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정부의 첫 민생회복지원금은 소득이 낮으면 많이 지원 받고 소득이 높으면 혜택을 덜 보는 ‘하후상박’형 구조로 설계됐다. 올해 수십조 원 규모의 ‘세수 펑크’가 예정돼 있는 등 재정 여건이 어려운 상태에서 지출 효과를 최대화하기 위한 전략으로 풀이된다. 문재인 정부 때였던 2020년 소득 수준과 관계없이 전 국민 보편 재난지원금을 지급하는 과정에서 예산 낭비 논란을 겪으면서 일종의 학습 효과가 생겼다는 평가도 나온다.
당초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이 대선 공약으로 내세웠던 민생회복지원금은 전 국민에게 25만 원씩 지급하는 구조로 짜여졌다. 하지만 이재명 대통령이 취임 직후 비상경제점검 태스크포스(TF) 회의를 주재하면서 차등 지원으로 방향 선회가 이뤄졌다고 한다. 같은 돈이라도 효과를 최대화하는 실용주의가 반영된 셈이다.
현재 정부는 2차례에 나눠 민생회복 소비쿠폰을 지역사랑상품권(지역화폐) 형태로 지급하되 1차분에서는 △일반국민 15만 원 △차상위계층·한부모가족 30만 원 △기초생활수급자 40만 원을 각각 지급하고 2차분에서 소득 상위 10%를 제외한 나머지 국민에게 10만 원을 추가 지급하는 방안을 유력 검토하고 있다. 소득 상위 10~20%에 대해서는 아예 지원금을 주지 않는 방안도 막판까지 논의될 것으로 전망된다.
다만 세금 부담을 가장 많이 지는 고소득층이 정부 지원금은 한 푼도 받지 못한다는 불만이 나올 수 있어 액수를 줄이더라도 전 국민에게 기본지원금을 줄 가능성이 크다는 게 민주당과 정부 내부의 기류다.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실무 부처 단계에서 판단은 마쳤지만 최종적으로 대통령의 판단이 남아 있다”고 말했다.
다만 최근 오름세를 보이고 있는 계란, 외식비(서비스) 물가는 정부 입장에서 부담 요인이 될 수 있다. 특히 우리나라는 먹거리 등 생활물가의 부담이 다른 나라보다 높아 이번 지원금이 식재료나 외식비 인상으로 이어질 경우 ‘선의로 만든 경제정책의 역설’이 다시 한 번 나타날 수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2023년 통계에 따르면 한국의 식료품과 비주류 음료 가격은 OECD 평균보다 47% 높았다. 이는 OECD 38개국 중 고물가로 악명 높은 스위스 다음으로 두 번째 높은 수치다.
다만 정부는 이번 2차 추가경정예산안 집행에 따른 물가 상승 가능성이 비교적 높지 않다는 입장이다. 실제 지난달 소비자물가지수는 전년 대비 1.9% 오르며 5개월 만에 다시 1%대로 진입했다. 이는 2022년 5월 윤석열 정부가 출범 당시 2차 추경(59조 원)을 편성하면서 추경 편성 직후 물가상승률이 6월(6.0%), 7월(6.3%), 8월(5.7%)에 연이어 6% 내외를 찍으며 고공 행진을 이어간 흐름과 대조적이다. 물가를 고려한 추경 여건은 일단 나쁘지 않은 셈이다. 기재부 관계자는 “올해 1차 추경으로 인한 물가 상승 영향은 거의 없었던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현금 지급은 ‘진통제’ 역할일뿐 상시화돼서는 안 된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당장 일부 지방자치단체를 중심으로 중앙정부와 별도의 민생지원금 지급이 검토되고 있다. 4·2 재선거에서 민주당 소속 시장이 당선된 거제시가 이 같은 사례다. 변광용 거제시장은 모든 거제시민(23만 명)에게 1인당 20만 원씩을 거제사랑상품권 또는 선불카드로 지급하는 방안을 시의회에 올려 승인을 요구하고 있다.
경제부처의 한 관계자는 “정부가 직접 현금을 지급하는 이전지출이 성장률에 미치는 효과는 정부가 직접 예산을 쓰는 직접지출보다 성장률 자극이 낮다는 게 경제 학계의 다수설 아니냐”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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