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을 글로벌 TV 시장 1위로 이끈 김현석 전 삼성전자 사장이 산업통상자원부 전략기획단(OSP) 단장에 27일 임명됐다. 전략기획단장은 국가 기술 혁신 정책과 R&D 전략 등을 책임지기 때문에 국가 최고기술책임자(CTO)라고도 불린다. 이 자리에 민간인 출신이 선임된 것은 2010년 1기 단장이었던 황창규 전 삼성전자 사장 이후 15년 만이다.
김 단장은 이날 서울경제신문과 만나 “R&D는 기업이 주도해야 성과를 낼 수 있다”고 강조했다. 지금처럼 정부가 R&D 사업 내용과 목표를 세세히 정해 공고하던 기존 방식으로는 혁신적인 결과물을 내놓기 어렵다는 이유에서다. 그는 “정부 R&D 사업을 하면 기업 입장에서 버거운 행정 소요가 많아 대기업보다 중소·중견기업 중심으로 예산이 투입되는 경향이 있었다”며 “하지만 인공지능(AI) 산업과 관련된 R&D는 대기업의 수요도 크기 때문에 이들을 끌어들이기 위해 정부가 과감하게 기업에 권한을 주고 뒷받침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AI 산업 육성 방향도 제시했다. 김 단장은 “수출로 먹고사는 한국이 갈 길은 챗GPT와 같은 대규모언어모델(LLM)이 아니라 피지컬 AI”라고 역설했다. LLM을 구축하는 데는 막대한 데이터와 자본력이 필요해 미국과 중국의 아성을 넘기 힘들지만 휴머노이드나 AI 제조업처럼 AI가 실생활에 구현되는 과정에서는 한국이 노릴 수 있는 틈새가 있다는 의미다.
그는 “지금이 AI 산업에 뛰어들 수 있는 마지막 기회”라며 “이번 기회를 놓치면 우리 미래를 예측하기 어려워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AI 기술이 산업 현장과 실생활에 스며들기 시작하는 패러다임 전환기에 적응하지 못하면 반도체·조선·디스플레이 등 주도권을 쥐고 있는 산업 전체가 힘들어질 수 있다는 이야기다.
김 단장은 이어 “미국과 중국이 AI 산업을 주도할 동안 우리 기업들은 각자 사무 생산성을 높이는 수준에서 AI를 다뤄왔다”며 “이제는 그다음 단계인 피지컬AI로 넘어가야 할 때”라고 말했다. 산업부 관계자는 “김 단장의 건의를 수용해 AI 기반 산업 전환을 총괄할 ‘산업 AI 투자관리인(MD)’도 신설하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안덕근 산업부 장관 역시 “우리 R&D는 현장 수요에 기반한 기획력과 기술 변화 속도에 대응하는 민첩한 전략이 필요하다”며 “전략기획단이 전문성과 네트워크·통찰력을 바탕으로 기업과 현장을 연결해주기 바란다”고 밝혔다.
김 단장을 보좌해 전략기획단을 꾸릴 MD도 일부 새로 임명됐다. 한종석 전 한국산업기술기획평가원 산업기술혁신본부장이 혁신 정책 부문 MD로, 강병모 전 한국전자기술연구원 기업협력본부장이 개방 혁신 부문 MD를 새로 맡았다.
한편 김 단장은 한양대 공대를 졸업하고 미국 포틀랜드주립대에서 전기 및 전자공학 석사를 취득한 뒤 1992년 삼성전자 영상디스플레이 부문 선임연구원으로 입사해 2015년 영상디스플레이 부문 사장, 2018년 삼성전자 소비자가전(CE) 부문 사장을 지냈다. 전형적인 엔지니어 출신으로 기술에 강할뿐더러 추진력도 있어 삼성 가전 사업을 세계 최고 수준으로 끌어올린 주역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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