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역폭메모리(HBM) 시장을 석권한 SK하이닉스(000660)가 낸드 시장 1위도 탈환하기 위해 승부수를 띄웠다. 급격한 성장세를 보이는 인공지능(AI) 추론 시장의 수요에 맞춰 차세대 낸드 제품군인 ‘AIN(AI-NAND) 패밀리’를 공개한 것이다. HBM처럼 낸드를 수직 적층하는 ‘고대역폭플래시메모리(HBF)’ 기술을 무기로 AI 시대 낸드 시장의 주도권을 잡겠다는 포부다.
SK하이닉스는 이달 16일(현지 시간)까지 미국 캘리포니아주 새너제이에서 열린 ‘2025 오픈컴퓨트프로젝트(OCP) 글로벌 서밋’에 참가해 이 같은 내용의 차세대 낸드 전략을 발표했다고 27일 밝혔다. 김천성 SK하이닉스 부사장(eSSD 제품 개발 담당)이 직접 AIN 패밀리 라인업을 소개했다. SK하이닉스 관계자는 “AI 추론 시장이 급성장하면서 많은 데이터를 신속하고 효율적으로 처리할 수 있는 낸드 제품의 수요가 크게 확대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업계는 AI 시장의 병목현상이 연산(AI 가속기·HBM)에서 저장 공간으로 이동하고 있다고 분석한다. AI 학습 단계에서는 연산 속도가 중요하지만 이제는 AI 추론 서비스가 대세로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대규모언어모델(LLM)의 방대한 데이터를 지연 없이 읽어오는 성능이 AI 서비스 품질을 좌우하는 핵심 변수가 된 것이다.
27일 트렌드포스에 따르면 기업용 SSD(eSSD) 시장은 3분기 수요가 공급을 넘어서 eSSD의 평균판매가(ASP)는 2분기 대비 15~18% 급등했다. 가격 오름세는 4분기에도 이어져 전 분기 대비 5~10% 추가 상승이 확실시된다.
AIN 패밀리는 AI 데이터센터 고객의 세분화된 수요에 정밀 대응한다. 성능에 초점을 맞춘 ‘AIN P(Performance)’는 대규모 AI 추론 환경에서 발생하는 방대한 데이터 입출력을 효율적으로 처리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AI 연산과 스토리지 간 병목현상을 최소화하기 위해 낸드와 컨트롤러를 새로운 구조로 설계하며 내년 말 샘플을 출시할 계획이다. ‘AIN D(Density)’는 저전력·저비용으로 대용량 데이터를 저장하는 데 특화된 고용량 솔루션이다. 기존 쿼드러플레벨셀(QLC) 기반 테라바이트(TB)급 SSD보다 용량을 페타바이트(PB)급으로 높여 SSD의 속도와 HDD의 경제성을 동시에 구현하는 것이 목표다.
이번 AIN 전략의 핵심은 단연 ‘AIN B(Bandwidth)’로 꼽힌다. 이는 SK하이닉스가 HBM 시장의 판도를 바꾼 ‘수직 적층’ 기술을 낸드에 적용한 것으로 HBF로 명명했다. HBM 개발·생산 역량을 십분 활용해 낸드에서도 적층 구조를 구현, AI 추론 및 LLM 대형화에 따른 메모리 용량 부족 문제를 정면 돌파하겠다는 것이다. 이 기술은 대용량·저비용의 적층 낸드를 HBM과 함께 배치해 용량 부족 문제를 보완하는 구조다.
AIN B(HBF)는 낸드 시장 2위인 SK하이닉스가 1위 삼성전자를 겨냥한 비장의 무기다. HBM 시장에서 기술 초격차를 확보했듯 HBF라는 ‘쌓는’ 기술을 활용해 낸드 시장에서도 역전을 노리는 것이다. 카운터포인트리서치에 따르면 올 2분기 매출 기준 전 세계 낸드 시장 점유율 1위는 삼성전자(32%)이며 2위는 SK하이닉스(20%)다. 1년 전과 점유율을 비교하면 삼성전자(35%)는 3%포인트 줄었고 SK하이닉스(22%)는 2%포인트 하락했다. 다만 양 사 간 점유율 격차는 12%포인트로 1%포인트 좁혀졌다.
안현 SK하이닉스 개발총괄(CDO) 사장은 “이번 OCP 서밋을 통해 ‘글로벌 AI 메모리 솔루션 프로바이더’로 성장한 SK하이닉스의 현재와 미래를 선보였다”며 “차세대 낸드 스토리지에서도 고객·파트너와 협력해 AI 메모리 시장의 핵심 플레이어로 올라서겠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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