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자력안전위원회(원안위)가 부산 기장군에 위치한 고리원자력발전소 2호기의 계속운전(수명 연장) 여부 결정을 또 한 차례 미뤘다. 지난달에 이어 두 번째 연기다. 이에 따라 2년 넘게 가동이 중단된 고리 2호기의 재가동 시점은 더 늦춰지게 됐다.
23일 서울 중구 원안위 청사에서 열린 제223회 전체회의에는 고리 2호기의 ‘사고관리계획서 승인안’과 ‘계속운전 허가안’이 심의 안건으로 상정됐다. 그러나 위원회는 첫 번째 안건만 의결하고, 두 번째 안건은 다음 달 13일 회의에서 재논의하기로 결정했다.
원안위는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이 제출한 사고관리계획의 적정성은 인정하면서도 본격적인 재가동 승인에는 추가 검토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논의 과정에서 가장 큰 쟁점은 방사선환경영향평가였다. 해당 평가는 고리 2호기 건설 당시에는 의무 서류가 아니었으나 1982년 법 개정으로 필수 서류로 포함됐다.
진재용 위원은 “기존 운영 허가 당시와 환경 변화가 있었는지에 대한 평가가 필요하다”고 주장한 반면 김기수 위원은 “이미 최신 자료로 평가가 이루어졌기 때문에 재검토 실익이 없다”고 맞섰다. 위원 간 의견이 엇갈리자 최원호 위원장은 참고자료를 추가 검토한 뒤 재상정하기로 했다.
또 한수원이 법적 기한을 넘겨 계속운전 신청을 한 점도 논란이 됐다. 현행 규정에 따르면 설계 수명 만료 5~2년 전까지 신청해야 하지만 한수원은 2022년 4월에야 서류를 제출했다. 이에 과태료 300만 원이 부과된 바 있다. 진 위원은 “기한을 지키지 않았는데 심의 자체가 타당한지 의문”이라며 반대 의사를 밝혔다.
전문가들은 이번 결정으로 재가동 일정에 차질을 빚으면서 전력 수급과 비용 부담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고 우려한다. 한 원전 업계 관계자는 “인공지능(AI) 인프라 확산으로 전력 수요가 급증하는 상황에서 안전성이 입증된 원전이 행정 절차로 멈춰 있는 것은 국가적 손실”이라고 지적했다.
고리 2호기는 1983년 상업운전을 시작해 2023년 4월 설계 수명 만료로 가동을 멈췄다. 국내에서 아직 영구 폐쇄되지 않은 원전 중 가장 오래된 시설로 설비용량은 685메가와트(MW)급이다.
이번 논의는 이재명 정부의 원전 정책 방향을 가늠할 첫 시험대로도 주목된다. 고리 2호기는 한수원이 원안위에 계속운전을 신청한 10기 원전 중 첫 번째 사례다. 고리 3·4호기 역시 수명 만료로 멈춰 있고, 한빛 1호기는 올해 12월 설계 수명이 종료된다.
이재명 정부는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과 윤석열 정부의 ‘친원전’ 기조 사이에서 ‘실용주의 노선’을 내세우고 있다. 이 대통령은 취임 100일 기자회견에서 “안전성이 담보된 원전은 연장해 쓰되 신규 원전 대신 풍력·태양광 확대에 집중해야 한다”고 밝힌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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