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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닐하우스를 만들 때 쓰이는 농업용 폴리에틸렌 필름은 합성수지(플라스틱)로 분류돼 제조업체가 폐기물 부담금을 내야 한다. 여기에 부과되는 부담금이 1년에 150억원에 달할 것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비닐하우스용 필름은 쓰이고 나면 통상 농촌의 재활용 집하장으로 수집돼 재활용사업자에게 팔린다. 70~80%가량은 재활용되고 일부는 중국으로 팔린다. 사실상 폐기물이 거의 나오지 않는 물품인데 업체들은 '울며 겨자 먹기'로 폐기물 부담금을 내고 있다.
유환익 전국경제인연합회 산업본부장은 "기준이 모호한 부담금이 기업활동의 불확실성을 높이는 대표적 원인"이라고 지적한다.
◇중소 제조업체 생존 위협하는 구시대적 부담금=환경부는 현재 플라스틱, 유독물, 껌, 부동액, 1회용 기저귀 등에 폐기물 부담금을 부과하고 있다. 하지만 그 기준을 두고 매년 제조업계에서 엄청난 논란이 벌어진다. 특히 플라스틱의 경우 일부 제품의 재활용률이 매우 높아졌지만 부담금이 일률적으로 부과돼 기업의 불만이 높다. 재활용 기술의 발달을 규제가 따라가지 못하는 것이다. 권보미 중소기업중앙회 과장은 "플라스틱 폐기물 부담금 요율이 일반용과 건축용으로만 분리돼 있다 보니 업체 사이에 형평성 논란이 크다"고 말했다. 환경부는 매년 자발적협약, 생산자책임재활용(EPR)제도 등을 통해 재활용률이 높은 기업의 부담금을 면제하고 있다고 밝히고 있다. 하지만 기업은 플라스틱이라고 해서 일률적으로 부담금 제도에 편입시킬 것이 아니라 재활용률 등을 전수 조사해 품목별로 부담금을 구분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부동산 시장 침체됐는데…개발 부담금에 기부채납까지=지방에서 주택건설 사업을 진행하던 A건설사는 지방자치단체로부터 인허가의 대가로 사업과 전혀 무관한 지역에 대규모의 사회복지회관 부지를 기부채납할 것을 요구 받았다. 이처럼 과도한 기부채납 요구 사례는 전국 개발 현장 곳곳에서 벌어진다. 사업자는 기반시설 설치 등을 위해 각종 부담금을 납부하면서도 인허가 때는 지방자치단체가 요구하는 각종 공공시설 등에 기부채납을 해야 한다.
기부채납 외에도 부동산 개발 때 사업자가 납부하는 부담금 숫자는 줄잡아 20개에 달한다. 교통유발부담금, 학교용지 부담금, 상하수도 시설원인자 부담금, 기반시설설치비용, 농지보전 부담금, 개발부담금, 생태계 보전협력기금 등 명목도 다양하다.
최근 부동산 시장이 급격히 악화됐지만 부담금 수준과 지자체의 관행에는 변화가 없다. 지역 개발사업은 줄줄이 차질을 빚고 사업 지연으로 업체의 도산이 이어지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수순이다. 유정주 전경련 규제개혁팀 차장은 "개발 사업에 따른 기업 부담이 너무 과도하다"며 "기부채납과 각종 부담금 등 모든 부담금의 합계가 총 사업비의 일정 비율을 넘지 못하도록 '부담금 상한제'를 도입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체납 가산금 국세 기준 초과…수도권 역차별도 지나쳐=기업의 생리상 자금 흐름이 막히면 부담금을 제때에 내지 못하는 경우도 발생한다. 하지만 일부 부담금의 경우 체납에 따른 가산금 요율은 국세 체납 가산금 요율(3%)을 크게 웃돈다.
재정부에 따르면 현재 대략 25개 부담금이 국세 체납 가산금 기준을 초과하고 있다. 학교용지부담금ㆍ교통유발부담금ㆍ농지보전부담금ㆍ생태계보전부담금ㆍ재활용부과금ㆍ환경개선부담금 등 기업활동과 관련이 높은 부담금 대부분의 가산금 요율이 5% 수준이다. 심지어 일부 부담금의 경우 가산금 요율이 15%에 이른다. 전문가들은 조세나 부담금 모두 국민과 기업에는 금전적 부담인데 국세 기준을 초과하는 가산금은 합리적 근거가 없다고 비판한다.
수도권에 대한 과도한 부담금도 문제로 꼽힌다. 과밀부담금ㆍ개발부담금ㆍ광역교통시설부담금ㆍ농지전용부담금 등이 모두 수도권 기업에 집중된다. 인구가 과밀한 수도권 분산을 노린다는 취지는 옳지만 일부 부담금은 기준이 너무 엄격하다. 서울시내 한 대기업의 연구소는 과밀부담금만 100억원이 넘게 납부했다. 기업들은 연구소 시설의 경우 인구를 유발하는 시설이 아닌 만큼 서울에 위치한다는 이유만으로 부담금을 부과하는 것은 불합리하다고 호소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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