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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영화계를 대표하는 감독들의 신작이 나란히 극장에 걸린다. 한국영화의 거목 임권택 감독의 '화장'과 흥행의 귀재 강제규 감독의 '장수상회'다. 공교롭게도 개봉일이 9일로 같고 안성기와 박근형이라는 믿고 보는 연기자들이 주연을 맡았다는 점도 비슷해 관객들의 선택을 어렵게 한다. 장·노년의 시들어 가는 육체와 그에 대한 고뇌, 뒤늦게 찾아온 사랑을 소재로 다뤘다는 점도 유사해 보인다. 하지만 두 영화의 시선과 분위기는 사뭇 다르다.
◇거장이 말하는 삶과 죽음, 그리고 욕망=임권택 감독의 102번째 영화 '화장'은 김훈 작가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다. 암으로 투병하는 아내(김호정 분)를 둔 50대 남성 오 상무(안성기 분)가 부하 직원인 젊은 추은주(김규리 분)을 마음에 품고 갈등하는 것이 주요 줄거리. 겉으로 드러나는 사건이나 갈등은 많지 않다. 카메라가 시종일관 좇는 것은 오 상무의 흔들리는 내면이다.
영화 '화장'을 보는 경험은 다소 불편할 수 있다. 사람은 누구나 늙고 언젠가는 죽는다. 하지만 그것을 직시하는 것은 힘든 일이다.
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에 참석했던 감독은 영화에 대해 "나이가 들수록 욕망은 끝도 없이 달라붙지만 그런 것도 삶이고 그것을 절제하려고 싸우는 것이 바로 인생임을 이야기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봄날의 로맨틱 '장수상회'='화장'이 다소 무거운 분위기인 데 반해 '장수상회'는 봄기운이 물씬 풍기는 화사하고 싱그러운 이야기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말이야 말로 이 영화에 딱 어울린다.
70세 연애 초보 성칠(박근형 분)과 그의 마음을 흔드는 꽃집 여인 금님(윤여정)의 러브스토리를 주축으로 이야기는 흘러간다.
물론 70세의 사랑을 담아내는 만큼 육체의 노쇠함에 따른 고통과 슬픔도 말해진다. 금님은 병을 앓고 있고 성칠은 기억이 깜박깜박한다. 하지만 이는 그저 두 사람의 진정한 사랑을 가로막는 장애물 정도의 역할을 할 뿐이다.
그만큼 영화는 그저 예쁘고 사랑스럽다. 악한 사람 한 명 안 나온다. 강제규 감독 역시 "이야기는 판타지에 가깝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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