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AI) 기술이 대전환을 이끌고 있는 시대에 혁신에 뒤처지지 않기 위해선 기업 법인세 혜택과 주 52시간 근로 등의 제도도 혁신 지향적으로 손질돼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기업 법인세를 연구개발(R&D) 투자 비중에 따라 대폭 줄여주고 연구소만이라도 주 52시간 근로제에서 제외하는 특별한 조치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임기철 광주과학기술원(GIST) 총장은 27일 서울 중구 신라호텔에서 열린 ‘이공계 대학 리더십 포럼’에 참석해 이렇게 말했다. 이날 포럼은 서울경제신문이 27~28일 이틀간 개최한 ‘서울포럼 2025’의 특별 행사 중 하나로 마련됐다. ‘첨단 기술 대변혁의 시대, 이공계 중심 대학의 전략과 인재 육성 방안’을 주제로 열린 이번 행사에는 한국과학기술원(KAIST), 광주과학기술원(GIST), 울산과학기술원(UNIST) 등 국내 이공계 인재 양성의 선봉에 선 주요 대학 총장들이 참석했다. 토론은 장병탁 서울대학교 AI 연구원장이 이끌었다.
이날 임 총장은 AI 시대 인재 양성과 기술 발전을 위한 정부 지원 방안을 묻는 질문에 대해 “연구비 지원이나 배분이 혁신 지향적으로 설계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우리나라 연구비가 올해 29조 7000억 원인데 합리적으로 배분되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있다”며 “미래 전망부터 시작해 장기적 기획 전략을 토대로 합리적 배분을 할 수 있는 체계적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고 말했다. 기업이 이끄는 기술 개발에 대한 중요성도 짚으며 “기업 법인세를 연구개발 투자분만큼 대폭 줄여주고, 또 지방에 연구소를 세울 경우 거리에 따라 세금 혜택을 더 주는 방식을 통해 균형 있는 발전과 지역 인재를 육성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주 5시간 근무제가 기업 혁신의 발목을 잡고 있다는 지적도 하며 “연구소나 싱크탱크만이라도 주 52시간 근로제에서는 제외시키는 조치가 필요하다”며 “그렇지 않으면 아무리 투자해도 혁신의 성과를 거두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함께 자리한 이광형 카이스트 총장은 실패에 너그러운 문화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이 총장은 “연구비 지원과 성과를 살펴보면 우리의 성공률이 너무 높다는 생각이 든다. 이는 뒤집어보면 너무 쉬운 연구를 한다는 의미”라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매년 어마어마한 연구비가 들어가는데 국민 생활을 혁신적으로 바꾸는 연구는 나오지 않고 있다”며 “좀 더 도전적인 연구를 하도록 이끌어야 혁신이 이뤄질 것”이라고 짚었다. 이 총장은 구체적인 방법으로 “연구 과제 심사 평가 시 너무 성공 가능성이 높은 연구는 아예 배제해 연구비를 주지 않으면 되겠다. 거기서부터 출발할 수 있지 않을까”라고 말해 청중의 웃음을 이끌어내기도 했다.
박종래 유니스트 총장은 ‘바텀업’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박 총장은 “AI 시대에는 ‘평균적 수월성’을 강조하는 교육이 아니라 개인의 특징과 다양성을 존중할 필요가 있다”며 “개인이 잘하는 것을 더 잘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하며 이런 지원이 개인에 그치지 않고 기관·지역으로 까지 뻗어야 한다”고 했다. 그는 이어 “이런 지원을 위해서는 정부가 주도적으로 계획을 세워 밀어붙이기 보다는 각 지역과 기관이 계획을 세워 요구하면 정부가 ‘잘 해 봐’라고 밀어주는 게 베스트일 것 같다”고 덧붙였다.
이날 박 총장은 UNIST가 지역의 8000여 중소기업에 둘러싼 교육 환경의 이점을 살려 기업들이 실제로 현장에서 곤란을 겪고 있는 문제를 학생들에게 풀도록 제안함으로써 학생이 자율적으로 문제를 찾고 과제화하는 교육 방식을 소개해 주목받기도 했다. 박 총장은 “교육이 교수의 힘만으로 이뤄지는 시대는 지났다”며 “학생들이 자신만의 시선과 이해에 따라 문제 해법을 도출하면 교수와 선배는 그 아이디어의 질을 끌어올려 주는 방식을 활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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