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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년 역사 유망 벤처기업이 겪고 있는 시련

The Trials of a 16-Year-Old Can't-Miss Startup

카리스마 강한 CEO 호사인 라만 Hosain Rahman이 이끄는 조본 Jawbone은 운동량 측정기 ‘UP’ 등 디자인이 뛰어난 혁신 제품들을 앞세워 오랫동안 실리콘밸리의 까다로운 투자자들을 사로잡아왔다. 그러나 경영상의 실수가 수차례 조본의 발목을 잡았다. 현재 주요 사업 분야에서 시장점유율이 계속 하락하고, 애플이 새로운 경쟁자로 등장하면서 위기가 커지고 있다. 조본은 과연 투자자들의 기대에 부응할 수 있을까?

By Adam Lashinsky


최근 화제의 중심에 오른 IT기기업체 조본의 CEO 호사인 라만(38)을처음 만났을 때, 필자의 눈길을 제일 먼저 잡아끈 건 그의 손목이었다. 넉넉한 덩치에 수염이 덥수룩한 라만은 양 팔뚝에 어린 자녀들이 선물해 준 알록달록한 팔찌를 여러 개 차고 있었다. 왼쪽 손목에 찬 포금(砲金) 소재의 큼직한 IWC 시계 *역주: 스위스 고급시계 브랜드 에선 화려한 삶을 사는 부자의 분위기가 물씬 풍겼다. 라만도 이를 수줍게 인정했다. 반대편 손목에는 회색 UP3을 차고 있었다. 조본의 신제품으로, 운동량을측정해주는 손목밴드형 기기였다.

웨어러블 기기 시장을 개척한 기업 중 한 곳인 조본의 UP3은 심박수 측정 기능을 도입, 시장에 혁신을 가져올 것이라고 예고한 바 있다. 그러나 아직 시판은 되지 않았다. 생산에 차질을 빚어 최대 대목 중 하나인 연말 시즌을 놓쳤다. 그러나 라만은 출시 연기를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듯했다. UP3은 우아한 디자인,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의 결합으로 구현된 뛰어난 기능, 그리고 사용자의 삶에 변화를 가져올 혁신적 데이터 분석까지, 조본이 추구하는 모든 가치의 정수라 할 수 있다. 라만은 “무엇을 착용했느냐를 보면 그 사람이 누군가를 알 수 있다”며 “기능적인가, 장식적인가 아니면 고급 소재로 만들었는가” 같은 것들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UP를 착용한다는 건 곧 착용자가멋지고 건강하며 자신감 넘치는 사람임을 의미한다는 말이었다.

라만은 재즈 전문 채널의 DJ를 연상시키는 탁한 중저음의 목소리에 자신감 있는 말투로 듣는 이를 홀리는 능력이 있었다. 유려한 언변으로 애플 제품의 장점을 설명하던 스티브 잡스의 모습이 저절로 떠올랐다. 라만을 만난 때는 1월의 어느 화창한 날이었다. 개방형 사무 공간으로 디자인된 조본 본사는 샌프란시스코 시내의 언덕배기에 위치한 포트레로 힐 Potrero Hill에 있었다. 인터뷰는 ‘럭비’라는 이름의 회의실에서 진행됐다(LA 출신인 라만과 달리, 공동창업자 알렉산더 어셀리 Alexander Asseily는 베이루트와 런던에서 자랐다. 두 사람은 스탠퍼드에서 럭비를 하면서 알게 되었다).

이 회의실—라만이 사실상 사무실로 쓰고 있다—여기저기에는 그의 생각을 표현한 낙서가 담긴 화이트보드가 걸려 있었다. 한쪽 벽에는 2001년 무렵 잡스가 했던 것처럼 검은 커튼을 쳐서 시제품의 모습을 감춰 놓았다. “지난 15년간 우리가 했던 모든 일은 지금부터 할 일을 위한 준비 과정이었다.” 그는 과감한 미래 예측까지도 잡스를 빼닮은 모습이었다. 조본은 올해로 창업 16주년을 맞는다. 이렇게 긴 시간 동안 상장되지도, 폐업하지도 않은 채 벤처기업으로 남은 경우는 실리콘밸리에서도 극히 드물다. 초창기 기업 가치가 수십억 달러에 달해, 예전 같았으면 상장했을 법한데도 비상장 기업으로 남아 있는 기업들을 흔히 ‘유니콘’이라고 부른다. 조본도 좋은 의미의 유니콘에 속한다. 지난 해 투자유치 과정에서 조본의 기업 가치는 약 30억 달러로 평가받았다.

● 조본 기업정보

창업: 호사인 라만과 알렉산더 어셀리, 1999년

본사: 샌프란시스코

직원 수: 450명

사적시장가치(PMV): 30억 달러 이상

조본의 인지도는 꽤 높은 편이다. 휴대전화용 블루투스 헤드셋, 무선 스피커(잼박스 Jambox가 인기 제품이다), 운동량 측정기 세 분야를개척한 선구자다. 라만은 실리콘밸리의 거의 모든 A급 기업가 및 투자자들과 친분이 있고, IT 회의장에도 꼭 얼굴을 비친다. 프로그래머들이 서로 우정을 나누는 실리콘밸리 특유의 ‘브로그래머 bro-grammer’ 문화에서도 라만은 인기 있는 인물이다.

그와 비슷한 성향인 세일즈포스닷컴 Salesforce.com의 CEO 마크 베니오프 MarcBenioff가 라만을 ‘파키스탄인 어머니가 낳은 형제’라고부를 정도다. 라만의 친구이자 조력자로서 조본의 수석 디자이너를 겸하고 있는 이브 베하 Yves Behar의 명성도 라만에 뒤지지 않는다. 베하는 지난해 중국의 한 마케팅 업체에 자신이 세운 퓨즈프로젝트 Fuseproject의 지분을 매각하며 경영권을 넘긴 바 있다. 현재 그는 삼성 TV 디자인 등 여러 벤처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있다. 스마트 도어록으로 최근 유명해진 어거스트 August의 공동 창업자이기도 하다.

조본이 헤쳐온 역경은 전설적인 벤처기업의 전형적 성장 과정과도 닮아있다. 스탠퍼드대 자연과학 전공 과정(라만이 아닌 어셀리의 전공이다)에서 만들어져 수차례 부침을 거듭하다가 폐업 직전까지 몰린 적도 여러 번 있었다. 그러나 샌드힐 로드 Sand Hill Road *역주: 벤처 투자업체 밀집 지역 의 가장 유명한 투자자들로부터 4억 달러 이상을 유치하기도 했다. 조본은 소비자 행동과 최신 기술의 만남이라는 시대 정신을 구현하는 데 있어 핵심 위치를 잃지 않은 기업이기도 하다. 투자사 앤드리슨호로비츠 Andreessen Horowitz를 이끄는 벤 호로비츠 Ben Horowitz는 조본을 “독특한 역량을 갖춘 독특한 회사”라 묘사한 바 있다. 그는 조본의 이사이며 초기 투자자 중 한 명이기도 하다. 현재는 호로비츠 외에도 코슬라 벤처스 Khosla Ventures, 세쿼이아 캐피털 SequoiaCapital, 클라이너 퍼킨스 Kleiner Perkins, 실버 레이크 파트너스 Silver Lake Partners, 블랙록 Black Rock 등 여러 유명 투자자가 조본에 투자하고 있다.

그러나 이 모든 성공에도 조본은 현재 위기에 처해있다. 정부보조금으로 연명하던 10년 전과 달리, 직원 450명에 매출 수억 달러를 기록하면서도 수익 전망은 오히려 10년 전만 못한상황이다. 전략적 움직임의 지체와 경영진의 오판이 겹치면서 (최근 떠오르는 피트비트 Fitbit 등) 준비된 경쟁사들이 여럿 등장해 조본을 위협하고 있다. 그간의 성공과 우수한 투자 유치 실적이 무색하게도, 조본은 여전히 현금 확보에 매달려야하는 상황이다.

정해진 기간 내에 고품질의 제품을 공급하는 데에도 차질을 빚고있다. 설상가상으로 시장의 큰 관심을 모았던 애플 워치 Apple Watch의 정식 출시가 다가오면서 애플의 웨어러블 기기의 시장 진출도 가시화되고 있다. 조본의 비전과 스타일은 분명 획기적이다. 하지만 자신들이 만들어낸 웨어러블 기기 시장에서 과연 살아남을 수 있을지는 여전히 미지수다.

스탠퍼드에 입학했던 1993년 당시만해도 알렉산더 어셀리의 관심사는 공학이 아닌 예술이었다. 그러나 실용성에 대한 관심이 점점 커지면서 곧 제품 디자인과 기계공학 공부로 방향을 틀었다. 그의 졸업 논문은 만화 딕 트레이시 Dick Tracy에서 막 튀어나온 듯한, 미래풍이 두드러진 기계 장치 디자인이었다. 어셀리는“헤드셋과 연결된, 손목에 차는 형태의 통신 장비 그림도 논문에 있었다”고 말했다. 훗날 그가 이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창립한 회사가 현재의 조본이다. 당시 지도교수는 그의 아이디어가 흥미롭지만 아직 시기상조라고 평가했다. 어셀리는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그 수업에서 B-를 받았다”고 말했다.


과학에 푹 빠진 스탠퍼드대 학생답게 어셀리는 벤처 창업의 열병에 걸렸다. 그는 친구 라만과 함께 자신의 아이디어를 활용해 제품을 만들 수 있을지 알아보기 시작했다. 두 사람은 한 교수로부터 인근 로런스 리버모어 국립 연구소(LawrenceLivermore National Laboratory)에서 음성인식 기술을 연구하고 있던 과학자들을 소개받았다. 당시 명확한 개발 목표가 없었던 연구진은 두 사람이 보유한 지적 재산을 활용해 미 국방부가 큰 관심을 보인 소음 차단 기술을 개발할 수 있음을알아냈다. 어셀리는 “국방부가 소음이 큰환경에서도 추적의 위험 없이 안정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음성 전송 시스템을 원하고 있었다”고 설명했다.

리버모어 연구소의 과학자 한 명이 두사람의 계획에 합류한 후, 이들은 방위고등연구계획국(DARPA)—인터넷 발명을 재정적으로 후원했던 미 국방부 산하 연구소의 후신이다—과 해군의 보조금을받을 수 있었다. 전장에서 유용한 기술이라면 자동차에서도 유용하게 사용할 수있다는 걸 깨달은 세 사람은 그 후 배경소음 차단 기술을 활용한 헤드셋 개발에 착수했다(이 제품은 군대를 연상케 하는노이즈 어새신 Noise-Assassin이라는 이름으로 상표 등록을 했다).

이들은 회사 이름을 알리프컴 AliphCom이라 지었다. 히브리어와 아랍어 알파벳의 첫 글자를 연상케 하는 이 이름은 구어(口語)를 통한소통을 암시했다. 창업 초기에 헤드셋 업계 대형업체 플랜트로닉스 Plantronics가 인수를 제의했지만, 대단한 일을 해내는 중이라고 믿었기 때문에 이를 거절했다.

그 ‘대단한 일’ 덕분에 두 사람은 2004년 스티브 잡스와 만날 수 있었다. 안타깝게도 잡스는 전선과 클립으로 휴대전화와 연결하는 헤드셋 아이디어를 가차없이 혹평했다. 라만은 “잡스가 ‘이 세상에서 이런 클립을 쓰는 사람은 당신 상상속에나 있을 것’이라고 비판했다”고 당시를 회고했다. 그 말은 옳았다. 그해 출시된 라만과 어셀리의 헤드셋은 호평을 받았지만 매출은 저조했다.

당시 두 사람은 경험 많은 하드웨어 전문가 팻 맥비Pat McVeigh—휴대폰 제조업체 팜 Palm의 CEO를 지냈다—를 영입한 상황이었다. 실리콘밸리의 유서 깊은 벤처 투자업체 메이필드 펀드 Mayfield Fund로부터 얼마간의 자금도 유치했다. 헤드셋이 실패하자 메이필드는 회사를 닫을 것을 주장했다. 하지만 DARPA에서 다시 보조금을 받고 살아남을 수 있었다. 그러나 맥비를 포함한 대다수 직원이 회사를 떠났다. 라만은 당시를 조본의 ‘핵겨울(nuclearwinter)’이었다고 회상했다.

지금 평가하자면 이때는 조본의 유년기였다. 어수선한 분위기에서 몇 안 되는 직원들이 사력을 다해 연구에 연구를 거듭했다. 그 결과 소음 차단이 우수한 무선 헤드셋 개발에 성공하며 돌파구를 찾아낼 수 있었다. 그러나 자금 조달이 여전히 골칫거리였다. 라만은 채권자들을 회사에서 떨어뜨려 놓는 데 전문가가 되었다. 2006년 어셀리는 영국 버밍엄Birmingham의 시계 유통업자들에게 자사 헤드셋이 제작되고 있는 중국 공장을 보여준 후, 가까스로 50만 달러를 투자받는데 성공할 수 있었다.

그리고 2006년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큰 변화가 찾아왔다. 싱귤러 와이어리스 Cingular Wireless(현 AT&T)가 알리프컴의 헤드셋을 매장에 입고하겠다는 결정을 내렸다. 하지만 그땐 알리프컴의 현금이 또다시 동난 상황이었다. 회사는 대금을 받지 못하면 제품을 넘기지 않겠다고 말했다. 대출을 연장받아야 싱귤러에 제품을 공급할 수 있었다. 라만과 어셀리는 알리프컴의 초기 투자자들을 설득했다. 그중에는 (패션 디자이너 토리 버치 ToryBurch의 전 남편) 크리스 버치 Chris Burch와 출판업계 재벌 3세인 오스틴 허스트 Austin Hearst도 있었다.

블루투스 헤드셋이 대성공을 거두면서 수백만 달러가 들어왔다. 벤처 투자자들이 알리프컴에 투자하고 싶어 안달을 내기 시작했다. 어셀리는 “2007년 1월에는 사방에서 사람들이 나타나 우리 회사에 대한 사랑을 고백했다”고 회상했다. 기업을 일구기 위한 8년간의 고생 끝에 드디어 제대로 인정받는 날이 온 것이었다.

알리프컴은 ‘벼락 스타 탄생’의 교과서적 사례였다. 운전 중 휴대전화 사용을 금지하는 법안이 여러 주에서 통과되면서 무선 헤드셋 수요가 크게 늘었다. 수백만 달러의 매출이 발생하면서 2007년과 2008년에는 상당한 수익을 거두었다. 이 무렵부터 어셀리는 조본의 경영 활동 일선에서 서서히 물러났고 결국 런던으로 돌아갔다. 그때 CEO가 된 라만이 자금 유치에 나섰는데, 그 결과는 전설적이었다. 호로비츠(앤드리슨 호로비츠 사가 엔젤투자를 시작하기 전의 일이다), 비노드 코슬라 Vinod Khosla(라만은 “내 인생에서 내 아이디어가 보잘것없어 보였던 때는 코슬라와 있었을 때가 처음이었다”고말했다), 페이팔의 최고 재무 책임자를 역임했던 세쿼이아 캐피털의 로로프 보타Roelof Botha를 설득한 것이었다.

그 후 알리프컴의 성공으로 자신감을 얻은 라만은 고속 성장 중이던 실리콘밸리의 선도적 인물로 빠르게 자리매김해나갔다. 그는 화학 물질 정제 공장 설계엔지니어인 인도인 아버지와 파키스탄인 물리학자 어머니의 둘째 아들로 태어나 캘리포니아 남부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아버지의 해외 프로젝트에 동행하고, 고향 인도를 떠난 여러 친척을 방문하면서 라만은 어린 나이에 넓은 세계를 경험할 수 있었다. 그는 “홍콩 공항이 시내에 있던 시절, 내가 탄 비행기가 도시 한복판으로 착륙했던 기억이 난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라만은 캘리포니아 주 클레어몬트 Claremont에 위치한 웹 기숙학교(Webb boarding school)를 졸업한 후스탠퍼드에 입학했다. 래리 페이지 LarryPage와 세르게이 브린 Sergey Brin이 컴퓨터 공학과 조교였고, 위스콘신 주에서 머리사 메이어 Marissa Mayer라는 신입생이 갓 도착했을 때였다. 라만과 같은 신입생 기숙사에 있던 메이어는 현재 조본의 이사직을 맡고 있다.

이런 인연과 뛰어난 사교성(주먹 인사가 일반적인 실리콘밸리에서 그는 포옹으로 인사를 한다) 덕분에 라만은 업계의 유명인사가 되었다. 클라우드 저장 서비스 업체 드롭박스 Dropbox의 CEO 드루 휴스턴 Drew Houston도 라만에 대해 “새로운 제품군을 만들어내는 능력을 수차례 사업 혁신으로 이끌어낸 것이야말로 업계가 그를 존경하는 이유”라고 말했다.

하지만 IT 관련이든 아니든, 조본을 가로막는 장애물들은 계속 나타났다. 도로주행 시핸즈프리만 허용하는 새 법규는 조본—2008년 블루투스 헤드셋 신제품을 출시한 후 기업명을 바꾸었다—에는 축복이었다. 그러나 그로 인해 자동차 제조업체들이 차내에 탑재된 블루투스 기능을 향상하기 시작했다. 금융위기로 인해 조본도 여느 기업 못지않게 큰 타격을 입었다. 2009년에는 매출이 크게 급감하면서 기업공개를 예상하기도 힘들어졌다.

그럼에도 조본의 디자인 팀과 연구진은 새로운 제품을 준비하고 있었다. 2010년 조본은 무선 스피커 잼박스 Jambox의 출시로 새로운 시장을 창출해냈다. 헤드셋과 스피커 제품의 크기와 색깔도 다양화했다. 2011년에는 운동량 측정기인 UP을 출시했고, 또 한 번 언론의 찬사를 받았다. 운동 및 수면량을 측정할수 있는 UP은 소비자의 상상력까지 사로잡았다. ‘웰빙’이 점차 조본의 핵심 가치로 자리 잡아 나갔다.

그러나 이번에도 성공은 위기로 이어졌다. 생산과정의 문제로 UP 기능에 이상이 발생하자, 조본은 정상 제품을 구매한 소비자라도 원한다면 전액 환불을 해주겠다고 약속했다. 2012년 운동량 측정기 시장에서 사실상 낙오된 조본은 생산 라인을 재정비하고 재도약을 위해 자금을 추가 조달했다.

그러나 시장에 복귀한 후에도, 조본 제품의 신뢰도는 높아지지 않았다. 고무밴드 전체에 전선을 감아 놓은 과감한 디자인 탓도 있었다. 고무 밴드가 접히면서 전선이 접혀 끊어졌다. UP의 구매자 중 상당수가 보증 기간이 남은 제품을 교환 신청하기 시작했다. 조본이 포춘에 제공한 시제품도 예외는 아니었다. 사용 몇 주 후 충전 기능이 멈췄고, 결국 망가진 시계들과 함께 서랍에 처박히는 신세가 되었다.

제임스 박 James Park과 에릭 프리드먼 Eric Friedman이 피트비트를 창업했을 때도 성공을 예견할만한 요소는 없었다. 포춘과 만난 날, 후드티 차림의 제임스 박은 조용한 말투로 “당시에는 둘 다 하드웨어에 대한 지식이 전무했다”고 말했다. 그는 하버드대 컴퓨터공학과를 중퇴했다. 이후 한동안 모건 스탠리 MorganStanley에서 일하다가 창업에 한 번 실패했다.두 번째로 창업한 기업은 전자제품 리뷰 전문사이트 시네트 CNET에 매각됐다. 매각액도 외부에 떠벌리고 다닐 만큼 높지 않았다.

박은 게임광이었다. 2006년에는 닌텐도위 Nintendo Wii 게임기를 제일 먼저 사려고 베스트 바이 Best Buy 매장 밖에서 기다리기도 했다. 그와 프리드먼이 위에 빠진 이유는 그야말로 컴퓨터 공학도다웠다. 위에 내장된 센서(정확히는 가속도센서)의 가격이 낮아지고 성능은 높아져, 마침내 일반 소비자용 제품에 장착할 수 있는 수준까지 도달해 있었다. 박은 “개인의 모든 운동을 측정해 줄 ‘마법 같은 기계’를 만들 수 있겠다는 생각에 빠져 있었다”고 당시를 회고했다.

조본의 창립 초기처럼, 피트비트의 두 창업자도 첫 2년간은 소수의 직원과 함께 고군분투했다. 이들은 제품을 제조해줄 회사와 신뢰를 쌓기 위해 몇 달간 아시아에 머무르기도 했다. 2009년 피트비트의 첫 운동량 측정기가 시장에 선보였다. 당시 회사가 확보한 투자금은 260만 달러였다. 5년이 흘러 피트비트는 지난해 북미 시장 점유율 68%를 기록하는 등 업계 1위로 올라섰다. 또 올해 안에 상장을 통해 주식을 매각할 것이라 관측되고 있다.

피트비트는 현재까지 6,600만 달러의 투자금을 확보했는데, 대중에게 인지도가 있는 벤처 투자자는 참여하지 않았다. 제임스 박은 “우리보다 열 배 더 많은 자금을 확보한 기업들도 있다”고 말했다.

투자자 유치의 효율성 외에도 피트비트와 조본의 차이는 확연하게 나타나고 있다. 피트비트의 본사는 샌프란시스코 번화가의 소박한 건물에 있다. 제임스 박 또한 본사 분위기처럼 겸손한 인물이다. 피트비트의 초기 제품은 팔찌가 아닌 클립 형태였는데, 브래지어에 착용할 수 있다는 이유로 여성들의 사랑을 한몸에 받았다.

피트비트의 초기 매출은 대부분 자체 온라인 쇼핑몰에서 발생했다. 이후 빠른 속도로 생산 라인을 확장했다. 제임스 박은 “우리는 초기부터 ‘만병통치약은 없다’는 관점 아래 다양한 제품을 시도하는 전략을 취했다”며 “첫 창업에서 파산했던 경험 때문에 함부로 지출을 늘리지 않으려고도 노력을 기울여왔다”고 밝혔다. 그럼에도 피트비트는 연말 성수기 내내 근사한 TV 광고를 방영하고 여러 기업과 제휴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등 공격적인 마케팅 행보를 보이고 있다.

피트비트가 걸어온 길이 늘 순탄하지는 않았다. 지난해에는 한 인기 제품이 일부 소비자에게 알레르기를 유발한다고 밝혀져 큰 비용을 들여 리콜을 진행했다. 하지만 피트비트는그 외에도 (인터넷 연동 체중계인 아리아 Aria등) 다양한 제품을 갖추고 있다. 이를 통해 리콜 사태의 여파에서 빠르게 회복하며 시장점유율에서도 조본을 상당히 앞서 나갈 수 있었다. 조본과 마찬가지로, 피트비트도 지난가을 신제품을 발표했다. 주력 운동량 측정기 모델에 심박수 측정 기능이 추가된 제품과 애플 워치를 겨냥한 스마트 워치였다. 두 신제품은 크리스마스 시즌에 맞춰 출시되지는 못했다. 하지만 조본과 달리 처음부터 출시 일정이 그 이후로 잡혀 있었다.

조본이 맞서야 할 적은 피트비트뿐만이 아니다. 무선 헤드셋이 일상용품의 영역에 들면서 조본은 경쟁력을 상실했다. 스피커 시장에 혜성처럼 등장해 시장을 장악한 조본에 자극을 받아 기존의 강자 보스 Bose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보스는 대규모 투자를 통해 시장에서 선두 자리를 되찾았다. 현재 미국 시장에서 조본의 점유율은 5%까지 추락했다. 일각에선 조본이 건강과 관련 없는 제품군을 포기할 것이라 예상한다.

조본 회장직을 여전히 맡고 있는 어셀리는 실제로 그렇게 될 경우 고통스럽지만 신중한 결정을 내리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지난 한 해를 통해 우리가 궁극적으로 추구해야 할 가치가 웰빙이라는 결론에 이르렀다”며 “오디오는 훌륭한 시장이며 조본의 오디오 제품, 특히 잼박스는 경쟁력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전체 시장 규모가 그리 크지않다”고 평가했다.

조본은 그간 수차례 부침에도, IT 기업들이 ‘중심’으로 꼽는 흐름의 한가운데에 있었다. 조본은 UP의 사용 경험을 좀 더 환상적이고 기능적으로 만들어 줄 앱 개발을 위해 엄청난 수의 소프트웨어 엔지니어와 데이터 과학자를 영입했다. 라만은 UP에 대해 “각종 상황에 24시간 함께하는 기계(24-hour contextengine)”라고 주장했다. 사용자가 UP과 “함께 하는” 시간은 23시간인 반면, 페이스북은단 15분이라는 논리였다(그러나 페이스북은이 짧은 시간을 활용해 지난해 120억 달러가넘는 매출을 기록했다).

지금까지의 결과는 괄목할 만하다. 조본 앱을 위해 개발된 새로운 콘텐츠는 기발한 방식으로 사용자의 식습관 개선, 운동량 증대, 수면의 질 개선을 유도하고 있다. 이 콘텐츠는대형 브랜드들이 조본 제품을 활발하게 이용하는 소비자들(라만에 의하면 수백만 명에 달한다)에게 접근할 수 있는 발판이 될 수도 있다. 식품회사 퀘이커 오츠 Quaker Oats와 화장품 브랜드 랩 시리즈 Lab Series는 조본 앱에 자사 메시지를 싣기 위해 광고비를 지불했는데, 라만은 이를 광고가 아닌 ‘브랜드 활성화’라고불렀다. 그는 “하드웨어는 소비자를 확보하기 위한 발판이라고 생각한다”며 “페이스북과 유사한 느낌일 것”이라고 설명했다.

라만은 이 비전이 “아직 초기 단계이지만 매력적”이라고 평가했다. 적극 동참하는 소비자들로부터 수집된 정보는 분명 조본에게 매우 가치 있는 데이터가 될 것이다. 라만은 조본의 매출에서 하드웨어와 서비스가 각각 5대5 비중을 차지하기를 원하고 있다. 그는 ‘학습형’ 온도계 네스트 Nest를 30억 달러에 구글에 매각한 토니 퍼델 Tony Fadell에게 “네스트는 사용자가 지금 추운지 더운지 모르지만, 나는 알게 될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하지만 조본의 하드웨어 제품 속 콘텐츠를 통한 수익 창출은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 같은 딜레마로 귀결되고 있다. 현재 조본은 비상장 기업으로서 구체적인 재무 정보를 공개하지 않고 있지만, 하드웨어 사업에선 수익을 내지 못하고 있다. ‘브랜드 활성화’도 아직 걸음마 단계다. 한 전문가는 “면도기와 면도날을 팔려고 하는데 면도기는 적자만 내고, 날은 아직 있지도 않은 상황”이라고 지금의 상황을 설명했다.

이 같은 사업을 운영하는 데 따르는 문제점들은 결코 녹록지 않다. 조본은 2014년 초 리즈비 트래버스 Rizvi Traverse라는 잘 알려지지 않은 업체—트위터에 묶음 투자(bundleinvesting)를 한 바 있다—와 관련 있는 투자자들과 2억 5,000만 달러 규모의 투자에 합의한 바 있다. 그러나 약속된 금액 일부는 투자되지 않았다(양측 모두 이유를 밝히길 거절했다). 이로써 라만은 투자 유치를 위해 다시 한 번 고군분투해야 하는 처지에 몰렸다.

지난해 8월, 유명 OEM 업체 플렉스트로닉스 Flextronics가 계약 위반을 이유로 조본을 제소했다. 당시 플렉스트로닉스는 조본의 재무 상황이 ‘위험한 수준’에 이르러 2,000만 달러를지불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소송은 이후 합의로 끝났으며, 플렉스트로닉스는 포춘의 입장표명 요청을 거절했다. 조본 관계자는 소송이 빠르게 종결됐다는 점을 들며 “사업 파트너간의 오해에 불과했다”고 상황을 해명했다. 그러나 구체적으로 설명하지는 않았다.

힘든 한 해 중에서도 최악의 순간은 12에 찾아왔다. 당초 11월 발표와 달리, UP3의 연내 발송이 불가능해진 것이었다. 조본은 예약 고객에 대한 보상으로 UP3의 가격 180달러 중 40달러를 할인해 줬다. 때문에 신제품의 수익성이 실제 출시되기도 전에 악화했다. 라만은 “마무리 과정상의 문제” 때문에 늦어졌다고 밝혔지만, 그래도 왜 당초 연내 배송이 가능하다고 약속했느냐는 의문은 여전히 남는다. 라만은 “준비가 끝났다고 생각했다”고 해명했다. 조본의 팬과 투자자들 모두가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는 건 회사 측도 충분히 인식하고 있다. 어셀리는 자신의 회사가 “멋진 제품을 만드는 기업을 넘어, 일반적인 의미에서 예측 가능하고 건강한 사업을 운영하는 기업으로 거듭나길 소망한다”고 말했다.

라만은 조본의 최신 전략을 조금 더 웅대한 방식으로 표현했다. 그는 “지금 조본은 미(美)의 교차점에 서 있다”고 주장했다. “사람들이조본에서 만든 아름다운 물건으로부터 느끼는 감정은 할아버지가 물려준 오래된 시계에서 느끼는 감정과 비슷하다. 혹은 나를 나답거나 더 아름답게 만들어 준다고 여기는 장신구와의 관계와도 유사하다. 우리의 사명은 소비자의 삶을 개선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모바일 기기로부터 벗어나 미디어를 더욱 현명하게 소비하는 능력 계발, 자기 자신의 발견, 모든 데이터를 이용해 삶의 질을 개선하는 능력 증진 같은 다양한 접근법이 가능하다.” 가슴 벅찬 비전임에는 틀림없다. 이제는 이를 구현할 때가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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