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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밑빠진 독' 자영업 정책금융…10년새 두 배 늘었다[S머니-플러스]

정책대출·보증 공급규모 5.6조서 18.5조로

소진공 대출 받으려 일부러 신용 낮추기도

정부 돈 풀어도 자영업 부채 소득의 3.4배

정책금융 규모 줄이고 전문 신평사 키워야

한산한 모습을 보이는 서울 중구의 한 먹자골목에서 지난 14일 행인들이 길을 걷고 있다. 오승현 기자




서울 강남에서 치킨집을 운영하는 A 씨는 대출을 위해 시중은행을 방문할 때마다 부동산 담보나 지역신용보증재단의 보증서가 있느냐는 질문을 받는다. 담보나 보증이 없으면 사업주 개인 신용대출을 받아야만 한다. 사업 매출이 좋아도 개인신용이 낮거나 보증서가 없으면 대출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음식점을 운영하는 B 씨는 중저신용자를 대상으로 한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의 대출 보증서를 발급 받기 위해 인터넷에서 개인신용도를 낮추는 방법을 알아본다. 신용점수를 일부러 낮춰 소진공의 대출을 신청하려는 것이다. 금융계의 한 고위 관계자는 “사업 현황을 감안한 진정한 의미의 시중은행 개인사업자 대출이 없다”며 “제대로 된 신용평가나 사업성 분석 없이 복지 정책 차원에서 접근하다 보니 곳곳에서 나랏돈이 새고 있다”고 지적했다.

금융계에선 소상공인과 자영업자를 위한 금융 지원이 급증하고 있지만 제대로 된 효과를 내지 못한 채 ‘돈 퍼주기’에 그치고 있다는 분석이 많다. 실제로 정부가 자영업자에게 제공하는 대출과 지급보증 같은 정책금융 규모가 최근 10년 새 두 배 넘게 폭증한 것으로 나타났다. 대선을 앞두고 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에서 소상공인 지원 방안이 쏟아지는 가운데 정부의 대규모 지원에도 빚에 의존하는 소상공인은 더 늘어나고 있다. 시장에서는 정책금융 체계 전반을 손봐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서울경제신문이 박근혜 정부 출범 시점인 2013년부터 윤석열 정부의 마지막 예산인 2025년까지 중소벤처기업부의 소상공인 지원 융자와 지역신보의 신규 보증 공급액 및 계획을 분석한 결과 이같이 집계됐다.

2013~2014년 5조 원대였던 지역 신보의 신규 보증 공급액과 정부의 소상공인 지원 융자는 2015년 중동호흡기증후군(MERS·메르스) 사태로 8조 2455억 원으로 급증했다. 이후 2018년까지 7조~8조 원대를 유지하다 코로나19 시기인 2020년 27조 2894억 원까지 커졌다. 이후 조정기를 거쳐 2023년 약 12조 9000억 원까지 감소했다. 하지만 지난해(약 15조 2000억 원)부터 다시 늘고 있다.

올해는 추가경정예산의 지원 계획 포함 시 18조 4700억 원까지 증가한다. 2020년이 특수한 시기였음을 고려하면 올해 공급 예정액은 코로나19 이전인 2015년 대비 2.25배 많다.



정책금융은 눈덩이처럼 커지고 있지만 소상공인의 사정은 나아지지 않고 있다. 금융계 안팎에서는 이들 사업이 밑 빠진 독에 가깝다는 얘기가 나온다. 신보재단중앙회가 2023년 1월부터 지난해 4월 말까지 지역 신보 보증을 받은 업체 3319곳에게 설문한 결과에 따르면 보증 당시와 비교했을 때 현재 순이익이 증가했다고 답한 비율은 23.1%에 불과했다. 되레 순이익이 감소한 비중(32.9%)이 10%포인트 가까이 높았다.

부실도 커지고 있다. 지난해 지역 신보의 일반 보증 대위변제액은 전년보다 40.1% 증가한 2조 3997억 원으로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 소상공인 지원 융자도 마찬가지다. 같은 기간 소진공의 융자 지원 사업 부실률은 10.9%에서 15.5%로 뛰며 역대 최고치를 경신했다. 제대로 된 사업 평가 없이 매년 천문학적인 규모의 정부 지원이 집행되다 보니 자영업자의 경영 개선 효과 없이 부실만 커지고 있다. 내수 침체 요인을 무시할 수 없지만 은행은 안전한 보증서만 찾고, 지역 신보는 부실이 생기면 금융권에 추가 출연을 요구하면 돼 까다로운 심사나 기준 없이 ‘묻지 마’ 식 보증서 발급을 계속하고 있다는 얘기가 나온다.

정책금융 증가세에도…소상공인 금융 사정은 악화




정부의 정책금융은 대출금리가 낮고 승인율이 상대적으로 높다. 연체가 발생해도 지역신보가 80~90%를 대신 금융사에 물어주기 때문이다. 이 같은 정책금융이 매년 수십조 원씩 나가고 있음에도 자영업자들은 더 많은 빚을 지고 2금융권으로 밀려나고 있다. 정책금융을 받으면 자영업자와 소상공인의 금융 비용 부담이 줄고 투자와 매출 증대로 이어져야 하는데 적지 않은 자금 공급을 하고 있음에도 거꾸로 가고 있다는 뜻이다.

이는 수치로 입증된다.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이강일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금융사에서 돈을 빌린 자영업자 336만 151명 중 3곳 이상에서 돈을 빌린 다중채무자는 171만 1688명(50.9%)에 달한다. 이들이 보유한 대출 금액은 693조 8658억 원으로 전체 개인사업자 대출에서 차지하는 비중만 61.3%다.



시중은행의 자영업 대출은 감소하고 있다. 은행권의 자영업자 대출 잔액은 지난해 9월 말 현재 641조 9000억 원에서 연말에는 640조 7000억 원으로 줄었다. 대부업을 비롯한 비은행권 대출은 422조 5000억 원에서 423조 6000억 원으로 증가했다. 소상공인 정책금융 전반이 꼬여 있고 시장 원리도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는 말이 나오는 배경이다.

실제로 자영업자들의 대출 규모는 줄지 않고 있다.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소속 차규근 조국혁신당 의원이 한국은행에서 제출받은 자료를 보면 지난해 4분기 말 기준 자영업자의 소득 대비 가계부채 비율(LTI)은 344.5%다. 이는 연 소득의 3.4배에 달하는 빚을 지고 있다는 의미다. 비자영업자의 LTI(220.0%)과 대비된다.

이렇다 보니 90일 이상 대출을 연체한 신용유의자(옛 신용불량자)도 계속해서 늘고 있다. 지난해 말 현재 60세 이상 자영업 신용유의자는 2만 8884명으로 1년 전(1만 9538명)보다 47.8% 폭증했다.

소득별로 보면 대출 증가는 저소득층 소상공인에 쏠려 있다. 하위 30% 자영업자의 지난해 말 현재 대출 잔액은 135조 3000억 원으로 3달 만에 2조 2000억 원 불어났다. 반면 중소득(30~70%)과 고소득(상위 30%)은 대출 잔액이 감소했다. 금융계의 한 관계자는 “정부의 정책자금 지원에도 상황은 나아지지 않고 시중은행이 대출을 줄이면서 효과가 없음에도 정책금융은 더 공급해야 하는 아이러니가 벌어지고 있다”고 우려했다.

소상공인 정책금융 줄이고 개인사업자 전업 신평사부터 키워야


이 때문에 전문가들은 소상공인 정책금융 체계 전반을 뜯어 고쳐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구체적으로 △시중은행의 실질적인 금융 지원 유도 △개인사업자 대상 신용평가사 활성화 △중소기업벤처부 정책금융 축소 △보증서 한도 정상화 등이 거론된다. 금융계의 고위 관계자는 “시중은행 내 개인사업자 신용평가 인프라를 강화하고 금융 당국이 인센티브와 가이드라인을 통해 진정한 의미의 자영업자 대출이 늘 수 있게 유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개인사업자 전업 신평사를 활성화하는 것도 대안이다. 현재 자영업을 전문으로 하는 신평사는 2022년 출범한 한국평가정보가 유일하다. 자영업자와 소상공인에 대한 신용평가를 시중은행이 일일이 하기 힘든 부분도 있는 만큼 전업 신평사가 이를 대신할 필요가 있다는 뜻이다. 금융계의 또다른 관계자는 “제대로 된 신용평가가 대출의 근간”이라며 “전업 신평사의 경우 개인사업자 및 법인 형태에 관계없이 모든 소상공인에 대해 신용평가 업무를 허용하고 매출과 매입, 통신비·전기료 등 관련 데이터를 한데 모아 활용할 수 있는 인프라를 확대 구축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중기부의 정책금융 비중은 점진적으로 낮추고 도덕적 해이 우려가 큰 90% 수준의 보증 한도도 정상화해야 한다는 얘기가 많다. 임채운 서강대 경영대학 명예교수는 “현재 소상공인 정책금융 공급이 지나치게 많다는 비판이 존재하는 것이 사실”이라며 “개인사업자에 대한 신용평가가 활발하게 이뤄질 수 있도록 정부 지원책이 마련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김상봉 한성대 경제학과 교수는 “정책금융으로 폐업은 지원하되 창업지원은 하지 않는 것이 맞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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