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 유출 등의 문제로 국회 청문회에 출석하고 있는 쿠팡이 주요 식품 협력 업체에 최고 40%의 마진율을 보장해달라는 요구를 한 것으로 파악됐다. 중소기업은 물론 대기업에까지 1년 단위의 계약 만료일이 몰리는 12월 31일까지 합의하지 않으면 거래를 끊겠다는 입장을 밝힌 것이다.
31일 식품 업계와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쿠팡은 2025년 12월 31일에 계약이 만료되는 식품 업체들에 12월 초 ‘2025년 상품 공급계약 종료 예정 통지 및 2026년 로켓배송 상품 운영 협의 요청의 건’이라는 공문을 보냈다.
쿠팡은 공문에서 “기존에 협의한 내용을 바탕으로 체결한 상품 공급계약은 자동 갱신되지 않는다”면서 “변경된 시장 상황, 협력사 상품 판매 현황을 바탕으로 2026년 상품 운영 협의를 진행할 것”이라고 했다.
공문에는 구체적인 시장 상황이나 상품 판매 현황, 쿠팡이 요구하는 마진율이 나와 있지 않지만 다수의 대기업 계열 식품 업체들은 올해 35~37%가량이던 마진율을 최대 40%로 올려달라는 요구를 받았다고 설명했다. 식품 업체들은 쿠팡을 통하지 않으면 매출의 최대 절반을 잃을 수 있는 상황에서 매년 올리는 마진을 맞추느라 일부 상품에서는 역마진이 난다고 하소연했다. 이에 대해 쿠팡은 마진율을 보장해달라는 요구를 하지 않으며 모든 계약은 협력 업체와의 협의에 따라 진행한다고 밝혔다.
최저가에 맞춘 뒤 업체가 보전해라
쿠팡, 대량 매출 무기로 협상력 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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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팡은 주로 매입한 상품을 판매한 후에 남은 재고를 식품 업체들이 부담하는 직매입 방식으로 거래한다. 쿠팡이 ‘로켓배송’이라고 부르는 직매입은 상품을 대량으로 미리 매입한 뒤 빠르게 배송할 수 있기 때문에 중소상공인보다는 대기업과 중견기업 등 대형 식품 업체가 활용하고 있다.
직매입은 판매자가 쿠팡에 배송 등 일부 업무를 위탁하거나 플랫폼만 활용하는 ‘판매자배송’ ‘마켓플레이스’ 방식에 비해 쿠팡의 가격 결정권이 커질 수밖에 없는 구조다. 이 때문에 식품 업체들은 쿠팡이 매년 마진율을 올려달라고 요구해도 거부할 수 없는 것이다. 업계는 공정거래위원회가 이 같은 문제로 2021년 쿠팡을 제재했지만 쿠팡이 행정소송을 제기해 2024년 승소한 후 오히려 쿠팡의 요구가 거세졌다고 증언했다.
일부 식품 업체들은 31일까지도 쿠팡이 요구한 마진율에 대해 합의를 미뤘다. 한 식품 업계 관계자는 “지난해에도 최대한 늦게까지 버텼고 올해 또한 그럴 계획”이라면서도 “결국에는 받아들이게 될 것”이라고 토로했다. 또 다른 식품 업계 관계자는 “우리가 견딜 수 있는 마진율은 최대가 35%인데 그 이상을 요구하면 팔아도 적자”라며 “컬리가 매출은 적지만 오히려 과도한 요구가 없어서 나은 점도 있다”고 말했다.
식품 업계가 특히 문제 삼는 부분은 쿠팡이 가장 낮은 소비자 판매 가격을 확인하고 이를 식품 업체가 부담하게 하는 일명 ‘다이나믹 프라이스’다. 식품 업체는 직접 거래하지 않은 판매자가 유통기한이 짧게 남았거나 군 PX 등에서 싸게 들여온 상품을 쿠팡에서 팔면 그로 인해 줄어든 쿠팡의 마진을 식품 업체가 광고비 등의 명목으로 부담하게 한다고 주장했다. 네이버·G마켓·11번가 등 다른 플랫폼이나 식품 업체가 대형마트 등과 논의하는 단기 할인 행사 계획을 파악한 뒤 쿠팡이 그 가격에 직매입해 팔고 줄어든 마진을 채우라고 요구하기도 한다는 게 식품 업체의 얘기다.
단기 할인 행사 마진 보장 요구도…표준계약서는 무용지물
온라인 플랫폼의 직매입 거래는 공정위가 권고하는 표준계약서를 근거로 계약을 맺는다. 표준계약서에 따르면 쿠팡이 식품 업체에 계약 갱신을 거부하려면 갱신 한 달 전 서면으로 구체적인 이유를 적어 통보해야 한다. 별다른 통보가 없으면 자동 갱신하도록 하고 있다. 쿠팡이 식품 업체에 보낸 공문에는 계약 종료를 예고하면서 ‘변경된 시장 상황, 상품 판매 현황’을 근거로 들었지만 구체적인 내용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쿠팡은 공문을 통해 “구체적인 거래 조건이 협의되지 않는 경우 2025년 12월 31일 이후 기존에 체결한 상품 공급계약이 종료되기 때문에 관련 법령에 따라 협력 업체 상품을 운영할 수 없다”고 했다.
e커머스 업계는 쿠팡이 표준계약서 이외에 단기 할인 행사 등을 별도로 계약할 때 마진을 보장해줄 것을 요구한다고 강조했다. 업계 관계자는 “표준계약서 이외에 단기간 할인 행사를 하는 경우가 있고, 그때 표준계약서에 못 담은 마진율을 보장하거나 판매장려금을 주는 내용을 담기도 한다”면서 “구두로 내용이 오가는 경우도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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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정 기간마다 계약을 갱신하면서 마진율을 올려달라는 요구는 쿠팡 이외에 다른 e커머스나 오프라인 유통사들 역시 마찬가지다. 그러나 쿠팡은 압도적인 매입 규모를 갖고 있기 때문에 협상력이 훨씬 크다. 한 식품 업체 관계자는 “다른 업체들은 수수료나 마진율을 올리면 판촉비를 줄여주는 식으로 조정하지만 쿠팡은 일방적”이라고 밝혔다.
반면 제조사에 비해 유통사의 힘이 커지는 것은 국내뿐 아니라 해외에서도 나타나는 현상이라는 해석도 있다. 미국의 블랙프라이데이 등 대형 할인 행사는 유통사가 제조사에 대대적인 할인 상품을 요구하기 때문에 유지될 수 있다는 것이다. 유통 업계 관계자는 “블랙프라이데이에 손해를 감수하고 물건을 납품하지 않으면 평소에 납품할 수 없기 때문”이라며 “과거에 비해 제조사의 힘이 줄어드는 추세”라고 설명했다. 업계 관계자는 “쿠팡이 40%의 높은 마진율을 요구하는 것은 일부에 불과하며, 인상률도 물가상승률을 반영한 1%포인트를 적용해 합의가 이뤄지고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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