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황은 역전된 지 오래다. 막대한 자본을 갖고 산유국들보다 우위에 선다는 것은 과거의 이야기일 뿐이다.” 자원민족주의에 대한 한 자원개발업체 관계자의 말이다. 최근에는 중앙아시아 국가들도 지난 1970~1980년대 중동 산유국의 전철을 밟아 자원을 무기로 자국의 이익을 관철시키고 있다. 석유공사의 한 관계자는 “10여년 전만 하더라도 돈만 있으면 중앙아시아 등의 산유국과는 유리한 조건의 계약을 맺을 수 있었지만 지금은 그때 맺은 계약조건이 뒤집어지는 사례가 많다”고 설명했다. 최근 자원민족주의의 목소리가 가장 높아진 곳은 중앙아시아, 특히 이 지역 최대 산유국인 카자흐스탄이 그 중심에 서 있다. 카자흐스탄은 지난해 10월 외국 유전개발 투자자들과의 계약조건 변경 및 종료 권한을 정부에 부여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법안은 투자기업이 환경 문제 등 다양한 계약조건을 제대로 이행하지 않을 경우 정부가 사업 중단은 물론 나아가 일방적으로 계약을 파기하는 것을 더욱 쉽게 만드는 게 골자다. 그 이면에는 고유가가 지속되고 있는 상황에서 과거 불리하게 이뤄졌던 계약조건을 자국에 유리한 방향으로 바꾸겠다는 목적이 깔려 있다. 법안 통과 전부터 카자흐스탄 정부는 최대 유전인 카샤간(매장량 700억배럴) 개발 문제를 놓고 국제컨소시엄 ‘아지프 KCO’와 지분 재협상을 하고 있는 중이었다. 천연가스 최대 생산국인 러시아는 공급가를 좌지우지하면서 파워를 과시하고 있다. 러시아의 국영 가스회사인 가즈프롬은 천연가스 가격을 갑작스레 인상하면서 이에 반발하는 우크라이나에 가스 공급을 전격 중단하는 극약처방도 대수롭지 않게 내리고 있는 상황이다. 지난달 13일 우고 차베스 베네수엘라 대통령의 한마디에 국제유가는 하루 만에 2% 폭등하기도 했다. 차베스 대통령은 미 연방법원이 미국 내 베네수엘라석유공사(PDVSA)의 현금자산 3억달러를 동결하라고 명령한 데 반발, 미국에 석유를 수출하지 않겠다고 선포한 것. 차베스는 베네수엘라가 미국에 원유 공급을 중단할 경우 유가는 배럴당 200달러까지 치솟을 수 있다며 엄포를 놓았고 불안해진 투자자들이 석유 매입에 나서면서 유가는 100달러선을 다시 넘어섰다. 국제 광물 가격 급등으로 광물자원의 민족주의도 나타나고 있다. 석탄 등 광물자원이 풍부한 몽골도 예외는 아니어서 외국 개발기업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는 등 배짱 장사를 하고 있다. 몽골은 광물이 대량 매장된 15개 광산을 전략광산으로 지정했다. 국유화하겠다는 것이다. 브라질이나 호주 등도 마찬가지. 세계 3대 철광석 공급업체인 발레도리오도체(CVRD)는 한국 포스코와 일본 신일철ㆍJFE스틸, 중국의 바오산 등에 공급하는 철광석 가격을 오는 4월부터 65% 인상한다고 통보했다. 호주의 광산업체 리오틴토와 BHP빌리턴도 최대 154% 인상을 요구하며 제철업체에 압력을 가하고 있다. 정부의 한 관계자는 “우리나라의 경우 아직까지는 자원민족주의로 인해 피해를 당한 경우는 많지 않다”고 말했다. 이는 그만큼 해외자원개발이 많지 않았다는 것을 뜻하기도 한다. 반면 해외자원개발을 활발하게 진행하는 일본은 이미 상당한 피해를 보고 있다. 카자흐스탄 정부는 최근 일본이 확보 중인 카스피해 카샤간 유전개발 지분을 8.33%에서 7.56%로 축소시켰다. 또 미쓰이물산ㆍ미쓰비시상사가 러시아 사할린에서 추진 중인 사할린 2구역 개발권은 지분이 45%에서 절반으로 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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