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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소로 움직이는 선박·트랙터…현대차, 연료전지 개발 팔걷는다
산업 기업 2025.12.03 10:06:40현대자동차가 수소연료전지의 적용 대상을 승용·상용차를 넘어 해양 모빌리티·대형 물류 영역까지로 확장한다. 친환경 선박·트랙터에 탑재할 수소연료전지를 개발해 글로벌 탄소 중립과 수소 사회 전환을 앞당긴다는 구상이다. 현대차(005380)는 2일 서울 여의도 콘래드 호텔에서 HD한국조선해양(009540)·부산대와 ‘선박용 수소연료전지 개발·상용화를 위한 다자간 업무협약(MOU)’을 체결했다고 3일 밝혔다. 현대차는 넥쏘·일렉시티 수소전기버스 등 수소 모빌리티 양산으로 검증된 연료전지 기술을 기반으로 선박용 수소연료전지를 개발한다. 이는 수소와 디젤 연료를 혼합해 연소하는 수소 혼소 디젤 엔진과 함께 직결된 모터·프로펠러에 동력을 전달해 선박을 가동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현대차는 액화수소운반선 등 친환경 선박용으로 맞춤 개발한 수소연료전지를 공급하는 역할을 맡는다. HD한국조선해양은 현대차의 수소연료전지와 수소 혼소 디젤 엔진로 구성된 전기 추진 시스템의 통합 설계를 담당할 예정이다. 부산대는 HD한국조선해양이 설계한 시스템에 대한 평가와 실증을 진행한다. 현대차와 HD한국조선해양은 이번 협력에 대해 차세대 친환경 선박 시장을 선점할 마중물이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최근 국제해사기구(IMO)가 2050년 탄소중립 달성을 목표로 선박 온실가스 배출 규제를 강화하면서 수소·액화천연가스(LNG) 등 저탄소 연료 선박에 대한 수요가 크게 증가했기 때문이다. 현대차는 실증 과정을 거쳐 글로벌 선사를 대상으로 연료전지 공급 확대를 모색한다. 켄 라미레즈 현대차HMG에너지&수소사업본부 부사장은 “이번 협력은 탄소중립 실현과 지속가능한 글로벌 해양 산업 확대를 위해 중요한 첫 발걸음”이라며 "현대차의 수소연료전지 기술, HD한국조선해양의 조선·해양 전문성, 부산대의 연구 역량이 결합해 미래 해양 모빌리티의 새로운 표준을 제시할 것”이라고 말했다. 현대차는 같은 날 울산 태화강 국가정원 남구둔치에서 울산시·국내 주요 물류사들과 함께 ‘수소전기 트랙터 실주행 실증’과 관련한 MOU를 체결했다. 이번 사업은 울산항 인근을 오가는 디젤 트럭을 수소전기 트랙터로 대체하는 것으로 실제 화물 운송 노선에 수소전기 트랙터를 투입하는 최초의 민관 협력 사례다. 현대차는 국내 운행 환경·법규에 맞춰 수소전기 트랙터를 새롭게 개발했다. 188㎾급 수소연료전지 2개와 최대출력 350㎾급 구동모터를 장착했다. 68㎏(700bar) 용량의 수소탱크를 탑재해 1회 충전 시 약 760㎞를 달릴 수 있다. 현대차는 차량 개발 및 공급을, 울산시는 사업 운영과 비용 지원을 맡는다. 현대글로비스(086280)·롯데글로벌로지스·CJ대한통운(000120) 등 물류사는 실제 운행과 데이터 제공을 담당한다. 김동욱 현대차 전략기획실장 부사장은 “트랙터는 친환경차 전환 난이도가 가장 높은 차량”이라며 “실증 결과를 토대로 수소전기 대형 화물차의 양산과 보급을 본격화해 글로벌 친환경 물류 시장을 선도할 것”이라고 말했다. 현대차는 현대차그룹 수소 브랜드 ‘HTWO’를 통해 수소 생산·저장·운송 등 모든 단계에서 고객 맞춤형 솔루션을 제공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지난해에는 현대모비스의 국내 수소연료전지 사업을 인수해 기술력과 자원을 결집했다. 2027년 울산 수소연료전지 신공장 가동을 목표로 현재 공사를 진행하고 있다. -
육상풍력 10년내 10GW 추가…국산 터빈 300개 공급
경제·금융 경제동향 2025.12.03 09:36:14정부가 2035년까지 설비용량 10기가와트(GW) 규모의 육상 풍력발전소를 추가로 보급하겠다고 밝혔다. 대규모 입찰과 계획입지 조성을 통해 킬로와트시(kWh)당 170원이 넘는 육상풍력의 발전 단가는 150원 이내로 낮추겠다는 방침이다. 국내 공급망 확보 차원에서 2030년까지 국내산 터빈도 300개 이상 공급할 계획이다. 기후에너지환경부는 3일 서울 영등포구 전력기반센터에서 ‘육상풍력 범정부 보급 가속 전담반’ 첫 회의를 열고 이같은 내용이 담긴 ‘육상풍력 발전 활성화 전략’을 발표했다. 현재 2GW 수준에 불과한 육상풍력 누적 보급 용량을 2030년에 6GW, 2035년에 12GW로 늘리겠다는 것이 핵심이다. 이를 달성하기 위한 구체적인 입찰 계획이 담긴 로드맵은 내년 상반기 중 공개할 예정이다. 정부는 대규모 계획입지를 직접 발굴하겠다는 계획도 내놨다. 정부가 직접 발전소 입지를 조성할 경우 인허가 과정에서 발생하는 불필요한 행정 소요 최소화로 건설 단가를 낮출 수 있는데 이를 통해 다른 발전원에 비해 비싼 육상풍력의 발전 단가를 낮추겠다는 구상이다. 구체적으로 지난해 기준 kWh당 172.1원이던 한국 육상풍력 균등화 발전비용(LCOE)을 150원 이내로 낮추는 것이 목표다. 정부의 첫 계획입지 사업은 최근 대규모 산불 피해를 입은 경북 영덕·영양군 일대가 될 예정이다. 이들 지역에 2027년부터 약 100메가와트(MW) 규모의 육상풍력 발전소를 만든다는 이야기다. 해상풍력과 같이 육상풍력에서도 공급망 생태계 확보를 위해 공공주도형 경쟁입찰이 도입될 것으로 보인다. 이를 통해 2030년까지 국내선 터빈을 300개 추가 보급하겠다는 방침이다. 통상 육상풍력 발전소 터빈의 개당 설비용량이 통상 5MW라는 점을 고려하면 최소한 향후 5년 내 보급 목표치의 37.5%는 국산 터빈으로 만들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이외에도 기후부는 육상풍력 보급 확대를 위해 기존에는 해상풍력 프로젝트에만 지원하던 정부 보증을 육상풍력에도 제공하고 보증 규모를 프로젝트파이낸싱(PF) 대출 금액의 70%까지 확대하는 방안을 검토한다. 또 지방자치단체별로 상이한 임도·이격거리 규제를 일원화하고 지역주민 참여형 바람소득 마을 모델도 적극 확산한다. -
4억 빠진 '올파포' 전용 84㎡… 갭투자 막히니 집값 '뚝'
부동산 분양 2025.12.03 07:50:006·27 가계 대출 규제 정책 시행에도 불구하고 고공 행진하던 마포·성동·강동 등 서울 한강 벨트 지역 아파트 시장에서 매매가격이 하락한 거래가 증가하고 있다. 서울 전역을 투기과열지구 및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묶은 ‘10·15 주택 안정화 대책’ 이후 세입자를 끼고 매수하는 ‘갭투자’가 막히면서 급등한 상승분을 반납하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또 매매가격 15억 원과 25억 원 초과 아파트에 대한 주택담보대출 한도가 크게 낮아지면서 자금 조달 여력이 줄어든 탓에 매수세가 꺾이고 거래도 주춤한 상황이다. 2일 국토교통부 실거래가 공개시스템에 따르면 서울 마포구 염리동 마포자이더센트리지 전용 84㎡는 지난달 21일 21억 9500만 원에 거래됐다. 10·15 규제 전인 10월 11일에 24억 원에 거래됐던 것과 비교하면 2억 원 넘게 가격이 하락했다. 올해 9월 27억 원 신고가를 기록했던 마포구 아현동 마포래미안푸르지오 전용 84㎡도 토허구역 시행 직전일인 10월 19일에 1억 3000만 원 하락한 25억 7000만 원에 거래가 이뤄졌다. 아현동 A중개업소 대표는 “마포도 10월 20일부터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묶이면서 갭투자가 확 줄었다”며 “대출 한도가 줄어든 상황에 세입자 보증금도 활용을 못 하게 되면서 거래 자체가 어려워졌고 매수세가 끊겼다”고 전했다. 이어 “토허구역 지정 전날에는 매수자를 놓칠까 봐 집주인들이 일부 가격을 조정해 직전 거래가보다 낮은 가격에 계약이 이뤄졌다”고 설명했다. 성동구에서도 비슷한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수요가 몰리며 지역 내 아파트 시세를 이끌던 인기 단지들의 실거래가는 물론 매도 호가도 낮아졌다. 성동구 옥수동 래미안옥수리버젠 전용 84㎡는 규제 직전 30억 원에 계약이 체결됐지만 규제 직후인 18일에 27억 8000만 원에 거래돼 2억 2000만 원이나 하락했다. 옥수파크힐스 전용 84㎡도 같은 날 25억 2500만 원에 거래되며 직전 거래가격보다 1억 5000만 원 낮아졌다. 옥수동 B중개업소 대표는 “성동구의 한강변 단지로 매수자들이 몰려들었다가 규제 직후 대출 한도 축소로 대기자들이 자취를 감췄다”며 “대출 규제와 토허구역 지정 등으로 당분간 매수세가 돌아올 가능성은 크지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는 규제 이후 시장에서 사정이 생긴 급매물들이 소화되며 하락 거래가 나타나는 것으로 해석된다. 박원갑 KB국민은행 부동산수석위원은 “시세는 느리게 움직이는 평균값이지만 가격의 방향을 바꾸는 것은 개별 매물”이라며 “10·15 규제로 아파트 거래가 위축된 상황에 급매 거래 성사가 하나둘 늘어나면 반전 신호를 만드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토허구역 확대로 실거주 의무가 적용돼 ‘거래회전율’이 떨어질 수밖에 없는 구조여서 급매물의 가격 변동성이 크다”고 덧붙였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올해 8월 서울 비규제지역에서 갭투자 비중은 32.7%로 매매거래 3건 중 1건이 갭투자인 것으로 집계됐다. 강남 3구(강남·서초·송파구)에 인접해 있지만 토허구역으로 묶이지 않아 비규제 지역 풍선효과를 톡톡히 봤던 강동구도 규제 이후 투자 메리트가 사라지며 하락 거래가 나오고 있다. 규제 전 32억 5000만 원에 거래됐던 강동구 둔촌동 올림픽파크포레온 전용 84㎡는 규제 후 고층 매물이 28억 5000만 원에 계약이 이뤄지며 무려 4억 원이 하락했다. 고덕동 고덕아르테온 전용 84㎡ 역시 규제 후에 규제 전보다 1억 8000만 원 하락한 20억 7000만 원에 거래가 성사됐다. 전문가들은 내년 5월로 종료가 예정된 다주택자 양도세 중과 유예 변수가 주택 시장 가격의 하락 전환을 유도하는 변곡점으로 작용할 것으로 분석했다. 중과세 부활이 결정되면 다주택자는 유예 기간이 끝나기 전에 시장에 매물을 내놓아야 하고, 지금처럼 거래가 쉽지 않을 때 가격을 낮춘 급매로 계약이 체결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장소희 신한 프리미어 패스파인더 부동산 전문위원은 “현재 체결되는 급매 계약은 다주택자의 매물일 가능성이 높다”며 “내년 말까지 토허구역이 유지되기 때문에 양도세 중과 유예 기한 전에 임차인의 계약 만료에 맞춰 매도해야 하는 상황이다 보니 조건만 맞으면 가격을 조정해서라도 계약을 성사시키고 있는 셈”이라고 분석했다. -
서울 오피스 임대료 떨어지나…“5년 뒤 종로 일대 공실률 10% 넘을 수도”
부동산 정책·제도 2025.12.03 07:20:00종로를 비롯한 서울 도심업무지구(CBD)의 오피스 공실률이 5년 뒤 10%를 넘을 수 있다는 전망이 나왔다. 공급 과잉이 예상되는 데다 임차 수요마저 떨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알스퀘어는 2일 서울 중구 더 플라자 호텔에서 ‘알스퀘어 애널리틱스(RA) 출시 1주년 간담회’를 열고 이 같은 내용을 포함한 ‘2025~2026 부동산 시장 종합 분석 보고서’를 발표했다. 류강민 알스퀘어 리서치센터장은 CBD 오피스의 공실률이 올 3분기 4.4%에서 2031년 두 자릿수로 치솟을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했다. 배경에는 급증하는 공급이 있다. 올해부터 2031년까지 서울과 분당에 약 760만㎡의 오피스가 생길 예정이다. 이는 판교테크노밸리 개발 등으로 오피스가 빠르게 늘어나던 2009~2014년 공급량(797만㎡)과 엇비슷한 규모다. 특히 CBD에만 전체 공급 물량의 절반에 가까운 300만㎡가 집중된다. 종묘 앞 세운지구 등 전면적인 도심 재개발이 추진·진행되는 데 따른 여파로 분석된다. 통상 대규모 신규 공급은 2년 시차를 두고 공실률 상승을 이끈다. 게다가 올해 서울 오피스 시장은 신규 공급이 많지 않았는데도 공실이 늘어나는 등 수요가 감소하는 징후가 뚜렷했다. 경기 둔화로 다수의 벤처·스타트업이 사업장을 서울 외곽으로 면적을 줄여 이동한 영향으로 풀이된다. 류 센터장은 “대형 신규 공급이 집중된 CBD 권역은 임대인이 실질 임대료 인하 없이 현 조건을 고수할 경우, 공실률이 일시적으로 두 자릿수까지 높아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강남업무지구(GBD)와 여의도업무지구(YBD)의 2031년 오피스 공실률은 각각 6%, 3%로 예상했다. 서울 전체 기준 공실률은 6.5%에 달할 것으로 전망했다. 주택시장 부문에서 내년 전월세 가격은 더 오를 전망이다. 10·15 부동산 대책으로 임대 물건이 줄며 임대료 상승 압력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개인 임대인이 전체 임대 주택의 85%를 소유한 점도 우리나라 주택 임대시장의 불안정성을 키우는 요인으로 지적됐다. 정부의 세금·대출 정책, 금리 등에 계약조건이 크게 달라지기 때문이다. 반면 데이터센터 부문은 안정적인 성장을 이어갈 전망이다. 인공지능(AI)·클라우드 성장으로 늘어나는 수요를 전력·인허가·환경 규제로 제약받는 공급이 따라갈 수 없기 때문이다. 물류센터는 택배 물량이 꾸준히 증가하면서 입지에 따라 공실률이 점진적으로 개선될 전망이다. 다만 입지 경쟁이 심화되면서 지역별로는 공실률 흐름이 엇갈리는 양상이 이어질 가능성도 남아 있다. -
대자연의 여유·풍성한 볼거리 공존…'머물고픈' 강원랜드 만든다
산업 기업 2025.12.03 06:20:00도착하자마자 달라진 공기를 실감했다. 강원도 정선 고원에 올라선 버스 창밖으로는 이미 늦가을을 건너뛴 초겨울이 번져 있었다. 회색빛을 머금은 능선 사이로 하이원리조트 단지가 모습을 드러내자 한때 탄광이 있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만큼 풍경은 완전히 달라졌다. 우선 리조트 밖, 과거 탄광의 흔적부터 찾아갔다. 목적지는 탄광문화공원 예정지 ‘M650’ 부근. 강원랜드가 옛 동원탄좌 사북광업소 부지를 매입해 리모델링 중인 공간이다. 아직 공사 펜스와 오래된 구조물이 뒤섞여 있어 과거와 현재가 동시에 겹쳐져 보였다. 강원랜드는 탄광 갱도와 설비를 보존·복원해 산업 유산을 전시와 교육·공연이 결합된 문화 공간으로 바꾸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폐광 지역의 자부심을 되찾는 거점으로 만들겠다”는 설명은 카지노 수익을 기반으로 한 개발을 넘어 지역의 ‘다음 100년’을 고민해야 하는 과제임을 보여준다. 탄광의 시간을 뒤로하고 리조트 중심부로 들어서자 분위기가 달라진다. 리조트 단지를 가로질러 한옥 베이커리 카페 ‘운암정’에 들어서자 조용한 마당과 기와지붕이 시야를 채운다. 담장을 넘은 차가운 공기가 마당 한가운데 서 있는 나무와 눈발 사이로 흩어졌다. TV 예능 프로그램과 드라마에 여러 차례 등장해 익숙한 공간이지만 실제로 마주한 운암정은 화면보다 훨씬 차분하다. 한옥 마루에 앉아 따뜻한 차와 디저트를 앞에 두고 있으니 “여기가 카지노 리조트가 맞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운암정의 디저트 세트는 ‘강원도’를 한 상에 올려놓은 구성이었다. 수리취와 산죽, 정선 사과를 활용한 다과와 구움 디저트가 한 접시에 올라오고 곁에는 한방 차가 따라 나온다. ‘인스타그램 감성’이라는 말처럼 강원랜드가 내세우는 K디저트와 한옥 공간의 조합은 분명 과거 카지노 중심의 이미지와는 달랐다. 한옥 마당을 나와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면 실내 웰니스 공간과 마주하게 된다. 하이원 그랜드호텔 7층 ‘밸런스 케어존’은 유리창 너머로 백두대간 능선이 펼쳐진다. 요가 매트가 가지런히 놓인 스튜디오에서 진행된 사운드 테라피와 명상 프로그램은 ‘리조트=놀이터’라는 익숙한 공식보다 ‘리조트=재충전’에 가깝다. 강사의 안내에 따라 싱잉볼 소리를 들으며 호흡을 고르고 잔에 담긴 위스키 향을 맡으며 몸의 긴장을 풀어내는 프로그램은 MZ세대 취향을 정면으로 겨냥한 콘텐츠다. 실내에서 몸을 풀었다면 이번에는 숲으로 향할 차례다. 리조트 맞은편 달팽이 숲길을 따라 오르자 작은 평지에 마련된 ‘네이처힐링 존’이 나타난다. 테이블 아래 줄지어 있는 조그만 족욕 욕조 앞에 앉아 따뜻한 물에 발을 담그니 고원의 찬 바람도 잊게 된다. 허브와 한약재 향이 섞인 김이 피어오르는 풍경은 이곳이 과거 석탄을 캐던 갱도가 즐비했던 자리였다는 사실을 떠올리게 했다. 해가 기울고 밤이 찾아오자 리조트 광장 곳곳에서는 공연과 미디어 쇼가 이어졌다. 가족 단위 방문객과 연인들, 카지노를 오가는 손님이 한데 섞여 불꽃과 조명을 바라보고 있었다. 한쪽에서는 족욕으로 몸을 데우고 다른 한쪽에서는 카지노 입구 미디어월 앞에서 퍼포먼스를 관람한다. ‘폐광지 카지노’라는 단일 정체성으로는 더 이상 설명하기 어려운 풍경이다. 리조트 컨벤션홀에서 열린 기자 간담회에서는 강원랜드의 ‘다음 10년’에 대한 이야기가 이어졌다. 최철규 강원랜드 대표이사 직무대행은 “현재 구조를 유지한다면 10년 뒤에도 강원랜드는 제자리일 것”이라며 2035년까지 약 3조 원을 투자하는 ‘K-HIT 마스터플랜’을 내놓았다. 카지노 중심 매출 구조를 웰니스·레포츠·엔터테인먼트가 결합된 ‘웰포테인먼트 복합리조트(IR)’로 전환하겠다는 선언이다. 계획의 핵심은 ‘체류형’ 소비 구조다. 길이 300m, 높이 80m 규모의 실내 ‘그랜드 돔’을 중심으로 K컬처 공연장, 미디어돔, 가족형 콘텐츠, 쇼핑·다이닝 시설을 한 축으로 묶고 주변에 호텔, 레포츠 시설을 확장해 ‘입장-게임-퇴장’이 아닌 ‘머무는 리조트’를 만들겠다는 구상이다. 강원랜드는 이를 통해 연간 방문객 1300만 명, 매출 3조 원대를 달성하고 비(非)카지노 매출 비중을 현재 20% 수준에서 40% 안팎으로 끌어올리는 목표를 제시했다. 경쟁 환경도 간담회의 주요 화두였다. 최 직무대행은 “2030년 완공 예정인 일본 오사카 복합 리조트는 한국에서 비행기로 1시간대 거리에 있는 초대형 IR로 우리가 머뭇거리면 국내 이용객이 해외로 빠져나간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우리가 지향하는 모델은 해외 IR을 그대로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탄광 문화유산, 산악 레포츠, 청정 자연을 묶은 ‘대체형 체류 리조트’”라고 강조했다. 해외로 나가는 레저 소비의 일부라도 국내로 되돌릴 수 있는 구조를 만드는 것이 현실적인 목표라는 설명이다. 과제는 규제와 투자 회수 구조다. 카지노 시간총량제, 베팅 한도, 영업시간 제한 등 기존 규제는 수익성의 발목을 잡고 있다. 최 직무대행은 “규제 완화 요구는 단순 매출 확대를 위한 게 아니라 대규모 투자에 대한 회수 구조를 정상화하기 위한 전제 조건”이라며 “한국형 IR을 국가전략산업으로 지정해 부처 간 조정이 가능하도록 해달라고 정부에 요청한 상태”라고 했다. -
3분기 시장금리 상승에…증권사 순이익, 2분기보다 12.6% 줄어
증권 정책 2025.12.03 06:00:003분기 국내 증권사들의 순이익이 증시 호황에도 불구하고 시중금리 상승에 직전 분기보다 큰 폭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3일 금융감독원이 발표한 ‘2025년 3분기 증권·선물회사 영업실적(잠정)’에 따르면 국내 60개 증권사의 3분기 순이익은 2조 4923억 원으로 집계됐다. 순이익은 전년 동기(1조 8109억 원)와 비교하면 37.6% 늘었지만 올 2분기(2조 8502억 원)와 비교하면 12.6% 줄어든 수치다. 이는 지난해보다 증시 상황이 개선됐음에도 불구하고 3분기 시장금리 상승 등으로 채권 관련 손익이 줄어든 영향이다. 구체적으로 주식·펀드·파생상품 관련 자기매매손익은 전분기(2415억 원) 대비 8864억 원 늘어난 1조 1279억 원을 기록했으나, 채권 부문은 전분기(3조 30억 원) 대비 6276억 원 줄어든 2조 3754억 원에 그쳤다. 앞서 국고채 3년물 금리는 미국 연방준비위원회의 금리 인하 속도 조절, 재정 확대에 대한 우려 등으로 7월 1일 연 2.454%에서 9월 30일 2.582%까지 올랐다. 또 원·달러 환율이 오름세를 보이며 3분기 외환 관련 손익은 전분기(7075억 원) 대비 무려 9179억 원 줄어든 -2104억 원으로 적자전환했다. 이에 따라 증권사 자기자본이익률도 전분기(3.1%) 대비 0.5%포인트 하락한 2.6%를 기록했다. 금감원 관계자는 “최근 주가 변동성 확대, 환율과 시장금리 상승 등으로 금융시장의 불확실성이 확대될 우려가 있다”며 “증권사의 건전성 추이를 모니터링하고 자본·유동성 규제 개선을 지속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한편, 3개 선물회사의 3분기 순이익은 230억 7000만 원으로 전분기(225억 3000만 원) 대비 2.4% 증가했다. 지난해 같은 기간과 비교하면 27.1% 늘었다. -
한국환경경영학회, 기업 지속가능 성장 위해 머리 맞대
산업 IT 2025.12.03 06:00:00한국환경경영학회가 지난달 28일 서울 중구 LW컨벤션센터에서 개최된 ‘한국환경경영학회 심포지엄 및 학술대회: 기후경영과 환경·사회·지배구조(ESG) 기후공시’에서 기후위기 시대에 기업이 나아가야 할 지속가능한 인권 경영의 정책 방향과 대안에 대해 심도 있는 논의를 진행했다고 3일 밝혔다. ‘기후경영과 인권’을 주제로 열린 특별세션에서 조효제 성공회대 명예교수는 “기업의 탄소 중심 경영을 인권 관점에서 근본적으로 재검토하고 새로운 체계를 모색하는 이번 포럼은 시의적절하다”며 기후위기가 더 이상 단순한 환경 문제가 아니라 인간의 존엄과 권리를 위협하는 상시적 위기로 전환됐음을 강조했다. 학계, 법조계, 정책 연구기관, 산업계, 언론계 전문가 100여 명이 참여한 이번 다학제의 장은 4명의 전문가 발제와 토론으로 구성됐다. 김태호 한국환경법학회 차기회장은 ‘기후위기로 인한 인권 침해와 국가책임’, 지현영 서울대 환경에너지법정책센터 변호사는 ‘기후위기와 기업의 인권존중책임’, 조영준 대한상공회의소 지속가능경영원장은 ‘기업의 지속가능 경영과 기후인권’, 송재령 국가녹색기술연구소 선임연구원은 ‘기후 인지 감수성과 기후 책무성 행동’을 주제로 발표했다. 최영묵 성공회대 부총장이 좌장을 맡아 이상수 서강대 교수, 이우진 과학기술정보통신부 과장, 주신영 법무법인 엘프스 파트너 변호사, 한민지 한국법제연구원 부연구위원이 국가 및 사회 전반에 걸친 기후 경영과 인권에 대해 토론했다. 학회는 이번 세션을 통해 과거 상충 관계로 인식되었던 기업 경영과 인권의 관계를 지속가능한 성장의 필수 요소로 재정립해야 한다는 데 의견을 모았다. 전문가들은 기업의 자발적 노력만으로는 한계가 있음을 지적하며 기후변화 대응을 기업의 비용으로 인식시키는 탄소세 도입과 같은 시장 구조 개편과 함께 공급망 실사법의 제도화 및 규범화를 통해 인권을 선언적 가치가 아닌 경영의 구속력 있는 규칙으로 확립해야 한다고 봤다. 기후 위기 대응이 장기적 투자이자 경쟁력이 될 수 있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탄소 배출량과 달리 측정과 정량화가 어려운 인권 요소가 기업 경영에서 상대적으로 소외되는 현실적 간극이 문제로 제기됐다. 이러한 간극을 극복하고 기업의 통합적 운영을 위해서는 정부의 유연한 인센티브 제도와 규제 병행은 물론 변화를 끌어내는 개인과 조직의 자발적인 의지와 감수성 함양이 중요하다고 결론지었다. 황용우 한국환경경영학회장은 “ESG 경영을 넘어 기후공시, 유럽연합(EU) 기업 지속가능성 실사지침(CSDDD), 탄소국경조정제도(CBAM) 등 환경, 인권, 공급망 전반을 하나의 실사 기준으로 연결하고 있고 이제 규범을 넘어 분쟁과 벌금 부과 가능성을 포함한 기업 생존의 문제로 확대되고 있다”며 “향후 학회 차원에서 ‘ESG 경영과 기후 인지 감수성’ 지표화 연구를 통해 발전시켜 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
[열린송현] '100년 만에 재설계' 美 증시서 배우자
오피니언 사외칼럼 2025.12.03 05:00:00미국 증권시장이 약 100년 만에 구조적 재설계에 들어섰다. 그 기점은 1938년 제정된 ‘말로니법’이다. 말로니법은 미국 장외시장 규제와 금융 업계 자율 규제의 근간을 마련했고 이듬해 전미증권업협회(NASD)가 출범했다. 1938년이 시장 규율의 방향성을 정립한 해였다면 지금은 논의의 초점이 규율·감독을 넘어 시장 운영의 기술·인프라 재설계 단계로 이동하고 있다는 점에서 변곡점이 되고 있다. 변화의 시작점은 결제 주기다. 미국은 지난해 5월부터 주식과 상장지수펀드(ETF) 등 대부분의 상품에 ‘T+1’ 결제를 도입했다. 이는 단순한 속도 개선을 넘어 증거금 부담을 낮추고 유동성·운용 효율을 높이는 구조적 효과를 낳았다. 뉴스 발생부터 거래·정산 사이클이 짧아지면서 시장 반응 속도가 더욱 빨라졌고 특히 아시아·유럽 투자자에게는 시차 부담이 완화된다는 측면에서 접근성이 크게 높아졌다. 나스닥은 올 9월 주식을 동일한 권리로 토큰화해 거래할 수 있도록 하는 규정변경안을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에 제출했다. 변경안에 따르면 토큰화 증권은 기존 주문·호가·감시·수수료 체계를 그대로 적용받으며 결제는 중앙청산기관(DTC) 인프라를 기반으로 T+1일 내에 처리된다. 시장 최선호 매수·매도 호가를 저해하지 않도록 동일한 리스크 관리·오류 정정 체계를 적용한다는 점에서 투자자 보호의 연속성을 우선시하고 있다는 점이 드러났다. 토큰형 주식이 기존 시장을 완전히 대체하기보다 국가시장제도(NMS)라는 기존 질서 내부로 편입되는 방향성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자산의 디지털화는 금융 유동성을 변화시킨다. 스테이블코인과 토큰화 머니마켓펀드(MMF)는 기관급 달러 유동성을 온체인에서 실시간 이동·담보화할 수 있는 수단으로 부상하고 있다. 블랙록의 미국 국채 토큰화 펀드 ‘비들’은 올해 3월 기준 운용 자산 10억 달러를 넘어섰고 프랭클린의 온체인 MMF 역시 확장세를 이어가고 있다. 전통 금융 인프라와 디지털자산 인프라가 연결되는 순간 콘텐츠 소비와 거래 체결, 자금 정산까지의 거리는 더욱 짧아지는 효과를 낸다. 이 같은 혁신은 한국에도 중요한 함의를 남긴다. 글로벌 시차 장벽이 낮아지고 결제 주기가 짧아진 환경에서는 토큰화 자산과 스테이블코인 기반 결제망을 활용해 사용자 시간대에 맞춘 거래와 동일 일자 정산, 보다 효율적인 자금 운용이 가능해진다. 국내에서도 한국은행이 블록체인 기반 금융 인프라의 필요성을 언급하며 원화 스테이블코인의 법제화를 검토하고 있다. 네이버·카카오 등 주요 빅테크 기업도 스테이블코인 전담 조직을 신설하는 등 제도·산업 측면의 준비가 함께 이뤄지고 있다. 다만 전환을 현실화하기 위해서는 추가적 과제가 존재한다. 블록체인에 기록된 소유 이력을 법적 권리와 동일하게 인정하는 제도적 기반, 퍼블릭 블록체인의 투명성과 투자자 프라이버시 보호의 균형, 토큰화된 증권을 사고팔 수 있는 충분한 시장 깊이와 안정적인 결제 인프라 확보가 핵심이다. 지난 100년간 시장 신뢰의 기반이 규율이었다면 앞으로는 사용성·연결성·실시간성과 같은 기술 기반 특성이 새로운 신뢰의 기준이 될 것이다. 이는 한국을 포함한 아시아 시장이 전략적으로 대비해야 할 방향을 시사한다. -
[사설] ‘12·3 비상계엄’ 1년…국민 통합과 미래 성장의 길로 가야
오피니언 사설 2025.12.03 00:05:00‘12·3 비상계엄’ 사태가 발생하고 꼭 1년이 흘렀다. 초겨울 한밤중에 국회로 달려간 시민들의 항거는 군홧발에 훼손된 헌정 질서를 가까스로 복원시켰고 윤석열 전 대통령은 탄핵·파면에 이어 내란 우두머리 혐의로 사법 심판을 받고 있다. 하지만 꽤나 오랜 시간이 지났음에도 정치권은 ‘내란 프레임’에서 좀처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오히려 정치 갈등을 재생산하며 국정을 정쟁의 늪으로 끌고 들어가는 모양새가 안타깝다. 계엄 당시 집권당이었던 국민의힘은 불법적 계엄에 대한 사과를 거부하고 있다. 대안 정당으로서의 야당 역할은 내팽개치고 일부 강성 지지층에만 기댄 채 사실상 ‘윤 어게인’ 구호만 외치고 있는 게 현실이다. 계엄 후 집권한 더불어민주당은 ‘내란 청산’ 깃발을 들고 개혁 드라이브를 걸고 있다. 그러나 내란전담재판부 설치, 법 왜곡죄 신설 등을 위한 입법 추진은 삼권분립이라는 민주주의 기본 틀을 훼손할 수 있다는 우려를 낳는다. 이런 상황에서 이재명 대통령은 2일 국무회의에서 “군사 쿠데타 등 국가 폭력 범죄는 나치 전범처럼 처벌해야 한다”고 말했다. 헌정 질서를 무너뜨린 불법행위에 대한 엄단은 당연하지만 이 대통령의 발언은 여당이 추진 중인 내란 관련 입법과 2차 특검, 내란·외환죄 처벌 강화 등과 맞물려 ‘내란 우려먹기’라는 의심을 사고 있다. 12·3 비상계엄 1년을 맞아 우리가 나아갈 길은 국민 통합과 미래 성장에 있다. 더욱이 지금은 나라 안팎의 경제 상황이 매우 좋지 않다. 잠재성장률은 1%대에 갇힐 만큼 구조적 저성장 국면에 들어섰다. 고환율과 고물가 압력이 지속되는 가운데 부동산 시장 불안, 미국과의 원자력협정·핵잠수함 추진, 관세 협상 등 굵직한 국익 현안도 줄줄이 대기하고 있다. 지금 정부가 할 일은 과도한 내란 몰이로 국론을 사분오열시키기보다 계엄 사태로 훼손된 투자 심리를 회복하고 적극적인 규제 완화로 고환율·저성장의 질곡을 해소하는 것이다. 더 나아가 이 대통령이 제시한 6대 구조 개혁(규제·금융·공공·연금·노동·교육)을 강하게 추진해 경제 체질을 바꾸는 데 총력을 기울여야 한다. 여야 정치권이 정쟁에서 벗어나 미래 성장과 국민 통합을 위해 합심해야 비로소 계엄 1년의 의미도 바로 설 수 있다. 특히 여당은 과거 문재인 정부 때 적폐 청산에 매달리다 개혁 동력을 잃은 점을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 -
[여명]환율? 정치인부터 각성해야
국제 국제일반 2025.12.02 22:39:12경제학자 조지프 슘페터는 생전에 정치인을 ‘나쁜 기수(騎手)’에 빗댔다. 정치인은 안장에 오래 앉아 있는 데만 몰두한 나머지, 자신이 어디로 가는 지조차 신경 쓰지 않는다고 꼬집었다. 한 마디로 정치인들은 정책을 제대로 만드는 것보다 권력 유지에 더 급급하다는 것이다. 최근 원·달러 환율 급등을 두고 벌어지는 일을 유심히 살펴보면 슘페터의 통찰이 가슴에 와닿는다. 12·3 계엄이 발생한 지 1년 만에 우리 경제는 충격에서 벗어나 빠르게 회복 중이다. 다만 원화 가치가 급속히 빠져 이젠 달러당 1500원 돌파가 불안할 지경까지 왔다. 문제는 달러화 인덱스가 최근 1년간 하락 추세를 보이는 와중에 원화가 가파른 미끄럼을 타고 있는 점이다. 실제 유로화만 해도 같은 기간 달러화 대비 강세를 보였다. 원화 하락이 달러 강세에 따른 증상이기보다 우리만의 특수한 구조적 변화에 기인한 결과물일 수 있다는 뜻이다. 원·달러 환율을 둘러싼 여건을 보면 뭐 하나 호락호락한 게 없다. 기업과 개인 모두 달러화를 신줏단지 모시듯 할 형편이다. 당장 기업만 해도 연간 최대 200억 달러씩, 총 2000억 달러를 미국에 들이부어야 한다. 조선업의 미국 투자까지 합치면 총 3500억 달러에 이른다. 기업 입장에서 보면 생존을 걸고 미국 투자에 나서는 판에 벌어 들인 달러를 원화로 바꿀 유인 자체가 낮다. 부동산이 막힌 개인도 마찬가지다. 압도적 장기 수익률, 인공지능(AI) 문명을 설계하는 빅테크 중심의 포트폴리오, 탄탄한 투자 대기 수요 등은 우리 증시와 비교 자체가 어렵다. 환전 업무를 빌미로 증권사를 단도리친다고, 국내 주식에 더 투자하라고 국민연금을 압박한다고 될 일이 아니다. 이재명 정부를 비롯해 정치인들이 정작 더 신경 써야 할 부분은 단기적으로 확장 재정을 경계하고 중장기적으로 한국에 투자하게끔 법과 규제 등을 정비하는 일이다. 일단 돈을 적재적소에 잘 써야 한다. ‘없는 돈’을 만들겠다며 정부의 빚문서 격인 국채 발행을 남발하고, ‘있는 돈’을 엉뚱한 곳에 뿌려서는 진짜 답이 없다. 최근 1년간 원화가 주요 통화 대비 모두 약세를 기록한 데는 유동성이 많이 풀린 게 결정타였다. 그런데도 내년도 예산안에서 적자국채 발행 규모는 110조 원에 이른다. 거대 여당이라면 책임감을 갖고 예산 집행에 더 예민해져야 한다. 단기 지원 위주의 각종 보조금, 지역 민원성 인프라 예산, 경기진작 효과보다 재정부담이 더 크다는 지역화폐·소비쿠폰 집행 등은 꼼꼼히 따질 필요가 있다. 자기 브랜드, 민원성 예산을 칼질하는 읍참마속없인 환율 쏠림을 되돌리기 어렵다. 선거를 핑계로 삼을 수는 없다. 기업에 대한 이재명 정부의 시각도 교정할 부분이 적지 않다. 겉만 번지르르한 립서비스보다 한국을 매력적인 투자처로 만드는 게 우선이다. 그러면 기업은 오지 말라 해도 온다. 그런데도 주 52시간, 노란봉투법, 자사주 의무소각, 법인세 및 전기료 인상 같은 규제가 한꺼번에 쏟아지니 기업으로선 고국을 등지지 않고는 버텨낼 재간이 없게 된다. 원화 가치 하락이 두려운 이유는 방치하면 수입물가 급등으로 인플레이션이 심각해지기 때문이다. 인플레이션은 결과적으로 근로소득의 값어치를 떨어뜨리고 자본소득의 가치는 키운다. 알토란 아파트에 달러 자산도 많은 부자들이야 돈을 더 벌겠지만, 유리 지갑이 대부분인 중산층과 서민은 인플레이션 증세에 고스란히 노출돼 세금만 더 내기 십상이다. 별다른 자산이 없는 청년층이 더 힘들어지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난마처럼 얽힌 환율 실타래를 풀기 위해선 방만하게, 느슨하게 운용됐던 돈줄부터 바짝 죄일 필요가 있다. 정치인들도 이런 문제를 모르지 않을 것이다. 진짜 위기는 다 알면서도 방관하는, 혹은 이게 위기라고 생각하지 않는 오만에서 비롯된다. 환율 잡기는 쉽지 않다. 그렇다고 난공불락의 난제도 아니다. 정부가 각자도생에 여념이 없는 개인과 기업에 영(令)이 서려면, 아니 조금이라도 설득하려면 솔선수범하는 모습부터 보여야 한다. -
‘시범사업만 37년 쳇바퀴’ 비대면진료 제도화 15년만에 결실
사회 사회일반 2025.12.02 22:33:31코로나19 팬데믹과 지난해 의정 갈등 때 시범 운영되며 의료공백을 메웠던 비대면진료가 마침내 제도권 안으로 들어온다. 1988년 원격 자문이란 용어로 시범사업을 시작했던 1988년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37년 만에 병원에 직접 가지 않고 진료를 받는 원격진료의 합법화가 이뤄지게 됐다. 그동안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주요 회원국 가운데 비대면진료가 법으로 정해지지 않은 국가는 한국 뿐이었다. 보건복지부는 2일 비대면진료의 법적 근거를 마련하는 내용의 의료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고 밝혔다. 이번 개정안은 국무회의 상정·의결을 거쳐 공포 후 1년 뒤부터 시행된다. 복지부는 이날 통과된 개정안이 의약계와 환자·소비자 단체, 전문가 등의 의견 수렴을 거쳐 여야 합의로 통과됐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고 평가했다. 대면진료와 재진 환자 중심, 의원급 의료기관 중심, 전담기관 금지 등 의료계와 합의한 4대 원칙과 기술 발전을 고려해 유연한 법 체계를 마련했다는 설명이다. 정안은 비대면진료는 대면진료의 보완적 수단이라는 점을 명시하고, 일정 기간 내에 동일한 증상으로 대면 진료를 받은 기록이 있는 환자에 대해 비대면 진료를 실시해야 한다.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환자 본인이 거주하는 지역 의료기관에서만 가능하도록 한정했다. 의원급 의료기관 중심으로 운영하되, 희귀질환자와 제1형 당뇨병 환자, 교정시설 수용자, 수술 후 경과 관찰이 필요한 환자 등 병원급 이상 의료기관 이용이 필요한 환자에 대해서는 예외를 뒀다. 희귀질환자, 제1형 당뇨병 환자 등에 대해서는 지역 제한도 적용되지 않는다. 전체 진료 중 비대면진료 건수가 차지하는 비율은최대 30%로 제한된다. 실제 환자를 일체 보지 않고 비대면진료만 전담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다. 또 초진 환자가 비대면으로 처방받는 약 종류와 수량은 물론, 약 배송 허용 범위도 섬·벽지 등 취약지 거주자, 거동불편자 등으로 제한했다. 약사법과 의료법상 대면 진료 및 조제 원칙을 유지하고 약물 오남용을 막아 안전성을 최대한 확보하려는 조치다. 십 수년간 원격의료 법제화를 반대해 온 대한의사협회도 이번 개정안에 대해서는 "의료계가 요구해온 원칙들이 상당 부분 반영됐다"며 긍정적인 평가를 내렸다. 비대면진료를 막는 규제를 풀기 위해 시범사업이 추진된 건 1988년부터다. 서울대병원이 한국통신(현 KT)의 도움을 받아 경기 연천군보건소의 엑스레이 판독을 도와주는 의사 간 원격자문 형태로 운영됐다. 의사가 취약지에 있는 환자 간 원격으로 소통하는 초기 단계의 비대면진료 모델이 구축된 건 1994년이었다. 이후 새 정부가 출범할 때마다 'U-헬스’, ‘E-헬스’ 등으로 용어를 바꿔가며 제도화를 위한 시범사업을 추진했고 국회에선 2010년 18대부터 관련 법이 발의됐지만 의사들의 반대에 막혀 15년간 단 한 건도 통과하지 못했다. 지지부진하던 비대면진료 제도화 논의가 급물살을 탄 건 코로나19 팬데믹을 거치면서다. 이후 약 5년 9개월간 시범사업으로 운영되면서 안정적 비대면진료 제공을 위한 법적 근거가 마련돼야 한다는 공감대가 이뤄졌다. 이번 22대 국회에서는 비대면진료 제도화를 위한 의료법 개정안 8건이 발의됐으며, 보건복지위원회에서 전자처방전 전달시스템 도입을 위한 의료법 개정안 1건까지 총 9건을 병합해 심의 후 대안을 마련해 지난달 20일 의결했다. 이후 법제사법위원회에서 일부 내용 및 체계·자구를 수정해 26일 의결됐다. 복지부는 법이 시행되기 전까지 시범사업 내용을 개편해 단계적으로 적용할 계획이다. 대상 환자의 기준, 지역 제한의 범위, 처방 제한 의약품의 종류 등 하위법령에서 규정할 구체적 사항은 의·약계, 환자·소비자 단체 등과 협의해 마련하고, 의료인과 환자 간 비대면진료 외에도 의료인 간 비대면협진 등 의료취약지 일차의료 강화 시범사업과 지역·필수·공공의료 강화를 위한 제도개선 방안 등도 논의한다. 정은경 복지부 장관은 “비대면진료 제도화를 위한 의료법 개정안이 국회 논의 시작 15년 만에 국회 본회의를 통과해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며 “의료의 질과 환자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고려하여 대안이 마련된 만큼, 법이 시행된 이후에도 국민들이 안전하고 편리하게 비대면진료를 이용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다만 일각에선 시범사업 때보다 규제 수준이 높아진 점을 들어 "법이 퇴보했다"고 비판한다. 정부는 코로나19 유행 당시 비대면진료 대상 등에 제한을 두지 않았다. 이후 코로나19 확산세가 잦아들자 원칙적으로 동네 병원이 재진 환자에 대해서만 비대면 진료를 하도록 규제를 강화했다가, 작년 3월 의대 증원에 반발한 전공의들이 대거 이탈하며 의료 공백 우려가 커지자 다시 전면 허용했다. 한편 이날 비대면진료 법안과 함께 국회 본회의 통과가 점쳐졌던 '닥터나우 방지법'(약사법 개정안)은 이날 안건 상정 자체가 불발됐다. 작년 3월 의약품 도매업체인 비진약품을 자회사로 설립하고 관련 사업을 운영해 온 플랫폼 업체 닥터나우를 겨냥해 발의된 이 법안은 비대면진료 플랫폼 업체의 의약품 도매상 운영을 전면 금지하는 것이 핵심이다. 닥터나우는 약배송이 금지된 가운데 비대면진료를 받은 환자들이 처방받은 의약품 보유 약국을 찾아다니는 ‘약국 뺑뺑이’를 줄이기 위해 제휴 약국에 의약품을 직접 공급하는 한편 실시간 의약품 재고를 파악해 공개해 왔다. 그런데 플랫폼이 의약품 유통에 직접 관여하면 특정 약국을 우대하거나 특정 제약사 제품 처방 및 판매를 독려하는 신종 리베이트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면서 플랫폼의 도매업 겸업을 원천적으로 막는 약사법 개정안이 발의된 것이다. 해당 법안이 국회 복지위에서 의결되자 닥터나우를 비롯한 스타트업 업계에선 '제2의 타다금지법'이라는 비판이 쏟아졌다. -
민노총·경실련 '쿠팡 사태' 질타…"최대 과징금 부과해야"
사회 사회일반 2025.12.02 18:21:42쿠팡에서 대규모 개인정보 유출 사태가 발생한 가운데 노동조합과 시민단체가 잇따라 책임자 처벌과 보안 강화 대책 마련을 촉구하고 나섰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은 2일 성명을 내고 “쿠팡의 3370만 명 개인정보 유출 사태는 우연이 아니다”며 “몇 년 동안 ‘전관 영입’에 집중하고 ‘노동 탄압’에 막대한 돈을 쏟아부은 결과”라고 말했다. 민주노총은 “쿠팡은 국회와 정부의 규제를 하기 위해 고위 공무원과 국회의원 보좌관을 잇달아 영입하고 노동 문제에 대한 소송 대응 조직을 확대해 왔다”며 “가장 기본적으로 해야 할 보안 인프라 구축과 개인정보 보호 체계 강화는 뒷순위로 밀렸다”고 꼬집었다. 이어 “지금이라도 전관 영입과 정치 대응을 위해 꾸린 조직과 예산이 어떻게 움직였는지 공개하고 개인정보 보호체계를 다시 구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날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도 성명을 통해 개인정보 유출 사태에 대해 “비용 절감을 앞세운 허술한 보안 관리와 경영실패의 결과”라고 비판했다. 경실련은 “유출 사고는 사생활 침해와 보이스피싱 등 2차 범죄로 이어질 수 있다”며 “그럼에도 정부와 국회는 대형 플랫폼이 독점한 방대한 데이터의 보안 의무를 강화하는 입법에 소극적이었다”고 지적했다. 경실련은 조사과정과 결과를 투명하게 공개하고 법이 허용하는 최대 수준의 과징금과 과태료를 쿠팡에 부과할 것을 촉구했다. 또 “대형 온라인 플랫폼 대상 상시 보안·감독 체계를 강화하고 이사회 내 개인정보 보안전담 위원회를 의무화해야 한다”고 밝혔다. △24시간 전담 상담창구 설치 △본인인증 수단 변경비용 부담 등 피해자 보호 조치와 집단 구제 절차를 강화해야 한다고도 덧붙였다. -
[기자의 눈] 메모리 슈퍼사이클이 끝나기 전에
경제·금융 경제동향 2025.12.02 18:11:38전 세계적인 인공지능(AI) 산업 열풍이 경제에 불어닥친 한파를 그나마 녹이고 있다. 우리 경제는 지난달 반도체 수출(172억 6000만 달러)이 전월 대비 38.6% 증가하면서 역대 최대 월별 수출(610억 4000만 달러)을 기록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메모리반도체 주문이 몰려들면서 내후년 물량까지 ‘완판’될 상황이다. 증권가는 내년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영업이익 전망치를 각각 100조 원, 80조 원까지 상향 조정할 정도다. 그러나 반도체 호황이 주는 착시도 있다. 3분기 매출 기준 상위 500대 기업 영업이익은 전년 대비 20% 늘었지만 반도체 기업을 빼면 20조 원 넘게 줄어든다. 전자 산업 내에서도 가전 등 완제품과 디스플레이는 상황이 좋지 않다. 삼성과 LG는 중국의 추격에 쫓겨 TV 사업을 구조조정하고 있고, 디스플레이 업계도 유탄을 피하지 못하는 형국이다. 업계에서는 “전자 산업 생태계가 무너질까 두렵다”는 말마저 나온다. AI 산업도 마찬가지다. 주요 2개국(G2)인 미중 기업들이 정부의 수백조 원대 지원을 마중물 삼아 기술 선점에 박차를 가하고 있지만 국내 반도체 생태계는 투자 가뭄에 시달리고 있다. 금산분리 규제는 막대한 자금이 필요한 첨단산업에 민간자본이 흘러들 통로까지 막고 있다. 퓨리오사AI나 리벨리온·딥엑스 등 AI 반도체 유니콘들은 마른 수건을 쥐어짜며 기술 개발에 열중하고 있다. 하지만 국내 AI 생태계는 G2에 비하면 허약하기 짝이 없다. 메모리반도체 역시 안전지대는 아니다. 중국 대표 기업인 창신메모리(CXMT)는 지난달 DDR5와 LPDDR5X 등 최신 제품 라인업을 공개했다. 중국이 저가 제품 물량 공세가 아닌 프리미엄 D램 시장에서 한국 기업들을 위협하는 날이 현실로 다가왔다. ‘996(주 6일·12시간 근무)’ 연구개발(R&D)로 속도를 내는 중국 반도체는 ‘주52시간 규제’에 발목이 잡혀 있는 한국 반도체를 추월할 기세다. 이번 메모리 슈퍼사이클이 어쩌면 한국 산업의 취약한 생태계를 보완할 마지막 기회일지 모른다. 기업들이 투자 여력이 있고 중국과 기술 격차가 그나마 남아 있을 때 정부도 과감히 규제를 풀고 초격차를 향해 뛰어야 한다. 골든타임을 놓쳐서는 안 된다. -
[로터리] 부동산 오답노트
오피니언 사외칼럼 2025.12.02 18:10:22“집값이 오르면 수요를 억압하지 않고 공급을 늘려 적정 가격을 유지하겠습니다.” 대통령의 말이다. 대선 닷새 전 서초구의 한 유세 현장에서 후보 신분이었던 대통령은 약속했다. 그러나 ‘시장을 존중하겠다’던 다짐이 ‘시장을 통제하겠다’는 엄포로 바뀌기까지는 불과 다섯 달이 걸리지 않았다. 정부는 여지없이 ‘고강도 규제 카드’를 꺼내 들었다. 서울 전역이 일제히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묶였다. 구청장의 허락 없이는 한 평의 집도 사고팔 수 없는 지역이 됐다. 대출이 막히자 거래도 멈췄다. 전세는 증발했고 월세는 천정부지로 솟아올랐다. 내 집 마련의 꿈은 현금을 가진 시민과 그렇지 않은 시민, 두 갈래로 나뉘었다. 정부는 낙관했지만 시민은 절망했다. 단기간에 끓어오른 부동산 시장을 식히기 위한 특단의 대책이라며 내놓은 시장 규제는 시민이 묵묵히 키워온 내 집 마련이라는 꿈의 입구와 출구 모두 막아버릴 것이 명약관화했기 때문이다. 정부만 빼고 모두가 알고 있는 결과였다. 부동산 규제의 실패를 다시 규제로 덮으며 전국을 ‘갈등의 용광로’로 만든 것이 불과 몇 년 전 일이다. 기억한다. 학창 시절 우리는 오답노트를 만드는 데 열을 쏟았다. 틀린 문제를 복기해 다시는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함이었다. 하지만 정부는 자유 제한으로 점철된 부동산 정책이 우왕좌왕, 거래절벽, 월세 고통, 공급 부족의 수순을 거쳐 끝내 희망 박탈로 귀결된다는 오답노트를 눈앞에 두고도 오답을 오답이라 인정하려 들지 않고 있다. 바로잡을 기회가 없었던 것도 아니다. 대책 발표 하루 전 서울시는 ‘과도한 규제가 시장 혼란을 초래할 수 있다’며 우려를 전달했지만 현장의 목소리가 규제의 브레이크로 작동하는 일은 끝내 일어나지 않았다. 문제가 풀리지 않으면 다른 공식을 적용하는 게 순리고 약이 듣지 않으면 처방을 바꾸는 게 수순이다. 약이 안 듣는다고 더 독한 약을 쓰는 것은 몸의 면역력을 떨어트려 병을 키우는 지름길일 뿐이다. 지난 4년 서울은 ‘규제’에서 ‘공급’으로 처방을 바꿔왔다. 서울시의회는 제11대 출범 1호 안건으로 ‘도심 주택공급 활성화 법령 개정 촉구 결의안’을 통과시켰다. 불합리한 규제를 개선해 재건축·재개발 시계를 다시 돌리겠다는 각오를 결의안에 담았다. 서울시 역시 시민이 원하는 곳에 더 많은 주택을 공급하기 위해 신속통합기획에 시동을 걸었다. 최근에는 2035년까지 37만 7000가구 준공이라는 구체적 수치까지 제시하며 공급에 대한 신뢰를 다져오던 참이었다. 그러나 갑작스레 등장한 규제가 공급에 대한 신뢰를 허물었다. 서울시민의 절반 이상이 집값은 물론 전월세가 모두 오를 것이라 예측했고 그 예측이 하나둘 현실의 통계로 나타나고 있다. 이유는 분명하다. 정책은 ‘일관성’과 ‘예측 가능성’이라는 신뢰의 토대 위에서만 작동한다. 오락가락하는 오답의 반복은 신뢰를 무너뜨릴 뿐이다. 정치학자 스티븐 레비츠키와 대니얼 지블랫은 ‘어떻게 민주주의는 무너지는가’에서 공동체를 지키는 것은 제도만이 아니라고 했다. 서로 다른 견해를 가진 사람에 대한 관용과 정중함이 무엇보다 필요하다고 진단했다. 서울은 내 집을 가진 가구보다 무주택 가구가 많은 전국 유일의 도시다. 서울이라는 공동체를 지키기 위해서는 먼저 서울시민의 ‘내 집 마련’ 꿈을 정중히 다뤄야 한다. 틀린 답을 재탕하는 대신 서울시민의 오랜 꿈인 ‘내 집 마련’의 의미를 헤아렸다면 정부의 부동산 노트에는 지금과는 다른 답이 쓰였을 것이다. 분명히. -
[여명] 환율? 정치인부터 각성해야
오피니언 사내칼럼 2025.12.02 18:05:21경제학자 조지프 슘페터는 생전에 정치인을 ‘나쁜 기수(騎手)’에 빗댔다. 정치인은 안장에 오래 앉아 있는 데만 몰두한 나머지 자신이 어디로 가는지조차 신경 쓰지 않는다고 꼬집었다. 한마디로 정치인들은 정책을 제대로 만드는 것보다 권력 유지에 더 급급하다는 것이다. 최근 원·달러 환율 급등을 두고 벌어지는 일을 유심히 살펴보면 슘페터의 통찰이 가슴에 와닿는다. 12·3 계엄이 발생한 지 1년 만에 우리 경제는 충격에서 벗어나 빠르게 회복 중이다. 다만 원화 가치가 급속히 빠져 이제는 달러당 1500원 돌파가 불안할 지경까지 왔다. 문제는 달러화 인덱스가 최근 1년간 하락 추세를 보이는 와중에 원화가 가파른 미끄럼을 타고 있는 점이다. 실제 유로화만 해도 같은 기간 달러화 대비 강세를 보였다. 원화 하락이 달러 강세에 따른 증상이기보다 우리만의 특수한 구조적 변화에 기인한 결과물일 수 있다는 뜻이다. 원·달러 환율을 둘러싼 여건을 보면 뭐 하나 호락호락한 게 없다. 기업과 개인 모두 달러화를 신줏단지 모시듯 할 형편이다. 당장 기업만 해도 연간 최대 200억 달러씩, 총 2000억 달러를 미국에 들이부어야 한다. 조선업의 미국 투자까지 합치면 총 3500억 달러에 이른다. 기업 입장에서 보면 생존을 걸고 미국 투자에 나서는 판에 벌어들인 달러를 원화로 바꿀 유인 자체가 낮다. 부동산이 막힌 개인도 마찬가지다. 압도적 장기 수익률, 인공지능(AI) 문명을 설계하는 빅테크 중심의 포트폴리오, 탄탄한 투자 대기 수요 등은 우리 증시와 비교 자체가 어렵다. 환전 업무를 빌미로 증권사를 단도리친다고, 국내 주식에 더 투자하라고 국민연금을 압박한다고 될 일이 아니다. 이재명 정부를 비롯해 정치인들이 정작 더 신경 써야 할 부분은 단기적으로 확장 재정을 경계하고 중장기적으로 한국에 투자하게끔 법과 규제 등을 정비하는 일이다. 일단 돈을 적재적소에 잘 써야 한다. ‘없는 돈’을 만들겠다며 정부의 빚문서 격인 국채 발행을 남발하고, ‘있는 돈’을 엉뚱한 곳에 뿌려서는 진짜 답이 없다. 최근 1년간 원화가 주요 통화 대비 모두 약세를 기록한 데는 유동성이 많이 풀린 게 결정타였다. 그런데도 내년도 예산안에서 적자국채 발행 규모는 110조 원에 이른다. 거대 여당이라면 책임감을 갖고 예산 집행에 더 예민해져야 한다. 단기 지원 위주의 각종 보조금, 지역 민원성 인프라 예산, 경기 진작 효과보다 재정 부담이 더 크다는 지역화폐·소비쿠폰 집행 등은 꼼꼼히 따질 필요가 있다. 자기 브랜드, 민원성 예산을 칼질하는 읍참마속없이는 환율 쏠림을 되돌리기 어렵다. 선거를 핑계로 삼을 수는 없다. 기업에 대한 이재명 정부의 시각도 교정할 부분이 적지 않다. 겉만 번지르르한 립서비스보다 한국을 매력적인 투자처로 만드는 게 우선이다. 그러면 기업은 오지 말라 해도 온다. 그런데도 주52시간, 노란봉투법, 자사주 의무소각, 법인세 및 전기료 인상 같은 규제가 한꺼번에 쏟아지니 기업으로서는 고국을 등지지 않고는 버텨낼 재간이 없게 된다. 원화 가치 하락이 두려운 이유는 방치하면 수입물가 급등으로 인플레이션이 심각해지기 때문이다. 인플레이션은 결과적으로 근로소득의 값어치를 떨어뜨리고 자본소득의 가치는 키운다. 알토란 아파트에 달러 자산도 많은 부자들이야 돈을 더 벌겠지만, 유리 지갑이 대부분인 중산층과 서민은 인플레이션 증세에 고스란히 노출돼 세금만 더 내기 십상이다. 별다른 자산이 없는 청년층이 더 힘들어지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난마처럼 얽힌 환율 실타래를 풀기 위해서는 방만하게, 느슨하게 운용됐던 돈줄부터 바짝 죄일 필요가 있다. 정치인들도 이런 문제를 모르지 않을 것이다. 진짜 위기는 다 알면서도 방관하는, 혹은 이게 위기라고 생각하지 않는 오만에서 비롯된다. 환율 잡기는 쉽지 않다. 그렇다고 난공불락의 난제도 아니다. 정부가 각자도생에 여념이 없는 개인과 기업에 영(令)이 서려면, 아니 조금이라도 설득하려면 솔선수범하는 모습부터 보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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