그 친구들 만이 존재했다 하더라도 독일어를 말하는 인간들의 명예를 구하기에는 충분하리라.” 마녀사냥이 한창이던 때 시인이자 예수회 신부였던 프리드리히 폰 슈페는 양심서 ‘법적 의문점 경고’를 통해 “수많은 화형장의 장작더미는 독일의 명성에 악취를 풍기게 만든다”며 마냥 사냥의 실체를 낱낱이 폭로한다. 자신의 신념에 충실했던 여덟 명의 역사 인물을 조명하면서 저자는 양심이란 위험하지만 숭고하며 고통스럽지만 자유로운 것이라고 말한다. 책의 마지막 장을 덮는 독자에게 저자는 이 같은 질문을 던지는 듯하다. “당신에게 양심의 무게는 얼마인가.” 대답이 옹색해진 독자들. 그저 양심을 시험하는 독배가 피해 가기만을 바라는 이들에게 저자는 “인간은 본래 선한 본성을 타고 났다”는 말로 양심의 소리에 충실하기를 충동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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