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태원 SK그룹 회장이 7일 SK텔레콤 유심 해킹 사태 수습을 위해 직접 나선 것은 핵심 계열사의 미래 전략 훼손에 대한 우려감이 커졌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현재 SK텔레콤은 ‘1위 통신사’에서 ‘1위 인공지능(AI) 기업’으로의 변신 및 도약에 주력하고 있다. 애초 이 같은 변화에 뛰어들었던 자신감은 전 국민의 절반에 달하는 2500만 통신 가입자 수에 있다. 하지만 가입자 불신 및 이탈을 해결하지 못할 경우 신뢰를 근간으로 하는 AI·데이터·보안 등 신산업 분야의 동력 약화가 불가피하다.
이런 점을 고려해 최 회장은 이날 서울 중구 T타워에서 열린 해킹 사태 관련 일일 브리핑에서 “바쁜 일정 속에서 매장까지 찾아와 (유심을 교체하려고) 오래 기다렸거나 해외 출국을 앞두고 촉박한 일정으로 마음 졸인 많은 고객에게 불편을 드렸다”며 “고객 입장에서 세심하게 살피지 못했다”고 개인 고객 눈높이에서 사과했다.
현재 SK텔레콤은 사실상 다른 모든 경영 활동을 멈추고 해킹 수습에 올인하고 있다. SK텔레콤은 2일 비상경영체제를 최고 단계로 올리고 매일 비상경영회의를 진행하고 있다. 나아가 지난 연휴에는 SK텔레콤을 비롯해 SK브로드밴드·SK텔링크 직원 1160명 정도가 유심 교체 등을 담당하는 2600여 개 매장에 자발적으로 나가 현장을 지원하기도 했다.
SK텔레콤이 그룹 전체의 AI 체질 개선 사업을 주도하고 있는 점도 최 회장을 움직인 것으로 판단된다. SK텔레콤 해킹 사태 장기화가 그룹 전체에 미칠 악영향까지 고려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SK텔레콤은 3월 AI 데이터센터(DC), 그래픽처리장치 클라우드 서비스(GPUaaS) 등을 통한 수익 창출을 골자로 하는 ‘AI 피라미드 2.0’ 전략을 발표했다. 특히 비수도권 지역 거점에 그래픽처리장치(GPU) 6만 장이 들어가는 100㎿급 AI DC를 건설하는 프로젝트를 준비 중이다. AI DC 전략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SK하이닉스·SK브로드밴드·SK가스 등 그룹의 주요 계열사들이 솔루션 및 플랫폼 개발 등 다양한 방식으로 협업하고 있다.
하지만 SK텔레콤은 카카오 지분 매각 등 AI 투자를 위해 마련한 실탄을 유심 확보와 과징금 등 예기치 못한 분야에 사용할 처지에 놓였다. 이 경우 SK텔레콤의 AI 관련 사업 일정과 그룹 내 다른 AI 전략에도 차질이 생길 수밖에 없다. 이날 브리핑에서 SK텔레콤 관계자는 “현재 진행 중인 AI 투자 계획을 갑자기 변경하는 방안은 검토하지 않고 있다”면서도 “이번 일로 여러 가지 영향이 있게 된다면 최대한 고객 보호 조치가 가장 우선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최 회장은 SK텔레콤의 개별 계열사 역량만으로는 조속한 해결이 어렵다는 점을 인정하고 정확한 사고 원인 규명과 보안 체계 검토, 시스템 투자 확대 등도 그룹 차원에서 진행하겠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이번 사태로 국가기간사업자로서 SK텔레콤의 역할에 대한 성찰도 제기된 것으로 보인다. 최 회장은 “현재 우리가 직면한 문제는 단순히 보안이 아닌 국방 문제라고 생각한다”며 “국방 상황을 제대로 검토하고 안보 체계를 세우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최 회장은 8일 열릴 예정인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의 SK텔레콤 유심 해킹 사건 청문회에 증인으로 채택됐으나 해외 행사 참석을 이유로 출석하지 않겠다는 뜻을 밝혔다. 청문회에는 유영상 SK텔레콤 대표가 참석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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