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단기금융시장 활성화 방안을 추진하는 것은 선진국에 비해 단기금융시장이 크게 낙후돼 있기 때문이다. 우리의 경우 이렇다 할 단기금융상품을 꼽을 수 없을 정도로 초라한 수준이다. 단기금융시장이란 하루짜리 단기자금인 콜시장을 포함해 3일물ㆍ1주일물 등 통상 만기 3개월 이하의 단기금융상품이 거래되는 시장을 가리킨다. 국내는 콜시장의 하루 거래량만도 30조원에 이를 정도로 콜시장 의존도가 높은 반면 3일물ㆍ2주일물 등 다른 단기 금융상품의 거래는 사실상 전무한 실정이다. 이처럼 단기금융시장이 취약하다 보니 단기금리를 대표할 수 있는 기준 금리도 없는 형편이다. 궁여지책으로 은행권이 발행하는 3개월 양도성예금증서(CD) 금리를 예금ㆍ대출금리를 포함한 단기 지표금리로 쓰고 있지만 자주 시장을 왜곡시키고 있다. CD 금리의 경우 은행 자금사정에 따라 단기금리 급변을 가져오는 것은 물론 주택담보대출 금리마저 춤을 추게 만든다. 정부는 단기금융시장 개선책을 기업어음(CP), 환매조건부채권(RP), CD, 콜 등 4개 부문으로 나눠 마련할 방침이다. ◇CP 등을 활성화시켜 단기금융시장 육성=정부의 단기금융시장 개선책의 핵심은 CP와 RP 거래 활성화로 요약될 수 있다. 1주일ㆍ3주일 등 다양한 만기를 가진 단기금융상품 거래가 확대될 수 있도록 인프라와 제도를 개선하자는 것이다. 금융위원회의 한 관계자는 “단기금융시장이 정부의 주요 국정과제인 만큼 가능한 한 빨리 태스크포스팀(TFT)을 구성하겠다”며 “우선 CP의 전자증권화 작업에 들어갈 것”이라고 말했다. 국내 CP 발행잔액은 지난 2007년 말 현재 60조원대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되나 이 가운데 40조원 이상은 통계에 잡히지 않는 비공식 거래다. 시장 전문가들은 전자증권이 도입되면 비공식 시장이 전자거래로 흡수되면서 몇 년 안에 수백조원으로 시장으로 확대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정부가 우선 전자CP 도입을 추진하는 것은 가장 효과적인 단기금융상품 활성화 방안이 될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CP는 여타 채권과 달리 현재 증권예탁원을 통한 등록 발행도 불가능해 기업 등 CP 발행자와 은행 등 인수자가 직접 만나 실물과 인수대금을 교환해야 한다. 이런 번거로움 등 때문에 3일짜리 등 초단기물 거래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 하지만 전자증권화가 이뤄지면 인터넷을 통해 발행ㆍ유통이 가능하기 때문에 언제든 이런 거래가 이뤄질 수 있다. 신승환 홍익대 경영학과 교수는 “전자증권제도가 정착되면 CP 거래의 편의성은 물론 투명성이 획기적으로 제고되면서 단기시장이 단기간에 크게 성장할 것”이라고 말했다. ◇RP 거래 활성화 방안도 추진=또 다른 단기금융시장 육성 방안은 ‘RP 활성화’다. RP는 국채ㆍ회사채 등을 담보로 단기자금을 빌리는 거래형태로 단기금융시장의 꽃으로 불린다. 미국에서는 하루 거래량만도 700억달러에 이를 정도로 대표적인 단기금융상품이다. 정부는 RP 거래 확대를 위해 주요 단기자금 운용기관인 자산운용사가 RP를 매수할 수 있도록 근거 규정을 신설할 계획이다. 금융계의 한 관계자는 “대형 자산운용사들이 근거 규정이 없어 RP를 매입하지 못하고 있다”며 “매입 규정이 생기면 RP 거래가 활성화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정부는 또 RP시장 활성화를 위해 국채시장의 프라이머리 딜러처럼 RP 딜러제도를 도입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RP 거래 활성화와 함께 비대해진 콜시장의 정상화도 추진된다. 콜시장에 비(非)은행 금융회사인 자산운용사ㆍ보험사 등이 대거 참여하면서 통화정책 효과가 반감됐고 필요 이상으로 시장이 비대해져 다른 단기금융상품의 활성화를 막고 있다. 이에 따라 RP시장 확대 추이를 고려해가며 콜시장의 참여 회사를 은행으로 제한하는 대신 다른 금융회사는 RP시장에 참여하도록 유도할 계획이다. 정부는 은행권 자금 수급 사정에 따라 급변동하는 CD 금리 대신 RPㆍCP시장이 활성화하는 것에 맞춰 실질적인 단기금융시장을 대변할 수 있는 단기 금리를 만들어나갈 방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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