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2일 원화 기반 스테이블코인의 민간 발행을 허용할 경우 자본 유출이 가속화되고 중앙은행의 통화정책 효과도 약화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또 가계부채가 국내총생산(GDP) 대비 90%에 육박하고 수도권 집값이 다시 오르는 상황에서 금리 인하의 속도와 폭에도 제약이 커지고 있다고 진단했다.
이 총재는 이날 CNBC와의 인터뷰에서 “미국의 지니어스법(Genius Act) 통과 이후 한국 핀테크 업계가 비은행권에도 스테이블코인 발행을 허용해달라고 요구하고 있다”며 “현재 은행을 통해 진행 중인 예금토큰 실험과는 별개로 이 사안은 통화정책을 넘어선 영역이며 새 정부와의 제도 정비 논의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그는 “스테이블코인을 통한 사설 화폐가 유통되면 중앙은행이 금리를 조정하더라도 정책 효과가 시장에 제대로 전달되지 않을 수 있다”며 “특히 한국은 자본이동 통제를 병행하고 있어 유럽이나 미국보다 통화정책이 받는 압력이 더 크다”고 말했다.
일각에서 제기되는 ‘원화 스테이블코인이 달러 스테이블코인을 대체할 수 있다’는 주장에 대해선 “오히려 원화 기반 스테이블코인이 달러 코인으로의 환전 통로가 될 수 있어 자본 유출을 더 부추길 수 있다”고 반박했다. 그는 “기술이 고도화되면서 고객확인(KYC) 등 거래 투명성 확보 수단이 발전하고 있지만 아직 위험을 통제할 만큼 완전하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덧붙였다.
환율에 대해서는 “작년 말 국내 정치 혼란 이후 원화가 급락했는데 최근의 상승은 기초 체력 수준으로의 정상화 과정”이라며 “7월 9일 미국의 관세 발효 이후 대외 불확실성이 다시 커질 수 있어 면밀히 대응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재정정책과 관련해선 “성장률이 0.8%에 그칠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정부의 추가경정예산은 불가피한 선택이며 약 0.2%포인트의 성장률 제고 효과가 기대된다”고 평가했다. 현재 한국의 국가채무비율은 GDP 대비 49% 수준으로 단기적인 재정 여력은 충분하다고도 밝혔다.
이 총재는 최근 금융 불안에 대한 우려도 언급했다. 이 총재는 “가계부채가 GDP 대비 90%에 달하고 있고 서울 집값도 다시 오르고 있어 금융 불안정 리스크가 커지고 있다”며 “금리 인하의 여지는 있지만 속도와 시기는 경제지표를 보며 결정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수출과 관련해선 반도체 회복세를 강조했다. 이 총재는 “관세와 무관하게 반도체 수출은 잘 되고 있으며 한국 경제의 주요 강점 중 하나”라며 “AI(인공지능) 수요 증가와 함께 반도체 산업의 경쟁력이 다시 부각되고 있다”고 평가했다. 반면 “자동차와 알루미늄 등은 미국의 품목별 관세 영향이 있어 4월까지는 선출하 효과로 버텼지만 향후 추세는 지켜봐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7월 9일 이후 미국의 관세가 추가로 강화될 경우 수출 여건이 다시 악화될 수 있다”고 했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