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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롯데의 경영권 분쟁에서 오너 일가의 폭로전만큼이나 비판을 받은 부분은 재계 5위 그룹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만큼 불투명한 지배구조였다. 게다가 매출 83조원의 한국 롯데그룹을 매출 5조원의 일본 롯데가 지배하고 있다는 사실에 여론은 등을 돌렸다.
이를 의식한 듯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의 11일 기자회견에는 "지금의 롯데를 죽여야 산다"는 절박함이 묻어났다. 신동빈 회장은 "이번 사태로 아버지의 명성과 창업정신이 훼손된 것에 대해 참담한 심정"이라며 "롯데를 과감히 개혁해 새로운 롯데로 거듭나겠다"고 강조했다.
신동빈 회장은 △순환출자구조 해소 △호텔롯데 상장 △지주사 전환 등 그룹을 통째로 바꾸는 지배구조 개선안을 내놓았다. 하지만 그는 "한일 롯데를 분리하는 일은 없다"고 못 박았다. 이는 롯데를 두 개로 쪼개지 않겠다는, '화학적 분리는 없다'는 뜻이지만 또 다른 시각에서 보면 신동주 전 일본 롯데홀딩스 부회장과 나눠 경영하는 것으로 조율할 수 있다는 관측에 사실상 쐐기를 박은 것으로도 해석할 수 있다.
◇순환출자 고리 330개 이상 지운다=롯데그룹 계열사 간의 순환출자 고리는 총 416개다. 신동빈 회장은 "연말까지 순환출자의 80% 이상을 해소할 것"이라고 밝혔다. 330개 이상의 순환출자 고리를 지우겠다는 이야기다. 이를 위해 그룹 내에 기업문화개선위원회를 출범하고 중장기적으로 지주사 체제를 만들 계획이다.
하지만 실행은 쉽지 않다. 신동빈 회장은 "지주회사 전환에 7조원이 들 것"이라며 "이는 롯데그룹 순수익의 2, 3년치에 해당하는 규모"라고 말했다. 지주사 체제를 구축하느라 연구개발(R&D)이나 일자리 창출이 어려워질 수도 있다는 이야기다. 최근 의욕적으로 추진해온 글로벌 사업 역시 속도조절이 불가피하다.
◇일본색 지운다…호텔롯데 IPO로 주주 다양화='일본 기업' 논란에서 벗어나기 위한 대책도 내놓았다. 신동빈 회장은 "호텔롯데의 일본 지분 비율을 축소할 것"이라며 "주주 구성이 다양해지도록 기업공개(IPO)를 추진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호텔롯데의 지분은 일본 롯데홀딩스와 L투자회사 12곳이 총 90% 이상을 보유하고 있다. IPO를 통해 새로운 주주를 받아들이고 이들의 지분율을 낮추겠다는 뜻이다.
호텔롯데 상장은 롯데그룹 지배구조 개선과도 맞물려 진행된다. 일본 지분이 줄어든 호텔롯데가 롯데그룹의 지주사가 될 가능성도 점쳐진다.
다만 일본 지분이 줄어든다는 것은 오너 일가의 영향력이 축소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신격호 총괄회장과 신동빈 회장 등이 롯데홀딩스·L투자회사를 통해 호텔롯데를 지배하는 구조였기 때문이다. 한 롯데 소식통은 "오너 일가의 주식을 호텔롯데가 자사주로서 사들이는 방안 등이 고려될 수 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한일 롯데 분리 없다…'원(one) 롯데' 시너지 창출=신동빈 회장은 "한일 롯데를 분리하는 일은 없다"고 선을 그었다. 그는 양국 롯데제과의 사례를 들며 "두 개 회사를 합치면 전 세계 제과업계 7, 8위가 된다"고 말했다. 그만큼 시너지 창출 측면에서 기대할 것이 많다는 이야기다. 한국 롯데제과와 일본 롯데제과의 매출은 각각 2조5,000억원 수준으로 비슷하며 현재 세계 제과시장 순위도 30위 안팎이다. 신동빈 회장은 "두 회사를 완전히 분리해 협력관계를 없애는 것은 나라 경제를 위해서도 좋지 않다"며 "글로벌 기업으로 도약해 세계에서 승부할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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