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가스ㆍ전기 요금 등 공공요금에서 올해부터 원가주의를 복구한다는 명분 아래 줄인상을 사실상 방조하는 반면 민간업체의 가공식품 인상에는 MB정부에서 행하던 '팔 비틀기 식' 가격통제를 또다시 들고 나오는 이중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공기업 부채 문제 등을 이유로 공공요금 인상은 용인할 수밖에 없다면서도 하반기 물가불안 조짐이 보이자 민간기업들의 가격인상 움직임을 비정상적인 방법으로 틀어막고 있는 것이다.
정부의 두 얼굴에 기업들은 어쩔 수 없이 가격인하를 보류하는 등의 모습을 보이고 있지만 과거처럼 수긍하지 못한 채 속을 끓이는 모습이 곳곳에서 엿보이고 있다.
1일 관계 부처에 따르면 정부는 올해부터 본격적으로 공공요금에 원가주의를 도입, 요금인상을 단행하고 있다. 올 초 원료비 연동제를 복구시킨 가스요금이 대표적인 사례다. 천연가스 도입원료비를 2개월마다 소매요금에 반영하는 원료비연동제가 복구되면서 도시가스요금은 소매가격 기준으로 지난 2월에 4.4%, 이달에도 0.5%가 올랐다.
전기요금 역시 올 1월 4% 인상됐으며 올 하반기 추가 인상이 확실시되고 있다. 정부가 전력난 등을 이유로 현재 90%대 중반 수준인 전기요금의 원가회수율을 올해 말까지 원가 수준으로 회복시키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이 밖에 광역 상수도, 우편요금 등 각종 공공요금이 최근 줄줄이 오름세를 보이고 있으며 지방자치단체에서는 각종 공공요금 인상이 줄을 잇고 있다.
정부는 이처럼 공공요금 인상을 사실상 방임하면서도 막상 민간업체들의 원가상승에 따른 가격인상에는 예민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최근 우유업계가 가격인상 움직임을 보이자 정부는 대형마트 관계자들을 불러모아 우유가격 현황에 대해 점검하는 등 물가단속에 나섰다.
이 같은 정부의 행보에 우유업계는 벙어리 냉가슴을 앓고 있다. 이날부터 원유가격연동제 도입으로 원유가가 12.7% 인상되면서 우유의 판매가격을 올리지 않으면 적자가 불가피하지만 정부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당초 1일부터 우유가격을 7.5% 올리려고 계획했던 동원F&B는 정부의 물가단속 눈치를 보다 결국 인상계획을 전면 보류했다. 이 회사의 한 관계자는 "물가를 감안해 인상시기를 재검토 중"이라고 밝히고 있지만 정부의 우유가격 인상 자제 요청에 큰 부담을 느낀 것으로 해석된다.
동원이 일찌감치 백기를 들면서 다른 우유회사들도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한 업계 관계자는 "원유가 비중이 높기 때문에 가격을 올리지 않으면 적자가 불 보듯 뻔하지만 최근 정부 움직임상 인상폭과 인상시기를 조율하지 않을 수 없다"고 털어놓았다.
이 같은 인위적인 물가단속 정책에 대해 유업계는 물론 식품업계에서도 볼멘소리가 터져나오고 있다. 식탁물가 안정을 위한 조치라는 정부의 일방적인 '엄포'가 사실상 누구를 위한 것이냐는 지적이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공공요금은 계속 오르도록 놔두면서 왜 식품 물가만 문제 삼는 것인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기업실적이 감소하면 결국 인력 구조조정이나 임금동결로 이어져 월급쟁이들이 힘들어지는 것"이라며 "진정으로 서민부담을 줄이는 것이 무엇인지 모르는 것 같다"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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