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통신기술(ICT)과 결합한 헬스케어는 병원이 갖고 있던 의료행위의 주도권을 환자 개인에게 돌려줄 수 있습니다. 이런 혁신이 원격진료 반대 같은 집단 이기주의에 발목 잡혀 있는 것은 어불성설입니다."
한국 사회에 병리적 증상뿐 아니라 사회적 '증후군'까지 동시에 안긴 중동호흡기증후군(MERS·메르스) 사태가 이번에는 '원격의료 금지'로 불똥이 튀었다. 정부가 삼성서울병원에 원격의료를 일부 허용한다고 발표했다가 의료계가 "명백한 현행법 위반"이라며 극렬하게 반발했기 때문이다.
의사가 직접 환자를 대면하지 않고 의료행위를 하는 원격의료는 그동안 허용 여부를 두고 의료계와 정부·산업계 등이 첨예한 논쟁을 벌여왔지만 논의의 진전은 이뤄지지 않았다. 그런데 원격의료는 헬스케어 분야와도 크게 연관돼 있다. 원격의료가 금지인 이상 ICT로 비대면 건강관리, 나아가 진료까지 이어지는 '유비쿼터스(u) 헬스케어', 또 스마트 기기와 연결되는 '스마트 헬스케어'는 원천적으로 불법이다.
지난달 19일 서울 도곡동 KAIST 소프트웨어대학원에서 서울경제신문과 만난 이민화(62·사진) 한국디지털병원 수출사업협동조합 이사장은 이 같은 현실에 크게 안타까워했다. 원격의료 금지로 환자의 공공복리가 침해 받는 상황에서 오는 2020년이면 7조달러 규모로 예상되는 헬스케어 산업에 대한 이야기는 '그림의 떡'에 불과하다는 한탄이다.
우선 원격의료 금지는 환자의 진료권을 침해한다는 것이 이 이사장의 주장이다. 그는 "(메르스 사태에서) 원격의료 금지는 환자가 보다 안전하게 진료를 받을 수 있는 기회를 차단해버린 것"이라며 "이런 경우는 전 세계에서 우리가 유일하다"고 강한 불만을 나타냈다.
진료 기회 차단만이 문제가 아니다. 환자의 증상이나 치료 정보, 병원 방문 이력 등 데이터를 관리·분석하는 '데이터 의료' 역시 원격의료 금지로 힘을 제대로 받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 이사장은 "환자 정보가 클라우드에 저장돼 있고 병원 간 정보공유가 원만했다면 메르스 전파경로를 파악하는 데 많은 시간을 절약했을 것"이라며 "현대 질병은 대부분이 못 고쳐서 문제가 아니라 관리를 못 해서 생기는 '관리형 질병'인데 데이터는 그 대응책의 핵심"이라고 했다. 보안 측면에서도 중앙 클라우드가 훨씬 유리하다. 이 이사장은 "개별 병원이 환자 정보를 관리하는 것이 훨씬 위험하다. 중앙 클라우드 처리가 기술적 측면에서 안전도가 높다"고 했다.
무엇보다 환자 개인이 보다 세밀하고 구체적인 진료를 받을 수 있는 기회를 걷어차다시피 하는 것이 가장 큰 패착이다. 이 이사장은 "약 복용 패턴이나 혈압 측정부터 혈당·유전정보 관리에 이르기까지 병원에 가야만 가능했던 건강관리·의료가 기술발전으로 보다 손쉽게 이뤄지는 것이 헬스케어의 본질"이라며 "병원과 환자 간의 정보 비대칭을 극복할 혁신이 가능하도록 정부가 시급하게 실효성 있는 논의를 이끌어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사진=송은석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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