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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꾸로 가는 질병 시계

대부분의 질병은 시간이 흐를수록 파괴력도 강해진다. 과학자들이 최근 이런 질병들의 시계를 거꾸로 돌릴 방법을 찾아냈다.

▶ 알츠하이머병
젊은 피로 기억력 회복

세계보건기구(WHO)에 따르면 현재 전 세계 치매 환자수는 4,750만명에 달한다. 2050년이면 이 숫자가 1억 3,550만명으로 늘어날 전망이다. 그리고 이중 60~70%가 알츠하이머성 치매 환자로 추정된다. 알츠하이머병으로 인한 사회적 비용이 천문학적 수준으로 치솟을 것이라는 얘기다.

이런 가운데 지난해 미국 스탠퍼드 의대 토니 위스-코레이 박사팀이 독특한 해법을 제시해 주목을 받고 있다. 젊은 사람의 혈장을 정맥주사로 주입하면 알츠하이머병 환자의 기억력 상실을 막고, 정상 상태로 복귀시킬 수 있다는 것이었다. "알츠하이머병 환자의 혈액을 연구하면서 건강한 사람의 혈액과 눈에 띄는 차이를 발견했어요. 인간의 혈액 성분은 나이가 들면서 바뀌기 때문에 젊은이의 혈액이 노화된 뇌에 효과가 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죠."

이 의문을 확인하고자 그는 다소 섬뜩한 실험을 실시했다. 하나의 순환기관을 젊은 쥐와 늙은 쥐가 공유하도록 만든 것. 그로부터 5주일간 젊은 쥐의 뉴런 생산량은 줄어든 반면 늙은 쥐는 늘어났다. 이렇게 가능성을 확인한 연구팀은 젊은 쥐의 혈장을 늙은 쥐에게 주사한 뒤 미로에 넣어봤다. 그러자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은 늙은 쥐보다 미로를 빨리 탈출했고, 학습효과도 오래갔다.

현재 연구팀은 젊은 피에 함유된 치료 효과의 근원 규명에 주력하고 있다. 어쩌면 알츠하이머병의 유력한 원인으로 꼽히는 대뇌의 염증을 억제하는 단백질이 들어있을지도 모른다. 이와 함께 임상시험도 시작한다. 금명간 18명의 환자에게 젊은이의 혈장을 주입, 병세 호전 여부를 확인할 예정이다.

물론 이 연구는 아직 가능성에 가깝다. 하지만 위험은 적고, 잠재력은 지대하다.

▶ 실명
시력을 되찾아주는 줄기세포 요법

노인성 황반변성 환자들은 천천히 시력을 잃는다. 시력을 완전히 잃는 경우는 드물지만 초점이 흐려지고, 색상이 어두워지다가 사람 얼굴을 알아보지 못하는 지경에 이른다. 이와 관련 작년 가을 미국 매사추세츠주 소재 생명공학기업 오카타 테라퓨틱스가 인간 배아줄기세포 요법으로 감퇴된 시력의 회복이 가능하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이 회사에 따르면 황반변성의 가장 흔한 증상은 망막의 가장 바깥층인 망막색소상피층(RPE)의 손상이다. RPE는 시세포인 간상체와 추상체에 영양분과 산소를 공급해주기 때문에 RPE 없이 이들 시세포는 제 기능을 수행하지 못한다.

오카타는 배아줄기세포를 RPE로 분화시켜 안구에 이식하는 방식으로 해법을 찾아냈다. 지난해 수행된 2건의 임상시험 결과, 18명의 환자 중 10명이 시력 개선을 경험한 것. 한쪽 눈을 실명한 75세의 한 목장주는 다시 말을 탈 수 있을 정도로 시력이 좋아졌다. 이 회사의 의료수석인 에디 앵글레이드 박사에 따르면 나머지 8명 중 7명도 시력 감퇴의 진행이 중단됐다.

"정확한 메커니즘은 파악 중이지만 이식된 RPE가 병든 간상체와 추상체에 활기를 되찾아주거나 새로운 간상체와 추상체를 생성하기 때문으로 추정됩니다."

앞으로 별다른 문제가 발생하지 않더라도 이 요법이 미 식품의약국(FDA)의 승인을 얻으려면 최소 수년은 걸린다. 하지만 승인을 얻는다면 백내장 수술만큼 대중화되는 것은 시간문제다.

▶ 당뇨병
체중과 혈당을 동시에 낮춰줄 비책

당뇨병 환자들은 인슐린을 포함한 온갖 약들을 평생 동안 달고 산다. 미국인 조지 트레프도 그랬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약이 듣지 않았다. 식이요법이나 운동도 소용없었다.

그러던 2009년 4월 그의 주치의가 새로운 방법을 제안했다. 바로 '루와이 위 우회술'이었다. 위(胃)의 일부만 소장과 직접 연결하는 시술로, 위의 크기가 작아지는 효과가 있어 음식 섭취량을 줄일 수 있다. 때문에 고도비만 환자들이나 시술 받던 것이었다. 하지만 결과는 놀라웠다. 시술 후 트레프는 108㎏나 나갔던 체중의 감량은 물론 혈당도 급격히 떨어졌다. 시간이 지나자 인슐린이 거의 필요 없을 정도로 당뇨병이 호전됐다.

이에 대해 영국 유니버시티 칼리지 더블린의 카렐 르 루 박사는 다음과 같이 밝혔다. "루와이 위 우회술은 사실상 비만보다 당뇨병 치료에 더 효과적입니다. 작용기전 규명을 위한 연구가 진행 중인데, 시술 수 담즙산 분비량의 증대가 한 원인으로 지목됩니다. 담즙산은 FXR이라는 수용체와 결합, 혈당 조절 호르몬의 분비를 촉진하기 때문입니다."



한편 세계적 생명공학 연구소인 솔크연구소의 마이클 다운스 박사팀이 이와 동일한 작용을 하는 약물도 개발하고 있다. 이미 FXR 활성화 약물을 통해 체중 및 혈당 조절이 가능함을 쥐 실험으로 입증한 상태다. "이 약물은 수술보다 훨씬 유용합니다. 몸에 칼을 댈 필요가 없으니까요."

▶ 심부전
건강한 심장 박동을 담보하는 유전자 치료제

심부전 환자들은 쉽게 피로해지고 숨을 헐떡거린다. 일부 환자는 심장 이식이 불가피하다. 하지만 머지않아 심장 이식을 대체할 유전자 요법이 등장할지도 모른다.

심장이 박동하려면 심근세포가 수축과 이완을 반복해야 한다. 칼슘 이온이 특별한 세포기관을 통해 심근세포에서 방출되면 수축, SERCA2a 단백질이 심근세포로 유입되면 이완이 일어난다.

미국 마운트 사이나이병원의 로저 하자르 박사팀은 심부전 환자의 SERCA2a 단백질이 정상인보다 부족한 경향이 많다는데 주목했다. 그래서 유전자 조작을 통해 심장세포에 이 단백질을 생산하는 유전자를 수송할 바이러스를 개발했다. 이 바이러스가 심장세포와 접촉하면 SERCA2a 단백질이 늘어난다. "기존 피해는 복구하지 못해도 남아있는 세포들이 더 열심히 일하도록 만들 수는 있습니다."

2007년 51명의 심부전 환자를 대상으로 'MYDICAR'로 명명된 이 요법을 임상시험한 결과, 바이러스 투입량이 많을수록 심장마비 발생률과 심장이식 필요성이 낮아졌다. 3년 후 이들의 심장 관련 입원과 사망 비율도 줄어들었다.

자신감을 얻은 연구팀은 2012년 임상시험 규모를 250명으로 늘렸고, 지난해 MYDICAR는 FDA로부터 혁신연구로 지정받아 연구개발에 한층 속도가 붙었다. 하자르 박사의 동료인 임페리얼 칼리지 런던의 시안 하딩 박사는 MYDICAR의 미래에 낙관적이다. "앞으로 심부전 환자들도 MYDICAR에 의해 정상적인 삶을 영위할 수 있을 겁니다."

▶ PTSD
우울증을 퇴치할 뇌 자극술

한 연구에 따르면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 파병 병사 200만명 중 약 5분의 1이 외상후 스트레스 증후군(PTSD)에 노출돼 있다. 이 중 일부는 스스로 악몽과 불안감을 떨쳐내지만 대다수는 아무리 많은 상담과 치료에도 별반 차도가 없다.

이와 관련 최근 미국 LA 소재 VA 세풀베다 병원의 정신과 전문의 랄프 코엘 박사팀은 다른 치료법이 통하지 않는 PTSD 환자들을 대상으로 뇌심부 자극술의 유용성을 확인하기 위한 최초의 임상시험에 돌입했다. "환자 6명의 편도체에 전극을 이식했습니다. 편도체는 공포, 불안, 두려움 등의 부정적 감정을 관장하는 뇌 영역이죠. 전극이 과잉 활성화된 편도체의 신호를 교란, 일상생활에서 수시로 찾아오는 극도의 공포심을 없애줄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이 같은 효과는 이미 동물실험에서 입증돼 있다. 일례로 쥐를 활용한 2012년의 한 연구에서는 뇌심부 자극술이 항우울제보다도 '과각성(hypervigilance)' 억제에 효과적인 것으로 나타났다.

물론 코엘 박사팀 외에도 전 세계 다수의 과학자들이 PTSD 환자들을 위한 뇌심부 자극술을 연구 중이다. 지난 2013년에는 펜타곤 산하 방위고등연구계획국(DARPA)이 우울감, 공포심 등의 제어를 목표로 5년간 7,000만 달러가 투자되는 뇌 이식장치 개발 프로그램을 런칭하기도 했다.

200,000 우리나라의 알츠하이머병 환자 수. 미국의 경우 500만명에 달한다.

루와이 위 우회술 Roux-en Y gastric bypass.
FXR Farnesoid X Recep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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