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카슈랑스 시행 문제를 놓고 은행과 보험업계가 정면 격돌하고 있다. 강정원 국민은행장을 비롯한 15개 시중은행장과 지방은행장들은 21일 긴급 회동을 갖고 “이미 한차례 연기된 방카슈랑스 4단계가 다시 연기된다면 정부의 대내외 신인도가 크게 훼손되는 것은 물론 ‘각종 규제를 풀어 금융산업을 신성장 동력으로 육성하겠다’는 정부 방침에도 정면으로 배치된다”며 방카슈랑스를 예정대로 오는 4월부터 시행하라고 촉구했다. 은행장들이 직접 방카슈랑스 대책회의를 열고 성명까지 발표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증시로의 자금 이탈 등으로 가뜩이나 경영환경이 악화하고 있는 상황에서 ‘보험 판매까지 무산되면 안 된다’는 절박감이 짙게 깔려 있다. 은행권은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 4단계 방카슈랑스를 예정대로 시행할 것을 건의하는 한편 광고 등을 통해 적극적인 홍보를 펼칠 예정이다. 이처럼 은행장들이 긴급 회동한 것은 정치권에서 4단계 방카슈랑스를 유보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이한구 한나라당 정책위의장은 지난 16일 “(2월) 임시국회에 당론으로 보험업법 개정안을 제출, 방카슈랑스 4단계가 이행되지 않도록 일단 중지시킬 방침”이라고 밝혔다. 대통합민주신당은 이미 대선에서 4단계 방카슈랑스 철회를 공약으로 제시한 바 있다. 4단계 방카슈랑스란 은행에서 자동차보험ㆍ종신보험 등 보장성 보험을 판매하는 것을 말한다. 반면 보험업계는 반박 성명을 통해 “4단계 방카슈랑스를 ‘일단 중지하겠다’는 정치권의 조치는 환영하지만 35만여명의 보험 노동자들이 생존권을 확보할 수 있는 길은 ‘중지’가 아닌 ‘철회’뿐”이라며 “4단계 방카슈랑스를 강행하려는 은행권의 어떠한 조치도 좌시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4단계 방카슈랑스는 4월부터 도입될 예정이었으나 4월 총선을 앞두고 설계사 등의 표를 의식한 정치논리가 개입되며 다시 표류할 가능성이 큰 것으로 지적된다. 금융계에서는 정치권이 보험설계사 실직 우려 등 보험업계의 주장을 받아들여 4단계 방카슈랑스 시행을 유보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보고 있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