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의 표정은 그 어느 때보다 무거웠다. 위원장이 개회를 선언했는데도 윤 장관은 허리를 비스듬히 의자에 걸친 채 불편한 자세를 고치지 않았다. 국감장을 취재하던 기자들은 "장관이 오늘따라 유난히 달라 보인다"며 웅성댔다. 그래서였을까. 윤 장관은 첫 질의에 나선 전병헌 민주당 의원이 직접 배추와 상추 등을 들고 나와 물가에 대해 구체적인 수치를 묻자 한동안 답변을 하지 못했다. 질의가 끝난 뒤 윤 장관은 "새벽까지 잠도 못 자고 국감준비를 열심히 했는데 질의순서도 방금 알았다"며 "질의서도 (국감 전에) 미리 받지 못한 경우가 많다"고 따졌다. 피감기관 수장의 높아진 언성에 여야 의원 모두 당황했다. 권영세 한나라당 의원은 "질의순서가 바뀌었다고 화내는 장관은 처음 봤다"며 "질의서를 받아 읽기만 하는 장관은 의미 없다"고 말했다. 오제세 민주당 의원이 서민경제 파탄에 대해 묻자 윤 장관은 "그런 자극적인 발언은 삼가달라"고 받아쳤고 이에 이정희 민주노동당 의원은 "의원들이 사용하는 용어는 국민들의 정서를 담아 의원들이 선택할 문제"라고 재차 따졌다. 급기야 이강래 민주당 의원은 "오늘 장관의 답변 태도를 보니 주요20개국(G20) 회의 때문에 많이 피곤한 것 같다. G20 일이 그렇게 많으냐"고 비꼬았다. 일부 재정부 관료들도 윤 장관의 '까칠한' 태도를 일정 부분 인정했다. 한 재정부 관계자는 "G20 준비와 총리대행 등 과도한 업무에 직원들이 장관 보고를 하려면 번호표를 뽑고 기다려야 할 지경"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윤 장관은 10박12일 G20 세계일주 출장을 마친 지 불과 닷새 만에 국감에 나서야 했다. 또 국감이 끝나는 6일 곧바로 국제통화기금(IMF) 연차총회 참석차 미국을 방문하고 방미 후 오는 22~23일에는 경주 G20 재무장관회의를 주재하는 등 몸이 열 개라도 부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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