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글이 현존 최강의 슈퍼컴퓨터보다 1만 배 이상 빠른 양자컴퓨터 기술을 선보였다. 또 양자컴퓨터로 그동안 해결하지 못했던 신약과 신소재 등 물질 구조를 정밀 분석하기 위한 물리학 난제를 푸는 데 성공함으로써 본격적인 상용화 가능성을 열었다. 구글은 신기술을 5년 내 소재 분석 등에 상용화하겠다는 목표를 내걸며 점점 격해지는 글로벌 양자컴퓨터 경쟁에서 주도권을 노린다.
구글 퀀텀 인공지능(AI) 연구진은 23일 최신 양자컴퓨터 칩 ‘윌로’와 양자 알고리즘 ‘퀀텀 에코스(양자 메아리)’를 활용해 현존 최고 성능의 슈퍼컴퓨터 ‘프런티어’보다 1만 3000배 빠른 성능을 구현한 연구 성과를 국제 학술지 ‘네이처’에 발표했다. 구글이 지난해 12월 105큐비트(양자컴퓨터 연산 단위)급 윌로를 공개한 지 10개월 만에 실제 응용을 위한 맞춤 알고리즘까지 개발해 구체적인 성능을 입증한 것이다. 특히 이번 연구에는 이달 초 노벨 물리학상을 받은 양자컴퓨터 연구 선구자 미셸 드보레 구글 퀀텀AI 수석과학자가 참여해 신뢰성을 더한다.
구글은 양자컴퓨터 성능을 측정하는 표준 테스트인 ‘무작위회로샘플링(RCS)’ 실험을 진행해 퀀텀 에코스를 탑재한 윌로가 2.1시간 만에 시뮬레이션(계산)을 수행할 수 있다는 결과를 얻었다. 반면 프런티어는 3.2년이 걸려 윌로가 1만 3000배 시간을 단축할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퀀텀 에코스는 소리와 그 메아리가 만나 증폭되듯 필요한 에너지 신호를 증폭시켜 정확도를 높이는 ‘시간역행상관자(OTOC)’ 계산법을 응용한 알고리즘이다.
구글은 특히 이 알고리즘을 통해 세계 최초로 ‘검증 가능한 양자우위’를 달성했다고 강조했다. 양자우위는 슈퍼컴퓨터를 능가하는 양자컴퓨터 성능을 뜻한다. 양자우위 달성은 양자컴퓨터 상용화의 필수 조건이다. 2019년 구글 ‘시커모어’를 포함한 전 세계 여러 양자컴퓨터가 양자우위를 내세웠지만 진위 여부를 두고 여전히 학계 의견이 분분하다. 전 세계 연구팀들이 각자 실험을 설계해 양자컴퓨터 성능을 측정해왔지만 실험 조건을 두고 논쟁 여지가 계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 구글은 퀀텀 에코스 알고리즘을 탑재하기만 하면 구글이 아닌 타사 양자컴퓨터라도 동일하고 반복적으로 슈퍼컴퓨터보다 뛰어난 성능을 확인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구글은 또 물질 구조 예측을 위한 물리학 문제인 핵자기공명(NMR) 분석도 양자컴퓨터가 슈퍼컴퓨터급 이상으로 수행할 수 있다는 것도 보였다. NRM은 원자가 자기장 안에서 특정한 반응을 일으켜 에너지를 방출하는 현상이다. 이 에너지를 분석하면 물질을 직접 보지 않고도 어떤 원자들이 서로 어떻게 결합했는지 그 구조를 알 수 있다. 윌로는 원자 15개짜리 ‘톨루엔’과 28개짜리 ‘디메틸바이페닐(DMBP)’ 분자의 구조를 기존보다 더 정밀하게 예측하는 데 성공했다.
이는 구글 양자컴퓨터가 RCS 같은 학계 문제를 넘어 산업 현장의 실용적 문제까지 수행할 수 있다는 의미다. 최재혁 한국표준과학연구원 양자기술연구소장은 “기존 양자컴퓨터는 원자 2개짜리 수소 구조를 분석하는 수준”이라며 “이번에는 단백질 같은 복잡한 물질 분석으로 갈 수 있는 중간 단계로서 상당한 진전”이라고 설명했다. 한상욱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양자정보연구단장도 “양자컴퓨터가 ‘문제를 위한 문제’가 아닌 실용적 문제를 풀었다는 데 의미가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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