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그룹의 재무 부담을 가중시키고 있는 또 다른 포인트는 재무적투자자(FI)와 맺은 계약이다. 과거 SK에코플랜트와 SK온에 대해 대규모 투자를 유치하는 과정에서 못 박아둔 상장 기한이 다가오고 있는데 중복 상장 문제와 증시 환경 악화로 쉽지 않을 것이라는 게 중론이다. 기한을 넘길 경우 SK는 FI에 수백억 원에 이르는 배당금을 줘야 한다.
9일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SK그룹 리밸런싱의 중심에 있는 SK에코플랜트의 기업공개(IPO)가 대표적인 사례다. 에코플랜트는 2022년 프리미어파트너스·이음프라이빗에쿼티(PE) 등 FI로부터 1조 원을 투자받으면서 2026년 7월까지 상장하겠다고 약속했다.
당시 에코플랜트는 4000억 원의 상환전환우선주(RCPS)와 6000억 원 규모 전환우선주(CPS)를 발행했는데 이 중 CPS에 대해 최대주주인 SK㈜가 매도 청구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했다. 기간 내에 상장하지 못하고 SK㈜도 매도 청구권을 행사하지 않으면 투자자들에게 2026년부터 5%에서 시작해 매년 3%포인트씩 배당률을 높여 지급해야 하는 조건이다. 이 스텝업 조항에 따라 몇 년만 지나도 누적 배당금이 1000억 원 단위로 불어날 것으로 추정돼 SK그룹 입장에서는 투자금 상환을 위한 IPO가 절실한 상황이다.
그러나 투자 유치 후 신사업으로 낙점한 친환경 사업의 수익성이 부진하고 건설 업황 둔화까지 겹치면서 재무 부담이 가중됐다. 이에 SK㈜는 지난해 반도체 소재 관련 기업인 SK에어플러스와 에센코어 2개의 자회사를 에코플랜트에 넘겨100% 자회사로 편입시켰다. 여기에 더해 반도체 소재 자회사인 SK머티리얼즈도 에코플랜트로 넘기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SK가 에코플랜트에 본업이 아닌 반도체 사업을 잇달아 편입시키는 것은 에코플랜트의 독자적인 상장은 사실상 무리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라며 “IPO를 추진하기 전 재무 건전성을 개선하려는 의도로 해석된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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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터리 계열사인 SK온도 비슷한 상황이다. 2022년 2조 3000억 원을 유치하면서 약속한 상장 기한도 2026년으로 같다. 상장이 불발되면 모회사인 SK이노베이션(096770)은 투자자인 MBK파트너스와 한투프라이비에쿼티(PE) 컨소시엄에 투자금을 상환(콜옵션)해줘야 하고 이를 포기할 경우 투자자들은 SK이노베이션이 보유한 SK온 지분까지 매각할 수 있는 동반 매도 요구권을 발동할 수 있다.
아직 적자를 벗어나지 못한 데다 조 단위 설비투자로 재무 상황이 좋지 못한 탓에 SK온 역시 기한 내 상장은 어렵다는 전망이 우세하다. 다만 2년 정도 상장 시한을 늦추는 것은 가능하다.
SK그룹은 앞서 ‘11번가’ 이슈로 자본시장에 신뢰를 깬 적이 있다. 모회사인 SK스퀘어(402340)가 2018년 사모펀드 H&Q코리아로부터 5000억 원을 유치하며 2023년 9월까지 상장을 약속했던 일이다. 주주 간 계약에 따라 상장이 이뤄지지 못할 경우 SK스퀘어가 H&Q코리아 보유 지분에 대한 매도 청구권(콜옵션)을 행사할 수 있도록 했지만 SK는 이를 포기했다. 통상 투자자의 자금 상환을 보장하는 수단으로 쓰였던 콜옵션을 이행하지 않으면서 자본시장에서 신뢰를 져버렸다는 비난이 쏟아졌다.
IB 업계의 한 고위 관계자는 “SK그룹이 에코플랜트 투자 유치 과정에서 상장 불발 시 막대한 비용을 부담하도록 한 것은 투자자 자금을 반드시 상환해주겠다는 의지를 반영한 것”이라며 “현재 이뤄지고 있는 리밸런싱은 결국 에코플랜트와 SK온에 모든 역량을 집중하려는 전략”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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