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리는 내로라하는 기관투자가들이 서로 고민해 거래를 한 결과이기 때문에 투자자들에게 중요한 신호를 준다. 최근에 채권시장에 재미있는 신호들이 나타났다. 독일 5년 만기 국채는 지난 2014년 12월 말부터 마이너스로 접어들었는데 스위스 정부가 이번 달 8일에 -0.055% 금리에 10년 만기 채권을 발행하면서 이 추세가 10년 물로 이어지고 있다. 독일의 10년 만기 국채금리도 연초에 0.54%에서 불과 3개월 만에 0.155%로 하락하면서 마이너스 금리에 바짝 다가서고 있다.
극단적으로 말하면 채권이 이자를 받는 자산이 아니라 원유 같은 상품처럼 가격변화를 보고 거래하는 자산이 돼버렸다. 이 국채를 사면 국가에 세금을 내는 셈이다. 대체 왜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디플레이션 때문이라고 하고 중앙은행 때문이라고도 한다. 채권시장이 주는 이 신호를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시장 참가자들의 비관적인 기대가 반영된 것일까.
디플레이션 논리는 좀 궁색하다. 금리가 약간 횡보하다가 재차 하락한 것은 지난해 12월부터다. 미국은 양적완화를 종료하고 유럽은 양적완화를 확대하겠다는 대륙 간 엇갈리는 통화정책이 큰 영향을 발휘한 것이다. 유로화가 1년 동안 달러 대비 25%나 절하되면서 독일은 경상수지 흑자가 국내총생산(GDP) 대비 7.5%에 이르는 상황이다. 독일 주가지수는 지난해 말 대비 30%나 상승했다. 디플레이션으로 마이너스 금리까지 감수하는 나라치고는 좀 안 맞는 면이 있다.
우량한 채권이 없어서 우량채권의 가격이 오른 면도 있다. 하지만 이것은 중앙은행이 채권을 너무 많이 산 것이 지배적인 이유이다. 유럽연합의 공격적인 채권매입, 즉 양적완화 정책은 환율 절하를 통해 경기를 부양하려는 의도가 크다. 유럽연합(EU)은 내수가 부족한 상황에서 추가적인 정부지출보다는 다른 나라의 내수를 활용하겠다는 뜻이다.
재미있는 사실은 독일이 거대한 무역수지 흑자를 가져가는 데 대해 불평을 해온 미국이 환율 절하를 묵인하고 있다는 점이다. EU의 쌍둥이처럼 정책을 펴는 또 다른 나라가 일본이다. 일본 엔화도 8개월 만에 달러 대비 20%가량 절하됐고 주가는 30% 올랐다. 일본 엔화의 약세에 대해서도 미국은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미국의 수출이 미국 경제의 13% 정도만 차지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다른 측면도 있다.
미국은 중국과 러시아가 다시 위협이 되는 상황에서 두 우방인 일본과 유럽이 장기침체의 늪으로 빠지는 것을 원하지 않기 때문으로 보인다. 마이너스 금리도 디플레이션보다는 미국의 '라이언 일병 구하기'의 부산물인 셈이다. 채권가격은 이 작전 때문에 왜곡돼버렸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